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보는 충북의 문화재 (충청북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28호)

문화재는 아득한 시간을 눈앞에 보여줍니다. 입말로 전해지는 옛 이야기가 시대를 거치면서 각색된다면 사물로 남아있는 문화재는 시간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문화재가 갖는 힘은 들여다볼수록 묵직한 울림을 주기도 합니다.

천년의 시간을 올곧이 품고 있는 문화재 중 하나가 다리입니다. 다리는 단절되어 있는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세계 인류사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달해 지금도 중요하고 유용한 교통수단이지요.

이처럼 오랜 역사 속에 크고 작은 수많은 다리들이 지구에 놓였을 텐데요, 황금빛 노을 속을 가로지르는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나 연인의 사랑을 간직한 파리의 퐁네프다리, 론다 협곡을 잇는 누에보 다리, 뉴욕의 상징인 브루클린 다리 등은 세계 명소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우리민족도 마을 단위로 전통생활문화권을 형성하면서 다리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작은 개울을 건널 때 사용했던 징검다리와 통나무다리,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섶다리, 나무와 돌로 만든 설래다리 등은 생활권에서 멀어졌지만 한국의 전통 다리로 꼽힙니다.

이러한 옛 다리들이 현대기술로 세운 크고 높은 교각에 자리를 내어줄 때, 굳건하게 한국의 다리로 자리를 지켜온 돌다리가 있습니다. 바로 진천 농다리입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라는 명성을 지닌 이 다리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름이 ‘농’이다보니 어린 친구들은 긴 돌다리라고도 부르지만, ‘농’자는 대바구니를 일컫는 대그릇 농籠으로 ‘대바구니처럼 충격에도 잘 버틴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다리의 정체성을 단박에 알 수 있는 이름이지요.

그렇다면 농다리로 떠나볼까요. 오랜 세월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다리는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여있습니다. 굴다리를 지나면서 모래사장이 펼쳐지는 세금천은 확 트인 시야 너머로 절벽에 가까운 앞산을 먼저 보여줍니다. 현대식으로 크고 웅장한 다리를 기대했다면 실망스럽겠지만 농다리는 낮게 엎드려 물과 함께 흘러가듯 모습을 드러냅니다.

발밑에선 평범해 보이는 농다리는 다리를 건너면서, 그리고 전망대에서 느껴야 제 맛입니다. 울컥울컥 교각 사이로 흐르는 물은 돌다리의 견고함을 확인하는 자리이며, 전망대를 통해서는 다른 돌다리와는 확연히 다른 위상을 드러냅니다.

사용된 돌은 진천에서 나는 사력암질로 붉은 색을 띱니다. 화강암을 주로 사용했던 것과 비교하면 색부터 다릅니다. 그래서 긴 몸통에 많은 다리를 지닌 자줏빛 지네가 강을 건너는 형상은 시공을 초월하는 가교 역할을 해줍니다. 물살을 일으키며 꿈틀, 강을 건너고 있는 붉은 지네의 모습은 말없이 천년을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천년이 넘도록 다리가 되어주고 있는 농다리는 어떻게 그 긴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요. 장마와 가뭄, 폭풍우와 폭설을 견디고 지금도 우리에게 다리가 되어주고 있는 걸까요.
비밀은 축조 기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네의 다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돌을 차곡차곡 맞물리도록 쌓은 후 넓고 평평한 장대석으로 몸통을 만들듯 잇댔습니다. 돌과 돌 사이로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도록 함으로써 물의 무게를 분산시키고, 윗돌을 아랫돌을 보다 좁게 쌓고, 교각을 4~6m 간격으로 일정하게 조성해 하중을 견디도록 했습니다.

총 길이가 약 100미터 가량의 다리는 전체를 돌로만 쌓은 것이 특징인데요, 특히 지네의 다리는 별자리 28수를 상징하기 위해 28간으로 만들었다고 하나 현재는 25간만 남아있습니다. 이처럼 곡선의 몸통과 돌쌓기 방식은 혹여 돌이 물에 떠밀려가더라도 다시 쌓기 수월한 구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바구니가 충격에 잘 견딘다’는 농의 의미처럼 말이죠.

돌다리가 아무리 튼튼해도 주민들의 관심 없이는 천년 이상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옛날부터 마을에서는 날을 받아 농다리를 보수하고 정비하는 일이 큰 행사였다고 합니다. 노동도 대동화합의 마을 잔치로 열었던 선조들의 지혜는 5월에 열리는 농다리축제의 기원인 셈이죠.

세계의 다리와 견주어도 손색없이 세월의 웅대함을 드러내고 있는 진천 농다리. 이제는 관광명소로 거듭 조명되면서 현대인들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도록 사유의 다리로 건너오고 있습니다.

연지민 / 충청타임즈 문화부장

저작권자 © 충북도정소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