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 살다간 수많은 동서의 화가들 중에 꼭 안아주고 싶은 눈물이 날만큼 곱고 양털같은 하얀 가슴을 갖고 태어났다가 사라져간 화가를 꼽으라면 고흐와 에곤실레가 떠오른다.

오늘은 고흐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그림을 시작할 젊은이면 누구나 고흐의 그림을 보고 그의 열정적 표현에 가슴 뛰었고 어느 때 보아도 정열적 붓놀림과 황금색 용광로 같은 뜨거움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그런 느낌을 느꼈으리라..  하늘에 별이 되어 영원히 우리 머리 위에 빛나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붓을 잡게 하는 마성 같은 걸 느끼게 한다.

1853년부터 스물일곱살이 된 1880년까지 그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 나머지 십년.. 1890년 7월까지 겨우 10년 간 그 엄청난 작품(그림 900점 / 소묘1700점)을 남기고 갔다.

서두에 본인이 고흐를 양털같은 가슴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의 삶에서 37년간은 단 한번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날을 세워 대립하거나 타인의 도전에 응전의 자세를 취한 적이 없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느꼈던 하숙집 딸 와제나 사촌누이 메이, 창녀 크리스틴 모두에게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그가 탄광촌에서 전도사를 하다가 쫓겨 날 때 조차도 원망은 없었다. 그의 동생 테오 역시 33세에 생을 마칠 때까지 형에게 불쾌한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놀라운 것은 고흐가 누군가의 총에 맞아 죽은 것으로 짐작되고 있는데(세크라당이란 청년의 총에 맞았을 것으로 추측) 오늘날 까지도 그의 “아무도 고발하지 마세요! 내가 나를 죽이고 싶었던 겁니다.”라고 한 말은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타인을 원망하거나 고발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억지로 연결 지어 가설을 만든다면 동생에게 신세만 지는 생활을 했고 자기를 외면하기만 했던 주변사람들로부터의 인한 소외감이 만들어 놓은 자학적 성격과 정신적 불안감에 기인했다고 볼 수도 있다.

주변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에 미안함을 속죄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죽음도 받아들였다고 생각이 미치면 정말 양털같은 고운마음이 아니겠는가?

그 양털이 사물을 보면서 사물에서 감정을 생각해 내고 그 감정을 색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접근을 창안해 내어 오늘날 색의 감정 색 느낌을 인류에게 제공한 하얀 마음이 어찌 위대하지 않는가?

전 힌국미술협회 충북지회장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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