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면, 인도의 한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하루가 시작된다. 두 아이의 엄마 샤시는 인자한 시어머니와 가부장적인 남편과 함께 산다. 우월한 ‘비주얼’은 물론이고 너그럽고 자상한 성품, 능숙한 살림 솜씨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그녀다. 홈 메이드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던 라두(인도 디저트)까지도 입소문이 나는 바람에 그 명성 또한 자자하다. 그러나 남편은 음식 말곤 잘하는 게 없다는 농담을 던지며, 그저 아내는 잔심부름이나 하고 조신하게 살림이나 잘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가족들이 자신을 무시하며 창피한 존재로 여긴다는 점이다. 영문판신문은 아내와 걸맞지 않는다고 단정 짓는 남편, 엄마는 학교상담을 위한 보호자로서 자격미달이라 여기는 딸, 샤시는 가족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에 주눅 들고 상처받으며 치명적인 결점을 안고 사는 사람처럼 심각한 콤플렉스에 사로잡힌다. ‘영어’는 마치 그녀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몹쓸 곰팡이처럼 보여 진다.

그러던 어느 날, 샤시는 딸 결혼식 준비에 도움이 필요했던 큰언니의 초청으로 뉴욕에 가게 된다. 가족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실현되는 순간, 샤시는 아이들을 두고 홀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 달갑지 않다, 안타까운 점은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이 바로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란 사실이다.

<굿모닝 맨하탄>은 샤시가 깊은 열등감에서 벗어나 또 다른 자아를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나간다. 비영어권에 사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영어’를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한 여성이 자존감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가족 간의 관계를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한다.

샤시는 뉴욕 거리를 거닐다가 우연히 ‘영어 4주 완성’ 버스광고를 보고 비밀리에 학원등록을 마친다. 기내에서, 그리고 입국심사대에서 맛 본 극도의 긴장감과 낯설음을 또 다시 경험하기 싫었고,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겪은 모욕감 또한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에 어렵게 용기를 낸 것이다. 무엇보다도 영어 못하는 아내로 엄마로 살아오면서 무너져 내린 자존감이 회복되길 바랐고, 남모르게 영어를 배워서라도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동등하게 존중받고 싶었다.

샤시는 열정을 다해 매순간 영어공부에 최선을 다한다. 용기를 갖고 도전하는 그녀는 진정으로 아름답다. 하루가 다르게 영어실력이 향상되어갔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 영어실력 향상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배움의 과정 속에서 이미 용기와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고, 자신 스스로를 대견해 하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함께 영어공부를 하던 프랑스인 요리사 로랑은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런 존재인지 일깨워주었고, 영어 선생님을 포함한 다른 친구들 역시 샤시가 얼마나 소중하고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인격체인지 깨닫도록 도움을 준다.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후반부 샤시의 ‘5분 스피치’ 안에 충분히 녹아 있다. 가족은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혼식 축사를 영어로 당당하게 구사하는 샤시, 놀라움과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당황해 하는 남편과 딸, 마지막까지 진심어린 지지를 보내며 용기를 주었던 학원친구들, 하마터면 마무리 짓지 못했을 마지막 테스트의 장을 야외 결혼식장에서 펼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그것은 130분이 넘는 긴 러닝 타임을 흐뭇한 기다림으로 함께 달려온 관객들에게도 특별한 감동으로 전해진다. 더 나아가 활기찬 뉴욕의 거리, 우유에 커피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 같은 샤시의 눈, 그녀가 걸치고 다니는 다양한 사리, 한바탕의 축제를 연상케 하는 인도 전통결혼식 등 이국적인 볼거리들과 어우러지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다시금 상기하게 하며, <굿모닝 맨하탄>을 오랫동안 유쾌한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만든다.

이종희/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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