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주변에는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아무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기 보다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자세히 살펴보면 의외로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안보였던 것까지도 볼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걷기보다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일이 많아졌다. 가끔 말끔하게 단장된 한적한 가로수 길을 걸으면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 건립된 건물도 보게 되고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도 만나게 된다. 잠시 잘 꾸며진 공원 벤치에 앉아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며 지난날의 지워졌던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도시의 낭만에 젖는다.

1500년 전에 조성된 이탈리아 베네치아(venice)는 지금도 자동차가 없다. 차도가 없는 그곳에는 사람들만의 광장으로 채워져 있다. 도시 곳곳에서는 도시를 찾아온 길을 묻는 이방인들을 안내하는 경찰관의 친근한 안내와 광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만의 웃음과 정감이 넘쳐나는 생동감 있는 아름다운 도시의 고전과 현대인들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다.

도시권에서 주생활환경을 이루고 있는 많은 것 물리적인 것 중 주거건축의 비중이 크다.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주택가 이면도로에 접어들면 나지막한 담장 안에 드러난 붉은 벽돌로 치장된 2층 규모의 주택이 눈앞에 다가온다. 건축가 김 교수의 자택이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밴드(bend)풍의 맨사드(mansard)지붕과 다락방의 반원 창이 그 집의 얼굴이다. 헌 벽돌(used red brick)의 색감과 잘 어우러지는 담장이 넝쿨, 깊은 아치의 현관이 드려다 보이는 고풍스러운 동향(東向)집이다. 동쪽 마당에 감나무, 대추나무, 석류나무 등, 나무와 꽃들을 심고 화초 사이 작은 채소밭을 가꾸고 잔디를 심어 삼림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자연과 함께한 건축, 건축과 어우러진 공간의 연출, 건축을 소유하기보다는 이웃과 공유하며 더불어 사는 넉넉한 김 교수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듯하다.

울타리에 얹어진 줄장미가 만개하는 5, 6월이면 타는 듯 피어나는 꽃향기가 퍼져나가 지나가는 이웃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동네사람들이 마당까지 들어가 추억을 담는 모습은 꽃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이나 정겹다. 창문 위의 전통 기와로 의장효과를 낸 차양지붕은 현대와 고전과의 조화를 이룬다.
밝은 빛과 맑은 공기는 남향에 위치한 넓은 창문을 통하여 실내에 들어오게 하여 쾌적한 실내공간을 연출한다.

청주시 문화동은 구도심지(up town)에 위치한 주택가다. 드러냄 보다 숨겨진 공간미가 돋보이는 비움(void)의 건축적 사고가 고려된 주택이기에 설계자 김 교수의 애정이 남다르다.

복잡한 도시환경의 생활요건을 충족시키며 주거기능을 어디에? 어떻게? 적절히? 배치할 수 있을까?를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대지 주변은 4, 5층의 도시빌딩에 의해 둘러져 있다. 주택환경으로 2층 규모의 단독주택으로서의 입지여건은 부적절하다. 허나 대지 남측이 넓게 트여 있어 남향집의 조건을 충족시켜 주고 있어 다행이다. 파란 하늘과 맑고 밝은 빛나는 빛은 공간의 질을 높여주는 중요한 건축 내 외부공간의 요소이다.

좋은 집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잘 조합된 기하학적 구성의 평면과 외관의 아름다운 조형성을 추구해야 한다. 주택 정면에 보이는 부정형 아치(arch)의 아케이드(arcade)와 경사진 지붕에서 이어진 깊은 처마는 외부공간과 내부 공간의 관계를 풍부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드러내기보다는 숨겨진 공간미를 강조하고 있음이다.

건물 내외부에 사용되는 마감재의 경우 자연재료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때 자연과 동일한 질감을 얻을 수 있다. 현관과 아케이드 외부바닥에 사용된 목재는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숀’ 역할을 한다. 물리적 접근보다는 인간적 만남을 유도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충북대 입구 네거리에서 좌측 보행자 보도를 걷다 보면 반가운 찻집이 있다. 하얗게 꾸며진 여섯 개 둥근 아치 형태의 기다란 창이 찻집의 얼굴(facade)이다. 흰색 옷을 즐겨 입는 김 교수의 디자인이다. 창밖의 좁은 공지에는 잔잔한 조경으로 서너 개의 붉은 화분이 나란히 놓여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머물게 한다. 찻집의 정면은 서향이다. 창문은 겨울 오후의 짧고 긴 노을빛을 받아 고전양식의 건축미가 잘 드러나도록 한다. 가는 창살로 만들어진 투명한 창문유리면에는 드나드는 사람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이 잔잔하게 베어난다. 밖에서도 찻집 안이 들여다보이게 한 것은 주변 공간의 안과 밖을 하나로 보고자 하는 건축적 의도이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우리네 도시를 걸으며 좋은 건축을 만난다는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 길을 걷다가 아름다운 건축을 만날 수 있다면 이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자연과 함께한 아름다운 도시를 걷다보면 소박한 즐거움을 갖게 한다.

우리네 삶에 아름다움이 있게 되면 우리 모두의 마음에 미감(aesthetic impression)이 생성되어 생활에 정서와 안정감이 있게 된다. 아울러 이웃과 같이 기쁨과 건강을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정관영 / 충청대학교 건축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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