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에는 오래된 곳이 많다. 이를테면 오래된 카페도 있고 오래된 문화재도 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조금은 낡고 손 때 묻은 곳이 많은 충북이 좋다. 많이 개발하지 않았고 아직도 아날로그의 감성이 살아있는 이 지역이 내겐 더 편하고 문화로운 곳이라고 느껴진다.

아날로그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음악을 듣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 음악이 듣고 싶으면 주로 카세트나 CD로 음악을 들었었다. 자주 테이프를 사기 어려워 한번 테이프를 사면 줄이 늘어질 때까지 들었었다. 그 늘어진 테이프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오로지 ‘듣는 즐거움’에 빠졌던 것 같다.

카세트만의 매력은 불편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감고 풀어서 비로소 원하는 음악을 듣게 될 때의 순간이 좋았었다. 쌕쌕거리며 돌아가는 테이프소리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정겹던 소리 같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을 때는 늦은 시간 라디오 프로를 들으며 녹음을 하기도 했다. 나만의 앨범을 만들기가 녹록치 않았는데 다름 아닌 DJ의 멘트 때문이다. 음악 시작과 동시에 멘트라도 들어가면 괜히 멀리서 나처럼 잠 못 자고 음악을 틀고 있을 DJ를 원망하곤 했다. 그때는 원망이었지만 지금은 추억이 되어 흐른다.

그 시절엔 노래방에서 테이프를 녹음해주기도 했다. 노래를 마치고 테이프를 받아들고 한껏 기대에 차 집에 와서 음악을 틀면 이게 내 목소리인지 음치인지 분간이 안가 다시는 듣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재미난 경험이 한번은 있을 것이다.

카세트 테이프의 시대가 막을 내리며 CD의 시대가 한동안 있었다. 처음 CD로 듣던 음악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는데 고음질의 매끄러운 선율이 귀를 감으면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을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은 새로 나온 음반이 한 주의 화제거리였다. 인기 있는 가수의 음반은 몇 백만장이나 팔렸고 몇 주간 연속 1위를 하면 골든상을 주기도 했다. 지금은 자주 차트가 바뀌고 잊혀지지만 그 시절의 음악은 전 국민의 음악이었다.

CD가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비닐을 뜯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그야말로 백미였는데 음악을 들을 때보다 더 떨리던 순간이었다. 오로지 나만의 음악을 갖게 된 것 같았다. 음악을 소장하는 기쁨이란 다른 어떤 기쁨과도 비할 수 없었다.

시대는 변하고 이제 테이프나 CD로 음악을 듣는 일은 일상이 아닌 추억이 되버렸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인터넷으로 음악을 듣는게 더 익숙하고 당연한 일상이다. 멜론이니 수박이니에서 한달에 5천원도 안되는 적은 금액으로도 새로운 음악을 무제한으로 소비할 수 있다. 1위 차트는 수시로 바뀌고 새로운 가수가 쏟아져 나오니 마치 ‘음악의 뷔페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뷔페음식은 종류는 많은데 정작 맛있게 먹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내겐 트렌드에 맞는 음악, 금방 잊혀지는 음악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편리함 속에 잊고 지냈던 불편한 즐거움을 떠올린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손으로 음악을 듣기 위해 직접 CD를 고르고 넣고 음악이 나오기 전에 잠깐 쉬던 그 순간들 모두가 그리워진다.

세상은 점점 더 사람을 디지털로 몰아가고 잠시도 쉴틈을 주지 않고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아날로그의 문화를 통해 사유하고 사색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문화가 필요할 것 같다.

음악을 꾹꾹 눌러듣던 시절, 손 편지를 꾹꾹 눌러쓰던 시절, 전화를 하기 위해 동전을 넣고 다이얼을 돌리던 그 시절이 그립다.

이기수 / 충청북도 SNS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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