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잠을 잔다. 밤에는 물론 낮잠도 잔다. 밥을 먹고 나면 식곤증으로 잠깐 잠깐 토끼잠도 자고 학교 다닐 때는 수업 시간에 자기도 했다. 사람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잠버릇도 가지가지다. 아기가 나비처럼 팔 벌리고 자는 나비잠이 있는가 하면 세상모르고 잠든 신혼부부의 잠은 꽃잠이라고 했다. 엄마가 야단치려고 할 때 부랴부랴 자는 체했던 꾀잠, 작은 소리에도 깨는 노루잠과 잠자리를 빙빙 돌며 자는 돌꼇잠 등 수없이 많다. 이름도 예쁘고 참 여러 가지구나 싶은데 그 중 특이한 거라면 돌꼇잠과 노루잠이다.

돌꼇은 실을 풀고 감는 기구다. 박물관에서 보니 구멍 뚫린 왕대를 나무판에 고정시킨 뒤 十자 모양의 나무를 잇대 놓았다. 그 다음 한가운데 구멍을 뚫어서 꽂이를 박고 사방 끝에 기둥을 세운 뒤 굴대가 돌게끔 했다. 돌리는 대로 끝없이 돌아가는 모습과 온 방을 헤매면서 자는 걸 보고는 돌꼇잠이라고 이름을 붙였을 것 같다. 잠버릇이 험했던 나 또한 돌꼇처럼 그렇게 자곤 했는데 이제는 잠귀 밝은 노루잠 체질로 바뀌었다. 아득히 돌꼇잠과 노루잠 이미지가 세월의 터널에 걸쳐진 것 같아 느낌이 묘하다.

언젠가 우연히 노루를 보았다. 잡목으로 뒤덮인 오솔길에 귀엽고 앙증맞은 새끼 한 마리. 먹을 걸 찾아 내려왔는지, 아니면 힘센 동물에게 쫓기는지도 모르겠으나 해거름에 드러난 조붓한 길은 노루만 다니는 전형적인 노루목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와 커다란 눈망울이 사뭇 안쓰러웠으나 들킬 리는 없을 것 같아 잠시 걱정을 덜었다.

산날망 달려가는 등 뒤로 다 저녁 때 햇살이 눈부시다. 흔히 보는 산기슭 작은 길. 가다 보면 올망졸망 산이 나오고 개여울 너머 새끼 치듯 나타나는 소롯길. 도라지가 흐드러지고 조약돌이 채이곤 했지. 다리쉼을 하려고 바위에 앉으면 묏새까지 삐루루 우짖던 길이 노루목인지는 확인한 바 없으나 나 어릴 적에는 그런 길이 흔했고 대부분 노루목이라 불렀다. 제 스스로 길을 내면서 노루목인지 혹은 쫓길 때마다 찾아다니면서 길이 난 것 같지만 노루를 쫓는 짐승이라면 접근도 어렵고 우선은 잘 띄지도 않을 테니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방편이다.

억지로 들어간들 덤불에 긁히고 찔릴 테니 우리 삶 역시 그래서 이따금 노루목 같은 오솔길로 이어지면서 나름 휴식처가 되기도 하는 걸까. 노루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자기만의 길 노루목을 찾게 되고 안전을 도모하듯 자기만의 소롯길 노루목에서 보호막을 구축하고 휴식을 취하는 등 나름 아취를 즐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큰 길과는 달리 구불구불 옹색하지만 살다 보면 운명의 추격을 받을 수 있고 그럴 때마다 노루목 같은 공간에서 한시름 놓게 될 테니 소중한 길이다.

어쩌다 갈림길이 나올지언정 운명 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해 나만 다닐 수 있는 길이다. 큰 길을 가다가 잠시 들러 가는 길이되 그래서 힘든 삶의 간이역이 되고 뜻밖에 아름다운 경관이 나오기도 한다. 어릴 때와는 달리 노루잠을 자면서 불현듯 따스해지던 노루목. 한때는 답답해 보이던 길이 지금은 내 삶의 목록으로 자리잡은 듯 무척 향수적이다.

하지만 가르마같이 이어진 노루목도 언제부턴가 숲이 우거지면서 보기가 힘들어졌다. 내 삶의 노루목 또한 아득히 멀어지기도 했으나 그 또한 과정이다. 체구도 작고 날씬하다 보니 이름도 예쁜 노루목을 다니게 되듯 약하기는 해도 살아가는 방편이 있다. 덩치 큰 동물은 들어가기도 힘든 소롯길. 노루목에 노루 다리 노루잠 등 노루에 관한 것은 대부분 가냘프고 작지만 우리 삶 역시 노루목 같은 길은 소망이다. 가뭄에 콩 나듯 드물기는 해도 이따금 삶의 여울을 촉촉 적셔주던 기억 때문에……

어떻게 이름도 예쁜 노루목이 생겼을까. 어느 날 사냥꾼 한 사람이 노루를 잡다가 놓쳐 버린 것은 아닌지. 그것도 하필 조붓한 오솔길에서. 무성한 숲이라 찾을 수는 없고 실망스러운 나머지 노루 숨은 길을 즉흥적으로 노루목이라고 했을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도 약이 올라 노루목 노루목 그래 하필 노루목이었지 라고 하며 수없이 깨는 노루잠에 시달렸겠지. 다 잡은 걸 놓치는 바람에 더 설쳤으니 작은 소리에도 놀라서 깨는 잠을 그렇게 불렀을 법한 상상이 즐겁다.

돌꼇잠이 나온 것도 그런 식이었을 테지. 옛날 어떤 엄마가 명주실을 뽑고 삼실을 잣느라 그야말로 분주했다. 녹초가 되어 초저녁부터 자고 일어나 보니 그제야 자정쯤 되었을까. 애들이 혹 이불을 차버린 채 잠들까 싶어 가보니 아들 녀석 하나가 온종일 돌리던 돌꼇처럼 온 방을 헤매면서 자는 중이었겠다. 종일 뛰놀더니 저 지경이라면서 자기도 하루 종일 실을 뽑고 감느라 업어 가도 모르게 곤히 잤을 거라는 생각에 잠깐 웃음을 지었을까.

실을 뽑아 감을 때는 간단없이 빙빙 돌며 자던 아들 녀석이 떠올랐을 것이다. 혹은 순서가 바뀌어 별나게 험히 자는 아들을 보고 돌꼇을 생각했는지도 모르나 상관은 없겠지. 실을 뽑아 감을 동안 수 백 수 천 번 돌아가던 돌꼇은 보기만 해도 어지러웠으나 불현듯 아들 녀석이 생각나면서 잠시 고단한 삶을 잊었을 것 같은 생각. 실을 뽑아 돌꼇에 감은 뒤 얼기설기 걸어 비단과 삼베 등의 옷감을 짜는 게 얼마나 힘들까마는 돌꼇잠 때문에 수월했다면 제법 그럴싸하다.

어릴 때의 돌꼇잠은 실이 풀리고 감기는 대로 돌아가던 돌꼇처럼 향수적이다. 실을 뽑아 감을 때마다 돌아가는 돌꼇을 보고 세상모르고 자는 돌꼇잠을 상상했을까. 잠버릇이 바뀌어 돌꼇잠이 아득히 느껴지는 요즈음 달아난 노루를 생각하면서 깬 잠을 노루잠이라고 상상해 봤지만 소중한 것을 잃고 잠을 설쳐도 그 또한 삶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그나마 노루가 오솔길을 많이 알고 있을 때 더 빨리 피할 수 있다면 우리도 허술한 것일수록 삶의 반경에 둬야겠지 싶다. 뭐든 욕심내지 않을 때라야 노루목의 아취를 즐길 테고 나름 행복이다. 밤이면 달빛 실 자락이 걸리고 별도 아기자기 반짝일 테니까,

이 정 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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