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청주의 미래, 용두사지철당간


최근 우리 사회는 인문학 열풍이 거셉니다. 각박해진 삶의 대안으로 급부상한 인문학이지만, 생각해 보면 각 분야마다 인문학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문화재 역시 인류 역사의 흔적이란 점에서 당대의 인문정신을 또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형상이 빚어지기까지 시대 상황과 사회 흐름, 문화는 물론, 그때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당대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크고 작은 흔적들은 미래 사람들이 단절된 시간의 침묵을 읽고 해독할 수 있도록 인문의 열쇠를 건네기도 합니다. 또한 그 흔적을 통해 시대를 불문하고 청주 땅에 살았던 사람들과 시공을 초월한 만남도 가능해집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엿보듯, 같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적층된 시간의 유영에서 미래를 담보한 지금 사람들의 오랜 모습과 대면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살았던 사람과의 첫 만남은 청주의 국보 ‘용두사지철당간’을 세운 초기 고려인입니다. 918년 고려가 생겨나고 44년 후인 962년(광종13)에 만들어진 철당간은 부처의 힘을 빌려 마을의 재앙을 막고, 극락을 염원하기 위해 용두사라는 절에 희사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청주 호족 김예종이라는 사람이 유행병에 걸리자 철당을 바쳐 절을 장엄할 것을 맹세하고 사촌형 희일 등과 함께 철통 30단을 주조해 높이 60척 철당을 세웠다’는 기록을 철통에 양각해 놓은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고층건물이 즐비한 세상이지만, 당시로썬 파리 에펠탑과 견줄 만큼 고려 초 인문의 정수를 담아낸 건축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국가기관이 아닌, 청주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세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60척 쇠장대가 파란 하늘을 찌를 듯 솟고, 이를 경이롭게 지켜봤을 고려인들은 오랫동안 허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도 당간을 세운 그해 3월은 청주가 들썩거릴 정도로 큰 잔치가 벌어지지 않았을까요.

또 하나, 철당간과 철통의 명문을 통해 고려와 청주, 청주사람들의 관계망을 그려볼 수 있다는 겁니다. 청주 호족들은 고려 건국과 안정에 큰 역할을 합니다. 태조 왕건을 도와 개국공신에 오른 청주 한란과 광종의 어머니 신명순성왕후가 충주 유씨 가문의 딸이라는 것에서도 고려 왕가와의 친밀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왕의 조력자로서 청주 호족들의 긍정적인 관계망은 청주의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했을 것이고, 철로 당간을 세울 만큼 재력도 상당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종교로 규합하는 불교국가 고려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도 용두사에 세운 철당간의 면모로 드러납니다. 철을 다루고, 30개 철통을 주조해 조립하고, 철통에 글자를 양각한 솜씨를 볼 때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과학기술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확장된 과학기술로 ‘직지’라는 고인쇄문화 결정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록정신과 장인정신, 불교정신까지 하나로 보여주는 용두사지철당간은 청주사람들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유구한 세월 때문일까요. 30개 철통으로 세운 당간은 현재 20개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대원군이 당백전을 만들기 위해 가져갔다는 설도 있지만 이를 증거 할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잦은 전쟁과 난으로 폐사되면서 고려의 돋보이는 기록정신도 보이지 않습니다.

▲ 용두사지철당간 1915년

다만 1915년에 찍힌 사진 속에 기울어진 철당간의 모습과 기운 철당간을 세우고자 일본이 철통 안을 시멘트로 채웠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자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입니다.

고려의 절터를 굳건하게 지켰던 철당간 자리는 다른 폐사지와 달리 청주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가 되었습니다. 경건하게 마음 곧추세우고 법당으로 향했던 발길 위에는 고층 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높은 빌딩들로 60척 철당간의 위용도 감해지긴 했지만 침묵 속에 응시해야할 천년 세월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렬한 빛을 발합니다.

잠시 눈을 감아 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통로로 서있는 용두사지철당간. 천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천년의 시간으로 흘러가는 지금, 청주사람들은 이 철당간을 세우며 몇 년의 미래를 생각했을까요. 우리는 또 몇 년의 미래를 생각하며 지금의 흔적을 만들어가고 있는 걸까요. 철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대지의 속내처럼 궁금해집니다.

*용두사지철당간(고려시대 국보 41)

청주 남문로에 위치하고, 두 개의 화강암 지주와 20(당초 30) 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간의 밑에서 3번째 단에 당기가 양각되어 있어 조성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당간 높이 13.1m, 당간주지 높이 4.2m이다.

충청타임즈 연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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