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이 끝나고 봄의 길목에 서 있는 듯 하다. 제주도에는 노오란 유채꽃이, 광양에는 향긋한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남쪽부터 전해지는 봄의 소식이 무척 반갑다. 덩달아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에도 개화가 찾아온 것 같다. 주말이 되면 맛있는 음식을 싸들고 소풍을 가고 싶은 마음이 부쩍 많이 든다.

요즘에는 유행어도 많고 신조어도 많다. 대표적으로 흙수저네 금수저네, 흙길이네 꽃길이네, 하는 말들 말이다. 인생이 어디 꽃길뿐이겠는가, 단단한 길을 밟을 때도 있고 물렁한 길을 밟다 넘어질 때도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다른 의미지만 흙길이 꽃길보다 결코 나쁘지 않다. 군대에서 행군한 경험에 의하면 단단한 아스팔트길보다 푹신한 흙길이 훨씬 걷기 좋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피로도에도 차이가 있다.

특히 이렇게 걷기 좋은 계절에는 잘 닦인 길보다는 흙길을 걸어보길 추천한다. 걷다보면 잡념도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무엇보다 자연을 느릿느릿하게 느낄 수 있어 좋다. 한 쪽으로 쏠리고 튕겨져 나갈 것 같은 삶도 제자리로 돌아올 것만 같다.

충북에는 ‘걷기 좋은 길’이 많다. 충청북도 기념물 118호인 제천의 배론성지(舟論聖地)도 그 중 하나다.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회 초기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곳이다. 가톨릭 신자들의 성지지만 일반인들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고 산책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지명인 배론(舟論)이란 말은 지형이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성지에는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가 있다. 성직자 양성을 위한 첫 신학교인 ‘요셉 신학교’가 있었던 곳도 있다. 이곳 배론성지에는 최양업 신부를 기리는 조각공원과 성당이 모여 있다. 어딘지 소박하고 성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대성당, 배론성지 한 가운데를 흐르는 구학천의 물소리, 너른 잔디밭에 인자한 미소의 성모상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주변환경과도 잘 어울리는 유적지기에 아직 찾지 못한 도민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길 추천한다.

마음에 여유만으로도 삶은 행복하다. 꼭 좋은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고 유명한 유적지를 가서 SNS에 사진을 올리지 않아도 말이다. 그러니까 흙길을 걷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아직 새해 덕담을 전하지 못했다면 “꽃길만 걷게 하소서”라고 말하기보다 “흙길을 걷더라도 슬퍼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말하고 싶다.

충북SNS서포터즈 이기수  

저작권자 © 충북도정소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