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주거를 위해 집을 짓는 건축과 경기를 위해 집짓기를 하는 바둑은 우리의 삶에서 건축과 바둑에서만 집짓기라고 하니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돌 하나하나는 그곳에 존재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나 여러 개의 돌이 결합하여 무리를 이룰 때는 생명력을 갖게 된다. 더욱이 돌의 생명력은 힘찬 세력으로 형성되어 백돌과 흑돌이 서로 격돌하면 큰 전장을 방불케 한다.

돌의 활동 무대는 바둑판이다. 대국자는 바둑판이라는 대지 위에 집을 짓고 백지 상태의 대지 위에 상대방의 대응에 따라 집을 짓는다.
건물은 대지 위에 세워진다. 그 자체로 혼자서만 존재할 수 없다. 모든 대지는 그 위치, 크기, 형태 등 저마다 다른 특성이 있다.
바둑에서는 주어진 바둑판의 대지위에 집을 짓지만, 건축에서는 주어진 대지는 물론 대지밖에 존재하는 많은 요인들이 건물의 설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훌륭한 건축물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대지의 힘과 정신을 충분히 알고 이해해야 한다. 사이몬즈John Ormsbee Simonds는 대지를 알고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대지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내가 만약 주택을 설계한다면 날마다 건물이 세워질 대지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자리를 깔고 차를 마시면서 오랜 시간 머물기도 한다. 이 작은 대지의 분위기와 한계, 가능성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설계에 임한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이미 건물의 상세한 부분까지도 충분히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라는 그의 얘기에서 아름다운 경치가 있다면 그 경관을 어떻게 대지 내부로 끌어들이며, 주변 간선도로의 자동차 소음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 근린공원과 대지 내의 오픈스페이스는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이웃에 황폐한 낡은 건물은 어떻게 차폐시킬 것인가 등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종합계획(Master Plan)을 세운다.

건축물의 설계는 건물 프로그램의 요구와 대지의 잠재력을 건축가의 창의력을 통해 구안하고 건축주와 타협해 나가는 과정이다.

지인들과 취미 삼아 두는 바둑은 하등의 부담이 없다. 그러나 전문기사의 바둑은 한낮 소일거리나 유희가 아니다. 한 수 한 수는 끊임없는 자기와의 투쟁이며 훌륭한 경기를 위해서는 뼈를 깎는 훈련과 노력이 있어야한다.

건축은 더더욱 함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건물은 한번 세워지면 수십 년 수백 년간 존재한다. 하나의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과 시간, 노력이 필요하다. 잘못 설계된 건물은 수명을 다할 때 까지 사용자에게 피해를 주며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다.

‘건축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다’ 건축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 지지만 그것은 인간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훌륭한 건축가는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봄을 시샘하는 3월이다. 복잡다단한 사회의 안전망은 여전히 파열음이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새봄에는 소통과 공감으로 아름다운 집을 짓는 정치가, 건축가가 많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공학박사․충청대학교 겸임교수 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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