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책 냄새를 찾아, 헌책방 단양 새한서점

단양의 어느 산 중턱 숲 속에 서울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책이 많은 곳이 있다고 합니다. 산속에 책 13만 여 권이 있다니. 책 냄새, 그리고 나무 우거진 냄새를 찾아 단양의 헌책방, 새한서점의 이금석 대표(63)를 만나보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작은 다리를 건너 올라가다 보면 책이 가득한 낡은 나무함이 보입니다. ⓒ 유정서

하루에 두 번만 다닌다는 버스를 타고 현곡리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어느 집에 있던 꽤 몸집이 큰 진돗개가 낯선 이방인인 나를 보고 짖기도 했습니다. 모른 척 빠른 걸음으로 점점 좁아지는 길을 따라 걷자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책을 갖고 있는 책방이라 했지만, 생각보다 작고 편안한 느낌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고, 이 대표가 권하는 비타민 음료 한 병으로 새한서점에 대한 이야기도 시작되었습니다.

새한서점, 헌책방, 단양

새한서점 건물 벽면에 붙어있는 사진과 거미줄. 책방 건물 안팎으로 크고 작은 거미줄을 볼 수 있습니다. 벌레가 많았지만 왜인지 하나도 물리지 않았습니다. ⓒ 유정서

Q. 새한서점, 왜 이름이 새한서점인가요?

이름? 뭐 그냥 간단하게 지은 거지요. (웃음) 쉽게 말하면 ‘새(NEW)’, 그리고 한국의 ‘한(KOREA)’에서 따온 거죠. ‘새로운 한국’ 뭐 이런 의미로. 나 자신도 책방을 새로 열며 시작하는 때였으니까.

Q. 건물 생김새가 특이한데요.

책이랑 책꽂이가 건물을 받치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판넬로 건물을 덮었지만, 비용 때문에 처음엔 천막으로 적당히 덮어서 생활했어야 했죠. 갖고 있는 건 모두 책뿐이었으니, 책으로 건물을 받치게 된 거에요. 그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요.

Q. 책방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요?

79년도부터 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고. 오래된 이야기지만 그 당시 개인적으로 하던 사업이 실패하면서 새로운 일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서점을 하게 된 거죠. 하다 보니 세월이 흐른 것이고. (웃음) 시작은 평범했어요.

Q. 그럼 그때부터 이곳에서 운영해온 건가요?

아니. 처음엔 서울에서 시작했어요. 막 시작할 땐 건물이 있던 게 아니라 노점부터 했지요. 옛날에, 그러니까 70년대엔 모두가 먹고살기 힘들 때였거든요. 그래서 길바닥에 (책을) 깔아놓고 팔고 그랬었어요. 그 당시에는 50원, 100원 이렇게 직접 써놓고 팔다가 점점 커진 거지요. 그러다 ‘이 자리(숲 속)’로 온 때가 2009년. 2002년도에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적성초등학교 폐교 건물에서 7년 있다가 이리로 옮기게 되었지요.

 새한서점의 주인, 이금석 대표 ⓒ 유정서

Q. 처음부터 인터넷이 있어서 숲 속 책방으로 시작한 건지. 숲 속에 책방이 위치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무엇보다 지금 이곳에서 책방을 할 수 있는 건 온라인 판매가 있기 때문이죠. 2002 월드컵 때 (단양으로) 내려왔는데, 그 당시 온라인 판매가 막 자리를 잡을 때였어요. 근데 온라인 판매라는 것이 그 당시에는 소비자가 쉽게 접근을 못 하니까 책 산업이 제일 먼저 시작되었지요. 정찰제고, 공산품이었으니까.

나 같은 경우도 온라인 판매를 하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는 거예요. 컴퓨터도 잘 못 하고 그러니까. 그래서 그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들, 그중에서도 통계학과와 동양사학과 애들이 많았는데, 통계학과 애들이 그 당시에는 컴퓨터를 가장 잘했거든요. 그런데 한 학생이 데이터를 입력해본다고 했는데 일주일 있다가 포기했어요. 왜냐하면, 범위가 너무 크고 책이 너무 많아서!

빼곡하게 쌓여있는 책들. 정리하는 데만도 며칠이 걸릴 것만 같다. ⓒ 유정서

모든 분야를 다 취급하다 보니 그때부터 이미 책이 제일 많았죠. 지금은 13만 여권 정도 되는데 서울에서 있을 땐 더 많았지요. 너무 많아서 다 버리고 왔으니까. 보통 서점은 잘 팔리는 소설이나 잡지 등을 많이 놔두는데 나 같은 경우는 책이라 생각되는 건 그냥 닥치는 대로 다 모았죠.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책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전문서적, 학술서적 위주로 찾아다녔어요.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심지어 러시아어까지도. 내가 못 알아듣는 책일지라도 다 취급했어요.

나중에는 (데이터 입력을 하는) 전문 회사와 함께 그 작업을 시작했어요. 아르바이트는 중앙대에 문헌정보학과 학생들이 있어서 그 친구들과 일을 했었지요. 컴퓨터를 위 아래층으로 설치해야 했어. 그 당시만 해도 디스켓을 썼어가지고 그걸로 작업을 했지여. 근데 중요한 건 타산이 맞지 않는 거지. 책으로 얻는 수익보다 그 정보 데이터를 입력하는 데 너무 비용이 큰 거예요. 잃은 돈도 많았고, 그때 전국적으로 도서 정보12만 부를 입력했는데 그중 8만 부가 우리 서점 책이었어요.

그리고 이후에 벤처 기업 열풍이 꺼지면서 그 회사가 망했어요. 그 데이터는 모두 잃었지만 그때 데이터를 입력하는 그 과정에 대해 배울 수 있었죠. 지금은 그때만큼의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지도 않고요. 그렇게 온라인 판매를 내가 독자적으로 시작한 게 2001년이었어요. 단양으로 내려오기 전일 때였는데, 책이 너무 많으니까 역시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더라고요. 그 당시엔 대형 서점에서도 도입하지 않고 있던 바코드 시스템이 필요할 정도로 책이 많았거든요. ISBN(국제표준도서번호)도 넣어야 했고. 입력하는 건 어떻게 했는데 바코드와 ISBN을 연계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겁니다. 한 달 계획했던 걸 반년이 돼서야 끝낼 수 있었죠.

먼지 쌓인 옛날 책들 ⓒ 유정서

책이 너무 많아서 데이터 정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던 것도 있지만, 결정적 계기는 ‘책을 보내주지를 못했던 것’ 때문이라 할 수 있죠. 주문이 들어왔는데 찾아서 배송을 못 하는 거예요. 어느 영역 무슨 칸에 있는 건 분명한데 중요한 건 ‘정확하게’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거지요. 소비자들도 많이 참아준 거지만 한참이 지나도 책을 못 보내주니까. 사람들이 ‘도둑놈’, ‘사기꾼’...... 별의별 말을 다 들었었지. 지방에서 일부는 찾아오기까지 했었어요. 오죽하면 ‘안티새한’까지 생겼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나도 정신적으로 너무 많이 지치더라고요.

마침 나이도 꽤 들었고,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보자’하면서 마음먹게 된 게 다 버리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이었어요. 고향이 제천이라 제천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정보가 없으니까 폐교를 알아봤습니다. 그러다 오게 된 곳이 단양이에요. 근데 서울에 있던 데이터를 그대로 썼던 것은 아니고. 이전에 겪은 게 있었으니 그 데이터 대부분을 다 지웠었죠. 다시 시작한 거지요.

Q. 책은 어떤 방식으로 들어오나요?

사기도 하고, 회사나 개인한테 그냥 받기도 합니다. 특히 교수처럼 전문 서적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은퇴하면서 책을 처분해야 하는 데 마땅히 버릴 곳이 없고 할 때 헌책방에 주거나 저렴한 값에 팔아요. 서로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거라 할 수 있죠.

지금 들어오는 책은 이전에 들어오던 양의 1할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책은 여전히 많지. 다행인 건 그래도 갖고 있는 책 양이 많아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책 읽는 사람들

Q. 시골 산속 다소 깊은 곳에 위치해있는데, 사람들은 많이 오나요?

지금은. 많이 알려져서 직접 오는 사람도 많아요. 매스컴을 많이 타가지고. 옛날에는 입소문이라 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이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계속 연관이 되는 거죠. 소문이 나잖아요.

그래도 몇 년 전 여름에 KBS ‘1박 2일’에 방영되었던 것이 결정적 계기였던 것 같아요. 심하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사람들이 서 있고 그랬었어요. 온라인 판매로 운영하던 때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와버리니, 마치 서울에서 서점을 했었을 때처럼 정신없이 바쁘고 그랬었죠. 내가 도시에 있는 건지 숲에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으니까요.

이제는 하루에 평균 2~3팀 정도가 옵니다. 휴일이나 휴가철에는 좀 더 많지. 대게 오는 사람들은 처음 오는 사람들이지요. 꼭 한 번 ‘이곳’을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나잇대도 다양하고, 가족 또는 친구들끼리 많이 왔지요. 웨딩 촬영도 하고 그랬어요. 근데 또 그게 싫지 않았어요. 흑자가 없더라도 그렇게 사람들이 와서 보고 갔으면 했거든요. 왜냐하면, 단양 내려올 때 목표가, ‘문화관광서점’이었으니까요.

꼭 관광 때문이 아니라도, 서울에 있을 때도 절반이 지방에서부터 오는 분들이었던 이유도 있습니다. 단양으로 내려오면서, 서점이 딱 중간에 위치하게 돼서 그분들이 오기 더 편해진 것도 좋구요.

Q. 주로 찾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가요? 주로 들어오고 나가는 책 종류는?

들어가고 나가는 책이며, 갖고 있는 책이 전문 학술 서적이 많다 보니 서울에서 서점할 때 대상층은주로 대학원생 위주였죠. 나가는 책 역시 당연히 그런 서적들이었고. 그건 우리 서점 책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워낙 구하기 어려운 책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이런 사람들의 경우 해당 분야의 특정 서적이 필요했으니까요.

지금은 달라진 게 있다면,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지금은 연령대며, 지역이며 워낙 다양해졌다는 것.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구하기 어려운, 몇 권 안 되는 전문 서적들이 많이 나가죠.

Q. 기억에 남는 단골손님은?

서울에 있을 때부터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천안에 사는 분인데, 서울에 있을 때부터 기차 타고 오가고 그랬죠. 여기로 옮기고부터는 아예 5~10명 정도 책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 다 데리고 오더라고. 책도 보고, 막걸리와 김밥 같은 것들 들고 잔디에 앉아서 책 읽다가 가는 거지요. 서울에 있을 때는 한문서적을 주로 읽으시더라고, 고전 국역들. 일반 사람들이 읽기는 어렵지요. 한때는 한의학책에 빠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야생화 관련 서적에 빠져서 심취하고 그러더라구요. 제자들도 있는 사람이고 그래.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지요. 그 외에도 서울에 있을 때 학생으로 일하던 사람도 가끔 찾아오고. 그런데 내가 처음에 못 알아보고 그랬지요. (웃음) 아, 또 그때 고려대 앞에서 할 때라 학생 시위 진압하던 전경이 은퇴해서 온 것도 기억이 나네요.

 새한서점 건물 뒤쪽엔 야외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사이에 있는 냇물 소리가 기분 좋습니다.  ⓒ 유정서

새 책이 헌 책이 되고

Q. 왜 헌책방일까요, 왜 새한서점일까요?

먼저 왜 새한서점이냐 한다면, 그건 아까도 말한 것처럼 책이 워낙 많은 것뿐 아니라 마침 또 구하기 어려운 전문 학술 서적이 특히 더 많으니까요. 지금은 이렇게 숲 속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휴식을 위해 오기도 하구요.

그냥 잘 팔리는 책, 새 책은 주변 서점이나 인터넷에서 구매하는 게 훨씬 더 쉽죠. 하지만 이곳에 오는 건 그것보다는 ‘구할 수 없는 책’이 구하고 싶은 겁니다. 헌 책이라서, 가격이 싸서라기보다는 보통의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 꼭 읽고 싶은 책을 보러 오죠. 또는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 안에서 자기가 모르는 책들을 찾기도 하고.

또 다른 이유로는, 우리나라 책 산업이 이런 헌책방 문화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책의 수명이 짧기 때문에요. 책이 인쇄되고부터 절판되기까지의 기간이 매우 짧거든요. 결국 절판된, 팔지 않는 책을 사려면 어디로 가야겠어요? 헌책방이지!

이 대표가 정리해야 할 책이 아직도 산더미입니다. ⓒ 유정서

이전에 한 사회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지나가는 말로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지적 허영을 채워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느냐’고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 난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책꽂이를 채워가는 책을 보면서 뭔가 뿌듯한 마음이 들었던 적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읽고 싶은 책마다 모두 사서 보기엔 아직 학생인 나의 지갑이 많이 얇습니다.

그래서 종종 나는 헌책방에 갔습니다. 헌책방엔 아주 오래되고 낡은 책도 있지만, 사실상 새 책에 가까운 책도 많으니까. 요즘 같은 여름에는 선풍기 바람과 함께 풍기는 낡은 종이 냄새가 재미있습니다.

도시를 벗어나 살아본 적 없는 내게, 그리고 나보다 먼저 이곳을 방문했을 다른 누군가 역시 이곳이 그저 단양의 관광지는 아님을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는 책을 왜 읽을까? 마음의 양식을 쌓기 위해서, 감수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터뷰의 마지막 이 대표가 말했던, ‘구할 수 없는 책’을 구하러 이곳까지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헌책방에 오는 이유는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이제 곧 우리네 집, 학교, 회사 근처에 매미 소리가 크게 들릴 것입니다. 숲 속에 직접 가지 않아도 됩니다. 선풍기 바람과 매미 소리, 그리고 시원한 물 한 잔이면 충분합니다. 이번 여름에는 우리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빠지게 되는 독서를 해보는 건 어떤지요. 너무 읽고 싶은데 구할 수가 없는 책을 찾아 헌책방에 가보는 것은 또 어떨까요? 단양 새한서점이면 더 좋구요.

*새한서점 안내
- 주 소 :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 56
- 대 표 : 이금석
- 운영시간 : 08:30 ~ 21:00
- 대표전화 : 010-9019-8443
- 홈페이지 : http://shbook.co.kr/

               < 출처 :  작성자 :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단 유정서(글) /
 문화포털 기자단 장수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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