지금은 사라졌지만 삼국시대는 각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와 이야기가 꽃 피웠던 시대다. 고구려에는 웅대한 기상이, 백제는 세련된 멋이, 신라는 화려한 양식의 문화재들이 떠오른다. 시대를 살아간 위인들, 전해 내려오는 무수한 이야기와 전장을 누빈 영웅들, 고단한 민초들의 삶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각 나라를 번성하게 했던 ‘왕’들이다.

가령 백제의 13대 ‘근초고왕’은 백제역사에 큰 길을 열어준 왕이다. 활발한 정복활동, 폭 넓은 대외관계, 역사서 편찬, 수도 확장, 왕권 강화 등 다방면에 업적을 남겼다. 근초고왕 덕분에 백제는 삼국시대 가운데 가장 먼저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4세기 무렵의 삼국지도를 보면 지금의 충청북도 지역이 ‘백제’에 속한걸 알 수 있다.

백제에 근초고왕이 있다면 고구려에는 ‘광개토대왕’이 있다. 여담으로 우리 민족을 평화의 민족이라고 부르지만 광개토대왕과 고구려는 예외로 삼아야 할 듯 싶다. 민족 역사상 최고의 ‘정복왕’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서양에 알렉산더가 있다면 동양에는 광개토대왕이 있다고 할 정도로 광개토대왕의 재위 기간에 우리나라의 영토가 가장 넓었다. 국경 북쪽의 연나라와 백제, 신라, 멀리 일본에까지 위력을 떨쳤다고 한다. 마찬가지 5세기 무렵 전성기의 고구려시대에는 지금의 충청북도 지역은 ‘고구려’에 속해있었다.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게 번성했지만 결국 통일을 이룬 나라다. 지금의 충청북도 지역도 이 시기에는 ‘신라’에 속해있었다. 앞서 소개한 근초고왕, 광개토대왕처럼 신라는 24대 진흥왕 재위 기간에 한강유역, 함경도 지역까지 영토를 크게 넓혔고 남부 지방에 있던 대가야도 정복하며 통일신라의 기틀을 닦았다. 충청북도는 그야말로 삼국의 격전지였던 셈이다.

또한 충청북도에는 신라의 진흥왕, 대가야와 관련된 명승지가 있다. 바로 농경문화의 발상지라고 불리우는 ‘의림지(義林池)’다. 의림지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11호, 국가명승 20호로 지정된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 수리 시설 가운데 하나로 추측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진흥왕 재위기간에 가야금의 대가이자 악성(樂聖)이라고 불린 우륵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의림지는 정확한 조성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독특하게도 의림지는 현재도 제 기능을 다하는 저수지다. 지금도 물을 가두고 들판에 물을 대주는 곳은 제천 의림지가 유일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충북의 경승지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거나 사진작가들이 꼽은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은 통일신라로, 통일신라는 고려,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으로 바뀌었지만 의림지는 여전히 의림지일 뿐이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림지’를 생각하며 우리도 누군가를 넉넉하게 품어줄 수 있는 호수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길 바래본다.

이 기 수 / 충청북도 SNS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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