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시선
인격과 정서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유년기의 아이들은 판단력이 분명하진 않지만 편견이나 차별이 없고, 불안정한 상태지만 온화하고 긍정적인 정서를 갖는다. 새로운 자극에 대한 흡수력과 호기심은 왕성하며, 그들이 바라보는 시대의 다양한 면면들을 그들만의 순수함으로 포장하는 특유의 재주를 갖는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고, 간과해버리기 쉬운 소박한 감동을 느끼며, 무뎌진 감성에 새로운 반응을 보이는 등 얘기치 못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할 기회를 갖게 된다. 아마 8살 소년 브루노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담은 클로즈업 장면이 쉽게 잊혀 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떨쳐버릴 수 없는 충격과 감동을 통해 아이의 순수함 속에 포장된 어른들의 어리석음을 뉘우칠 값진 기회를 제공한 주인공이기에 ...

낯선 호기심
브루노는 처음부터 이사 가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정든 집을 떠나는 것도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원치 않았지만, 나치장교인 아버지가 승진과 함께 전출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새로 이사 간 시골집은 그저 어색하고 낯설기만 하다. 군복 차림의 아저씨들만 서성이는 칙칙하고 스산한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온기라곤 어느 구석에서도 느낄 수 없는 생소한 공간이다. 학교도 다닐 수 없고 주위에 어울릴만한 또래친구도 없다. 모험심 많은 소년에게 내려진 “뒤뜰 출입금지령”은 그에게 그저 강한 호기심만 자극할 뿐이다.

창문 밖으로 어렴풋하게 보이는, 파자마를 입은 채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좀체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맑은 하늘 가득 거무튀튀한 연기를 내뿜는 굴뚝도 수상하지만, 연기가 피어오를 때마다 코끝을 어지럽히는 정체불명의 역겨운 냄새 역시 찜찜하고 불안한 기운을 감돌게 한다. 그뿐인가? 낡은 파자마를 입고 부엌에서 힘겹게 허드렛일을 도우며 감자를 깎고 있는 나이 지긋한 남자도 이곳에 오기 전까지 자신의 직업이 의사였다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얘기를 건넨다.

우연한 만남
엄마의 외출은 브루노의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뒤뜰을 지나 숲길을 내달리던 그의 발길을 멈추게 한 철조망 너머에 한 소년이 있었고, 그들은 금세 친구가 된다. 군인들이 옷을 다 가져가버려서 가슴 왼편에 숫자가 새겨진 줄무늬 옷을 입고 있다는 유태소년 슈물, 군인들이 이유 없이 옷을 가져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얘기를 건네는 군사령관의 아들 브루노, 두 소년은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마음을 나누며 서로를 알아간다. 철조망 너머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이해하기 힘든 아버지의 충고나 유태민족을 경멸하는 세뇌에 가까운 가정교사의 가르침, 그리고 그들이 적이고 악마이며 해충이라고 폄하하는 누나의 독설도 아이들의 순수함 속에선 어떤 작용도 미치지 않는다. 브루노의 눈엔 거대한 농장 안에서 농부들이 다함께 번호표 새겨진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스릴 넘치는 게임에 열중하고 있듯이 보일 뿐이다.

영원한 우정
어렵게 친구가 되었는데 다시 떠나게 되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이곳이 유년기를 보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엄마의 판단에 따라 이사를 결정한다.

브루노는 떠나기 전 슈물의 아버지를 찾는 일을 돕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 준비된 파자마를 입는다. 홍보용 영상물 속에 그려진 생기 넘치고 행복해 보이던 슈물의 생활공간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호기심과 슈물을 곤경에 빠뜨렸던 사건에 대한 미안함, 무엇보다도 서로가 진정한 친구라는 사실을 행동에 옮기고 싶었다.

그러나 농장의 분위기가 일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사람들을 짐승몰이를 하듯 다그치면서 폐쇄된 건물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하고, 브루노와 슈물도 군중 속에 휩쓸려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줄무늬 파자마를 벗는다. 두 손을 다급하게 움켜잡은 소년들의 눈동자에 공포와 불안이 차오르기도 전에, 머리 위에선 보드라운 가루가 날린다.

카메라 앵글은 이제 인기척 없는 가스실 낡은 철문을 물끄러미 비추다가 다시 그들이 벗어놓고 간 줄무늬 파자마가 가득 걸린 빈 공간 앞에 멈춰 서서 순수하고 호기심 많았던 소년의 시선을 대신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증오와 잔인함에 대한 비통한 절규, 무언의 처절한 몸부림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듯 말이다.

이종희 /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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