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뭐냐고 물어 보았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다섯 살이예요”라고 대답한다. 잠깐 어? 하고 반문했다가 생각하니 나이를 이름으로 착각한 성 싶다. 초롱한 눈매와 뽀얀 살피듬이 무척 귀엽지만 멋쩍은 듯 돌아서는 게, 뭘 물어도 선뜻 대답할 것 같지 않다.

엄마는 그런 아들이 염려스러워 누가 이름을 물으면 분명히 대답하라고 매번 채근했겠지. 녀석도 내심 단단히 벼르고 있다가 갑자기 질문을 받았다. 기회라고 자신만만 대답한다는 게, 이름을 그만 나이로 바꿔 말했던 것이다.

둘째 동생은 나보다 여섯 살 적다. 내가 열 살이었을 때 4살이었던 동생은 아침마다 “언니, 나 어젯밤 복숭아 밭에 갔었어. 복숭아를 하도 먹었더니 배가 아프네”라고 하면서 얼굴을 찡그리곤 했다. 꿈을 꾼 거라고 아무리 말해 줘도 진짜 갔었다고 우기는 고집쟁이다. 결국에는 포기했는데 그 동안에도 아닌 밤중 홍두깨마냥 느티나무 밑에서 놀기도 하고 숨바꼭질 하면서 뽕나무에 올라가 숨었다는 얘기는 계속되었다.

얼마 후 한밤중의 ‘나들이 타령’은 뜸해졌다. 동생도 언제부턴가 꿈 속의 일인 줄 알게 된 것 같은데 생각하니 다섯 살 가까이 계속되었다. 오늘 내가 본 아이처럼 다섯 살까지는 귀여운 착각에 빠질 나이로 본 것인데 아홉 살이 되자 이번에는 어제와 오늘을 뒤섞어 말하기 시작했다. 가령“나 어제 동무네 집에 가기로 했어”또는“내일은 동무와 하루 종일 놀았어”라는 식이다. 어제와 오늘도 그렇게 뒤죽박죽이더니 헷갈리지 않은 것 또한 언제부턴지 기억에 없다.

동생은 까마득히 잊었을 텐데 나만 여태 기억하면서 글 한 편을 다듬고 있으니 느낌이 묘하다. 열 한 살이 되면서 나는 또 동화를 읽고 착각 아닌 착각에 빠지곤 했었으니까. 그 때의 동화는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하는 유형이었다. 알라딘의 램프와 세 가지 소원이라는 동화가 많다 보니 금반지를 끼고 돌리거나 쓱쓱 문지른 뒤 소원을 말하면 금방 진수성찬이 차려지고 맛난 과일이 쏟아져 나온다는 식이다.

이 후 금반지를 낀 어른들만 보면“그 반지 돌려 보세요. 맛난는 과일이 나올 거예요”라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큰일을 앞두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을 할 때도 “참 이상한 어른들이야. 금반지를 두고도 왜 힘들게 반찬을 만들고 저러는 거지?”라며 생각에 골몰했다.

지금 어른들 같으면 “얘야 그것은 한낱 동화일 뿐이란다”라고 귀띔해 주겠지만 동화에는 전혀 문외한이었던 그 때의 어른들은 별 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 혀를 끌끌 차기만 했다.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어른이라면 욕심이지만 어릴 때라 그만치 순수했다. 동생의 앙증스러운 고집도 어른이라면 정신적 결함을 의심했을 테지만 4 살배기 고집이라 오히려 귀여웠다. 게다가 4살이라 해도, 꿈인지 생시인지 혹은 어제와 오늘을 착각해 온 동생이 지금은 어찌나 똑 부러지고 명료한지 그 때의 기억이 무색할 정도다, 까마득히 어린 그 때 언어의 저변에 깔려 있던 혼란까지 파악한 걸까.

나 역시 그 때의 버릇이 치밀한 분석력으로 바뀌면서 부족하나마 심도 깊은 작품을 구사하는 모태가 되었다. 동화를 읽지 않았다면, 동화라 해도 너무 빨리 읽은 게 탈이었지만 오히려 좋았다는 자부심 같은 것.

하지만 혼란은 여전했다. 생각은 그렇다 해도 생김까지 비슷해서 남들도 툭하면 착각이다. 결혼한 뒤 한번은 친구에게서 네 동생과 같은 방송국에 근무하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친구는 갓 입사한 동생을 나로 착각했단다. 절친하게 지냈으면 방송국에 들어간 걸 알았을 테고 학교에서 같이 생활할 때라면 그럴 리 없겠지만 졸업한 뒤 몇 년이나 지난 후였다.

그렇더라도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으면 가당치 않다. 이 후 동생은 합창단원이 되었는데 이웃 사람이 우연찮게 공연 실황을 보다가 동생이 충주에 산다더니 쌍둥이도 아니면서 그렇게 닮을 수 있느냐는 전갈을 보냈다. 오륙년 전의 내 사진을 보면 지금의 동생과 똑같은 느낌 그대로다.

유달리 언어적 구분에 취약했던 우리 자매는 비슷한 만치 남들에게도 혼란의 대상이었으나 그래서 더욱 뚜렷하고 분명한 기질로 바뀌었다. 이를테면 혼란이 가중되다 보니 극복하는 구실로 보다 확실한 뭔가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얼마 후에는 주변 사람들도 익숙해졌는지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은 채 우리 역시 무료한 날을 보내야 했다. 그 때보다 안정은 되었는데 변화가 없다. 혼란은 어수선해도 그게 아니면 새로운 발상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렵다. 멀어진 세월의 뒤안길에 무심히 서 있는 기분 같은 것.

저만치 엄마 손을 잡고 가는 꼬맹이가 보였다. 녀석도 돌아가면서 나이를 이름으로 바꿔 말한 걸 알게 되지 않을까. 그 전에 엄마가 이미 깨우쳐 줄 수도 있을 테니 둘이서 나눌 정담이 깻송이처럼 예쁘다. 또래 어린이처럼 신발을 왼쪽 오른쪽 바꿔 신기도 하면서 여전히 헷갈리는 날들이겠지만 단계적인 호기심에 익숙해지면서 어른으로 꼴 지워질 것이다. 혼란이 없으면 확실성도 그만치 떨어진다. 나 또한 녀석 때문에 아득히 먼 세월 강에 추억의 배 한 척 띄워 보냈다. 계절의 모퉁이에서 찍은 한 컷 영상이었다.

이정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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