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운 곡이다. 잔잔한 서곡에 이어 맑고 깨끗한 바이올린 음이 떠오른다. 불현듯 스쳐가는 초원의 풍경. 어디선가 산새들 노랫소리가 들릴 듯 했다. 지줄대는 냇물소리에 묻어 바람은 싱그럽고 풀꽃 가득 핀 오솔길도 이어져 있을 것 같은 환상. 뒤미처 꿈에서 깨어나듯 울려 퍼지는 장중한 피아노 소리.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을 들을 때의 환상이다. C장조로 시작되는 이 곡은 어두운 그림자라곤 없이 맑고 청순하다. 간결한 형식미를 갖춘 서정적인 안단테야말로 모차르트의 협주곡 중 최고 백미라 하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임) 특별히 좋아한다고 했으나 7분 남짓밖에 되지 않는데 짧은 대신 아기자기 예쁘고 힘들 때마다 감성의 돌출구가 되곤 했기에 그만해도 충분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행복의 본체는 그렇게 소중했다. 악장 전반에 흐르는 우아하고 감미로운 느낌이 드물게 맑은 서정을 드러내는 까닭에 태교음악으로도 알려진 21번 교향곡. 특별히 영화‘엘비라 마디간’의 주제곡으로 선정되면서 천재적 음악성이 알려졌다니 영화와 음악의 신비한 어울림이 그려진다. 모차르트는 몰라도 엘비라 마디간 주제곡이라면 짐작할 만치 그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었으니까.
1889년 덴마크의 한 숲속에서 젊은 남녀의 권총자살이 있었다. 카운트 스파레라는 스웨덴 육군 중위와 줄타기 소녀였던 엘비라 마디간. 그들은 소속집단에서 뛰쳐나와 함께 밀월여행을 떠났으나 굶주림에 지쳐 끝내는 자살한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한때‘가장 아름다운 불륜’을 다룬 영화로 유명했는데 배경음악인 모차르트의‘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의 아름다운 선율도 큰 몫을 했다. 고요한 호숫가에서 보트를 타는 느낌, 나비를 잡으려고 풀밭을 뛰어다니는 엘비라 마디간. 그 위에 물 흐르듯 잔잔한 선율은 주제곡으로 미리 작곡한 것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고 한다.
이제 영화가 나온 지 40년이 지났으나‘엘비라 마디간’의 연관성보다는 피아노의 명곡으로 불리는 이유가 곧 협주곡 형식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느낌이 묘하다. 협주곡은 관현악단이 협주악기 또는 독주자(soloist)와 연주하는 서양 고전 음악으로, 콘체르토라고도 하며, 경합과 경쟁의 뜻을 지닌 라틴어의 콘카르타레concertare에서 파생된 말이다. 감미로운 연주회에 경쟁이라니 얼토당토않은 말 같지만 관현악 주자들이 자기 연주할 시점의 파악을 위해 시종일관 긴장하는 상황을 보면 수긍이 간다.
그게 콘체르트가 뜻하는 경합과 경쟁일 수는 없으나 미세한 차이로 音이 틀어질 경우를 생각하면 악기 특유의 정확성과 치밀성은 간단한 게 아니다. 그 때문에 연주가 끝날 때까지 초긴장 상태일 수밖에 없지만 리듬과 선율에 대한 치열한 안목 때문에 협주곡 특유의 감미로운 선율이 나오는 게 아닌지. 이를테면 모차르트 협주곡 21번 엘비라 마디간이 나오기 전의 1악장에서도 느끼게 되는 이미지였다.
그 부분을 연주할 때의 피아노 주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긴장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갈 수도 없이 빠른 알레그로 부분은 폭풍이 몰아치듯 하는데 그 때의 엄숙한 표정은 연주자들의 자기 투쟁 그대로다. 무지하게 빨리 돌아가는 음표 중 하나쯤은 어그러져도 모를 성 싶지만 문외한이 더 잘 알기도 할 테니 관현악 주자들과의 경합이 아닌,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피아노, 바이올린에서는 바이올린 주자가 감내하는 고빗사위 때문에 휘몰이 같은 멜로디가 더 아름답게 들리는 걸까.
서른다섯 살로 끝난 생애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이었을 테지. 말은 천재적인 음악가였어도 가난하게 살았던 그. 문제의 협주곡을 완성한 29세 때가 유달리 힘들었다는 걸 보면 어려움은 곧 천부적 재능을 발휘하는 계기가 된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곤란할 때 수많은 명곡을 작곡하는 배경 또한 절박한 중에도 소망을 갖고 싸워 버틴 자기 승리였으니 역설적으로 가장 행복하고 창작열이 왕성했던 시기다.

이제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2017년은 또 붉은 닭 띠의 강한 기운으로 에너지 넘치는 해가 될 거라는데 닭 하면 으레 또 싸움이 연상되지 않던가. 만났다 하면 싸우는 수탉들. 그 습성을 이용하여 돈을 거는 놀이가 닭싸움(鬪鷄)이었는데 생각하니 어릴 때 한 쪽 발만 디딘 채 상대를 밀치고 부딪쳐서 넘어뜨리는 닭싸움 역시도 그런 모양새였다. 명절이면 풍물 장터에서 상품을 걸고 대회를 열기도 했던, 단순한 유희였으나 하필 왜 닭이었는지.
싸움닭이라 할 만치 공격적인 면도 있으나 그래서 뜻하지 않은 해결책도 나오는 걸까. 모차르트의 작품 21번 외에 수많은 곡이 들을수록 감동인 것도 협주곡의 뜻인 경합과 다툼이 어우러지면서 뜻밖의 멜로디로 떠올랐다. 맞서 겨루는 것은 다툼이지만 관현악 단원들의 뚜렷하고 치밀한 기질에서 나오는 콘체르트 경합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시유적절 적용하면 싸움을 좋아하는 닭 띠 해의 일반적 뉘앙스도 바람직해질 테니까. 지난 해는 또 어려움이 많았던 만큼 적절히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신년 벽두에 더욱 간절하다.

이정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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