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 탑비

우리나라의 역사문화를 집약해 보여주는 곳이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하고 있는 이 박물관은 대한민국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오천년 역사 교육의 장이자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역사의 1번지인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원형의 중앙에 경천사지 10층 석탑과 월광사지 원랑선사 탑비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국보 제86호인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교과서에 실려 익히 알려진 탑이다. 고려 충목왕 때 황해도 개풍군 광덕면 중련리의 경천사지에 세워진 이 석탑은 1909년경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반환된 문화재로 화려한 조각으로 유명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문화재는 4미터 높이의 탑비다. 거북 모양의 대좌 위에 용 모양의 머릿돌이 인상적인 이 탑비는 예사롭지 않다. 웅장하면서도 귀품이 느껴지는 문화재는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 탑비로 충북의 보물 제360호이다. 충북의 보물이 한국의 대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충북사람도 극히 드물 것이다.

이 보물의 고향인 월광사지는 충북 제천시 한수면 동창리 산자락에 있는 폐사지이다. 월광사는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에게 잊혀졌지만 이곳 주변에는 중원미륵사지와 월악산 덕주사가 번성할 정도로 불교가 성했던 지역이다.

월광사에 세워진 원랑선사 탑비는 신라 후기에 활약한 승려 원랑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이 멸망하기까지 월악산 산자락을 지켰던 원랑선사탑비(圓朗禪師塔碑)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오기까지는 경천사지 10층 석탑과 같은 이유다. 일본강점기 시절, 조선문화재 약탈이 본격화되면서 이 탑비도 일본으로 밀반출되기 위해 서울로 옮겨졌던 것이다. 다행히 일본행을 면하고 1922년에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국립중앙박물관이 건립되면서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탑비는 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거북받침은 네 발이 몹시 작고 짧은 목과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어 단아하고 안정감을 준다. 원랑선사탑비의 주인공 원랑선사는 어려서부터 제자백가에 통달했는데, 뒤에 불교 경전을 읽고 무상을 느껴 출가를 하였다 한다. 문성왕 18년(856)에 사신을 따라 당나라 앙산에서 공부한 후 866년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월광사에 머물면서 법요를 널리 전해 궁중의 존경을 받았다. 헌강왕 9년(883) 68세로 입적하는데, 이 비는 그로부터 7년 후인 890년에 세워졌다.

탑비가 있던 월광사지는 어떤 곳일까? 탑비의 위상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절이었을 것이다. 길을 따라 찾아가는 월광사지. 월악산 덕주사에서 500미터 아래쪽에서 좁은 산길을 따라 30여분 오르면 중턱 한적한 곳에서 기다랗게 이어지는 넓은 터가 나왔다. 나무가 우거져 잘 드러나지 않지만 곳곳에는 절터임을 알리는 흔적들이 보였다. 월광사지를 알리는 돌표지석과 깨진 기왓장, 절의 석재들이 그대로 널브러져 있다. 동글게 깎아 연꽃 문양을 새긴 돌기둥받침이 꽃처럼 피어 쓸쓸한 절터의 위상을 보여준다.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월광사지. 허허롭고 쓸쓸한 시간 속에서 달빛이 비추듯 조용히 꿈꾸고 있는 모습이다

▲ [ 원랑선사탑비 ]

연지민 충청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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