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사건

크리스마스 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뜬 잭은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낯선 분위기에 몹시 당황해한다. 뉴욕 맨하튼 펜트하우스 침실의 평온하고 럭셔리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두 아이와 덩치 큰 개 한 마리, 그리고 과거에 성공을 위해 헤어졌던 애인 케이트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생각지 못했던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월스트리트 최고의 기업가인 잭은 성공한 자들만이 갖출 수 있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최고치로 누리며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질주하는 싱글맨이었다.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가족이나 친구, 애인은 없지만 그것에 대한 절실함이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한다. 더 큰 성공을 목표로 돈과 일에 파묻혀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여유와 기회를 가져본 적 또한 없다.

인생살이의 결핍이나 부족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던 그가 어느 날 아침 깨어보니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있는 뜻밖의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평소에 타고 다니던 페라리는 보이지 않고, 폐차 직전의 낡은 자동차에 몸을 싣고 타이어를 팔러 출근해야 하는 샐러리맨이란 처지가 구질 맞고 황당할 뿐이다.

한정된 시간

잭은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오갈 데 없는 처지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는 가족들 간의 소소한 추억들이 묻어나는 비좁은 주택에서 새로운 현실에 서서히 젖어들며 적응하기 시작한다. 간난 아들 돌보기, 딸아이 유치원 등하교 맡아하기, 개 산책시키기, 시답지 않은 주위 친구들과 정기 볼링모임까지 함께 하면서 어느새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나간다.

펜트하우스와 고급 자동차, 최고의 셰프가 준비하는 값비싼 음식과 와인, 즐겨 입던 몇 천불을 호가하는 양복과는 동떨어진 팍팍한 월급쟁이 생활은 잭에게 여전히 낯설고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나 그는 서서히 새로운 환경 속에서 물질적인 여유와 사회적 지위가 보장해 주던, 지금까지 누렸던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또 다른 삶의 가치를 느끼기 시작한다.

케이트는 자신을 신기한 듯 신선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 속에서 더욱 진한 사랑을 느끼고, 딸아이는 뭔가 어설프고 달라 보이는 아빠의 행동을 이해하며 외계에서 온 방문객인 양 친절하게 도움을 준다. 잭은 어느새 없어서는 안 될 남편과 아빠의 역할에 강한 책임을 느끼며 새로운 삶이 전하는 만족감과 행복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케이트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을 때 펼쳐질 인생이고, 그것을 잠시 엿보며 경험해보고 있다는 사실은 잭에게 또 한 번 혼란과 충격을 안겨준다.

소중한 선택

선택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하루에도 숱한 갈림길에 서서 고민하게 되는 경우를 누구나 경험한다. 선택은 선택한 자의 몫이고, 망설임과 고민 끝에 선택이 끝나게 되면 그것에 대한 책임이 주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10여 년 전, 잭은 ‘우리’를 위해 떠나지 말아달라는 케이트를 뿌리치고 그녀의 곁을 떠난다. 장거리 연애는 서로를 소원하게 만들었고, 인생의 성공이 우선이었던 잭에게 케이트의 존재는 점점 희미한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잭은 뜻밖의 상황을 겪으며 어떤 선택이 가장 올바른 것이고 가장 최선의 것인지 다시 한 번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떤 삶도 완벽한 만족감을 줄 수는 없지만, 크리스마스이브 텅 빈 밤길을 홀로 걸어 귀가하던 CEO의 모습과 강아지 산책을 위해 동네를 돌던 소박한 샐러리맨의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자리하며 인생을 바라보는 다양한 각도를 제시한다.

성공적인 인생에 대한 관점과 가치관,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이란 울타리가 줄 수 있는 시너지 효과까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에너지는 여러모로 긍정적이고 희망차다. 이미 고전처럼 나이 먹은 이 영화가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문뜩 떠오르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소중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종희 /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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