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학창시절 달달 외웠던 것 중에 하나는 ‘역대 조선시대의 왕’이다. 착착 입에 감기는 ‘태정태세문단세’를 시작으로 27개의 왕의 앞 글자를 정렬해놓은 족보다. 시험 때문에 억지로 암기하긴 했지만 500년 조선왕조의 역사를 27개의 글자로 담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유구한 한국의 역사 중에 조선시대만큼 역동적인 시대는 없던 것 같다. 고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도 매력적이지만 비교적 역사자료가 많이 남아있는 조선시대는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소재로 등장한다.

내가 아직까지도 인상 깊게 본 드라마는 1994년 KBS에서 방영한 ‘한명회’다. 20년 전에 제작된 드라마였는데 인물구도나 스토리가 독특하고 잘 만든 사극으로 기억한다. 특이하게도 이 드라마는 왕이 주인공(상대적인 비중에서)이 아니라 일개 신하가 주인공인 드라마다.

칠삭동이로 남들보다 일찍 출생한 주인공인 한명회(1415 ~ 1487)는 어려서는 몸이 약했지만 장성하면서 체구도 커지고 특히 지모가 남달랐다고 한다. 장성 후 세종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을 만나 그의 인생에 꽃이 핀다. 지략가답게 경쟁자들을 향해 갖은 모략을 꾸미고 살생부를 작성하고 탄탄한 권세를 앞세워 왕의 종친이 되는 등 그야말로 종횡무진하며 미친 존재감을 뽐내는 인물이다. 살아서는 권력의 핵심이었던 그도 죽어서 까지는 힘이 미치지 못했나보다. 후에 연산군 때는 부관참시, 즉 무덤이 파헤쳐지는 수모를 당한다.

한명회만큼 매력적인 조선의 왕이 있다면 단언컨대 한명회를 등용했던 ‘세조’다. 역대 조선의 왕 중 가장 행동주의적인 인물이며 권력욕이 분명한 인물이라 느껴진다. 물론 그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저 그런 왕에 머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혈육과 정적들에게는 잔인했지만 재임기간 북방개척, 국방력 신장, 각종 경제정책을 시행하고 <경국대전>을 편찬하는 등 많은 치적을 쌓았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어느 한 편의 입장만 볼 수 없기 때문에 답이 없는 경우가 있다.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의 대담함과 몰인정함은 자칫 비호감이지만 그가 보여준 정책은 왕으로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충청북도에도 ‘세조’와 관련된 콘텐츠가 있다. 충북 보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조성된 ‘세조길’이다. 말년에 깊어지는 병을 치료하고자하는 연유로 전국의 명사찰을 찾아 속리산에 오게 된 세조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머무는 동안 ‘교암’, ‘정이품송’등 특별한 이야기를 남겼다. 보은의 대표적인 사찰인 법주사를 시작으로 2.35km의 구간에‘생태’와 ‘역사교육’을 테마로 가족끼리 걸을 수 있는 코스라 인기만점이다. 깊어가는 가을, 세조길을 걸어보는건 어떨까.

이 기 수 / 충청북도SNS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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