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달이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21일은 둘이 하나되는 법정기념일 부부의 날이 있어 더 사랑의 꽃이 피어나야 하는데......

벌써 16년 전 큰 아파트로 옮겨 가면서 넓어진 베란다에 세 그루의 동백이 자리하게 되었다. 백동백, 분홍동백, 그리고 꽃을 제일먼저 피우는 빨강동백을 출장 갔던 남편이 저 아래 남쪽에서 사가지고 왔다. 나무 중에서도 동백을 좋아하여 신혼 집 아파트 1층 화단에도 동백을 사다 심어 봄이면 시모님과 꽃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지금의 단독으로 이사와서도 함께 따라온 세 동백 화분이 집을 지키며 한 번도 봄을 거르지 않고 꽃을 피웠다.

세월이 깊을수록 키가 자라 화분도 작고 그저 입만 마르지 않게 물만 주었는데 해마다 꽃을 피우니 신비하고 말못하는 동백에게 미안함을 전해줄 뿐이다. 빨강 동백이 시들어가는 어느 토요일 제일 나중 꽃을 여는 백동백이 하얀 드레스를 차려입고 귀하게 꽃망울을 열었다. 이 꽃 한송이를 누구에겐가 건네주고 싶어 만남을 아껴두었던 한 사람을 생각해 내었다. 누구일까?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에 머무르며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나**시인이 떠올랐다. 내가 그 시인을 잊지 않은 것은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고 학교장으로 정년하신 동료의식도 있었지만 꼭 찾아가 보고 싶은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까마득한 옛날 초임교사 시절에 그 시인의 매제와 한 지역에서 근무했는데 매제의 첫 시집 출판기념식에 마침 그 시인이 축하차 오셔서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그 후 정년을 하고 공주문화원장 재직 시에 한 번 뵙고 이번 만남은 거의 10여년 만이다. 시인을 찾아 갔을 때 우아한 여인이 먼저 나를 맞이해 주었다. 누군가 했더니 시인의 평생 반려인 참하신 사모님이셨다. 내가 고이 들고 간 백동백 모습이었다.

시인은 늘 그렇듯 소박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고, 사무실 한 켠에 놓여있는 시인의 풍금을 열고 작곡된 풀꽃을 노래로 가르쳐 주셨다. 늘 부르고 싶던 ‘오빠 생각’까지 마치 국민학교 시절 음악 시간처럼 합창하니 작은 문학관 주변 풀꽃들이 귀를 쫑긋 세우듯 신선한 기분의 선물이었다. 연세도 많으신데 자작시에 고운 삽화까지 그려 넣으시니 감동이고 놀랍다.

내가 조심스레 당시 고교 국어교사이던 매제 소식을 여쭙자 매우 애석하게도 몇 년 전에 하늘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나도 가슴 한켠이 서늘해왔다. 인물도 수려하지만 진정 성품이 착하고 순수한 분이어서 늘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홀로된 여동생이 안됐다 하시며 사모님 이야길 하셨다.

“그럭저럭 호강 한번 못하고 내가 운전조차 할 줄 모르는 쑥맥이라서 언제 나 버스만 타고 다니는 여자”
라면서 정작 자신이 편안히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아내 덕이라는 점을 힘주어 이야기 하셨다. 한 번 독하게 사경을 헤맨 적도 있고 지금도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은데 사모님이 잠자리부터 특히 음식을 정갈히 하여 마치 어머니처럼 시인을 돌봐 준다는 것이다. 한 가정이 잘 되고 가장이 성공하는 것이 거의 아내 역할이 바탕이며 어머니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노시인의 여인 찬양론은 다소 뜻밖이었지만 매우 수긍이 되었다.

자녀를 잘 키워낸 위대한 어머니는 사임당, 링컨의 어머니 낸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특히 똑같이 배아파 낳고 무릎 꿇고 밤낮없이 기도하여 외아들마저 신부님으로 길러낸 이름 없는 어머니들을 만 날 때 가슴이 저리고 목숨까지 내어놓은 예수님의 사랑을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머니만 위대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가까운 박** 교수의 아버지, 가톨릭 다이제스트 발행인 윤* 변호사의 아버지 그분들은 낳아 기른 아들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삶의 멘토로서 길을 안내하고 있다. 인생의 아름다움과 평화를 전해주는 ‘나그네’라는 시로 친근한 목월 시인의 ‘가정(家庭)’이라는 시작품엔
.........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이토록 시인일망정 가장으로서의 짐을 마다않고 가족을 향한 끈끈한 정을 노래하고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일처럼 숭고한 일은 없다. 가정이 있은 후 마을과 사회가 있고 드높은 하늘이 있고 복된 나라가 존재한다. 돌아갈 가정이 있는 가장은 행복하다. 그리고 돌아올 가장이 있는 가정은 더 행복하다.

사랑의 울타리를 엮어가며 곱게 늙어가는 풀꽃 시인 내외는 내 영혼에 빛을 주고 이미 하늘로 가신 나의 아버지 박 베드로, 아직 내 곁에 살아계신 나의 어머니 이 데레사 그들은 봄이면 돋아나 생명의 물결을 이루는 늘 새것인 보리밭처럼 내 곁에 영원하다. 이 땅에 부모된 사람들이여! 그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복된, 가정이라는 성의 왕이요 왕비이다. 이에 자녀를 공주와 왕자로 대하며 길러내야 한다. 그대들의 몸에서 열 달을 기다려 캐낸 하나뿐인 다이아몬드! 자신은 물론 이웃과 나라를 비추는데 빛나게 하라.
가정의 달은 5월 뿐 아니라 일 년 내내 우리들 마음속에서 자라나길 소망하며 5월 하루를 곱게 닿는 저녁노을을 사랑한다.

박종순 / 보은 산외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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