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레이크파크 르네상스 – 충북의 물길에 깃든 이야기를 찾아가다 (옥천Ⅰ)

옥천 청성면 조령리 높은벌에서 본 풍경, 금강이 조령리를 품고 휘돌아 흐른다.

오래 전 어느 날 흙먼지 날리는 옥천 강가 흙길을 걸었다. 산 뒤로 떨어지는 해가 강에 햇빛 기둥을 만들었다. 한 남자가 그 물에 발을 담그고 낚싯줄을 던졌다. 누렁소가 강둑 위에서 풀을 뜯고 있을 때였다. 합금리 어디쯤이었고 금강이었다. 20세기 말이었다. 그날 이후 옥천을 자주 찾았다. 이번에는 청산면, 청성면, 동이면, 이원면 일대 물줄기를 찾아 다녔다. 옛날에 보았던 그 풍경을 보고 싶었다. / 글·사진 장태동

 

옥천 이원면 어름치가 사는 금강

보청천과 금강이 만나는 풍경

 유장하게 굽이치는 금강 줄기가 조령리 산하를 안았다. 서쪽에서 흘러온 금강은 조령리를 크게 휘감아 돌면서 북으로 흐르다 다시 서쪽으로 굽이쳐 흘러간다. 북쪽으로 흐르던 물길이 서쪽으로 휘어지는 곳에서 금강은 청산면과 청성면을 지나온 보청천 물줄기를 받아들인다. 아직 물이 오르지 않은 나무들은 낱낱이 제 모습을 드러낸 채 두 물줄기가 만나는 강가 산비탈에 빗살무늬를 새기고 있었다. 그 풍경을 높은벌에서 굽어본다.
 높은벌은 해발 200m 정도에 자리 잡은 산마을이다. 오래 전부터 옻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옻마을’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옻나무와 함께 유명했던 건 가죽 나무였다. 해마다 봄이면 옻 새순을 따다가 큰 시장에 내다 팔았다. 가죽나무 순도 봄 밥상에 오르는 귀한 나물이었다. 오래 전에 타지 사람이 옻 유명세를 듣고 이 마을을 찾아왔다가 옻이 올라 고생한 적도 있었다. 옻에 민감한 사람들은 더러 그랬다고 한다.
 소로 밭을 매던 시절, 안개구름이 낮게 드리우는 날에는 ‘비탈밭’에 매어놓은 소가 있는 풍경에 선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우암 송시열의 흔적들

 높은벌에서 내려와 금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차를 멈춘 곳은 이원면 용방리였다. 그곳에는 천연기념물 어름치가 사는 금강이 있었다.
 강바닥에 구멍을 판 뒤 알을 낳고 잔돌로 덮어 알을 보호하는 탑을 쌓는 습성을 가졌다고 알려진 어름치는 한강, 임진강, 금강 상류에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옥천군에 따르면 용방리 금강에 사는 어름치는 1972년에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요즘은 어름치를 잘 볼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용방리 금강 물가에 앉았다. 물길은 넓고 잔잔했다. 강가의 마른 물풀이 바람에 흔들리면 잔잔한 수면에도 물결은 일어 물속 잔돌들이 어른거렸다. 물길 위쪽 여울에서 부서지는 물소리가 시원했다.
 어름치가 사는 금강은 조선시대 사람 우암 송시열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품고 흐른다. 정조 임금은 송시열 선생이 태어난 곳을 알리기 위해 ‘송시열 유허비’를 세웠다. 봉림대군(효종)의 스승이었던 송시열 선생은 ‘송시열 유허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났다. 그곳에는 ‘옥천 송갑조 유기비’가 서있다. 송갑조 선생은 송시열 선생의 아버지다. 송시열 선생이 태어난 집터 앞에는 기괴하게 생긴 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태어난 집터. 기괴하게 생긴 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 있다

고래를 닮은 장찬저수지

 이원천 상류에는 개심저수지가 있다. 그곳에 장화(장왜)라고 부르던 마을이 있었다. 남개와 북개로 마을은 나누어져 있었고, 북개는 수몰됐다. 지금도 큰 장화(장왜)골, 작은장화(장왜)골 이라는 이름이 남아있다.
 개심저수지 북서쪽에 있는 의평저수지를 지난 물
길이 이원천으로 흘러든다. 이원천이 이원1교를 지나는 곳에 현리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과 지방을 오가던 관리들의 숙박과 편의를 위한 역이 있었고, 월이산 중턱에는 옛 통신수단인 봉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이원천 여울에 큰 새 한 마리 우두커니 서서 물을 바라보다 날갯짓 몇 번에 파문을 남기고 날아오른다. 물은 흘러 충청북도학생수련원 옥천분원 앞에서 건진천을 만나 함께 금강이 된다.
 건진천 상류에는 장찬저수지가 있다. 저수지 물가 호떡집에서 사진 한 장을 보았다. 고래를 닮은 저수
지 사진이었다. 그래서 장찬저수지 마을을 고래마을이라고 불렀다. 저수지에 고래 모양의 조형물이 있고 물가에 데크길을 만들어 산책하기 좋다. 옥천군 자료에 따르면 장찬리는 800여 년 전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 살면서 마을이 생겼다. 장찬리 사기점터에 도요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사기그릇 파편들이 발견됐다. 지금은 토우를 만드는 예술가가 장찬저수지 물가에서 토우를 빚고 있다. 그토록 아늑한 자연의 품에서 토우는 천진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반긴다.
 
고래 조형물이 있는 옥천 이원면 장찬저수지. 고래를 닮아서 장찬저수지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정순철 선생의 생가

 굽이쳐 흐르는 금강은 높은벌 마을 아래를 지나 보청천을 받아들인다. 보청천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일제강점기 작곡가 정순철 선생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보은에서 시작된 보청천이 옥천으로 흘러드는 곳 첫머리, 대성리 마을. 대성리를 흐르는 보청천은 물가의 너럭바위와 수직 절벽이 어우러진 풍경을 선보인다. 보청천은 예곡리를 지나며 예곡천을 만난다. 예곡리 마을회관 서쪽 물가에 있는 커다란 나무 몇 그루와 절벽이 어우러진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 두 분이 그쪽을 가리키며 옛날부터 백호라고 불렀던 곳이라시며, 옛날에는 그곳에 시냇물이 흘렀다고 한다. 그제야 뭔가 아쉬웠던 풍경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그쪽으로 걸었다. 바위절벽에 한자가 새겨졌고 나무들은 멀리서 보는 것 보다 더 컸다. 그 아래 서서 냇물이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갔는지 그려보았다. 마을을 나서는 길에 인사를 나누는데, 젊은 할머니께서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를 보며 독립유공자의 손부시라고 일러주신다.
 보청천으로 흘러드는 이름 없는 물줄기가 교평리 마을을 지난다. 교평회관 뒤 골목길을 찾아간 이유는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이라는 노래 때문이었다. 옛 동요를 흥얼거리며 마을 아주머니께서 일러주신 ‘뒷골’ 정순철 생가로 걸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미래는 어린이에게 있다며 소파 방정환 선생과 어린이를 위한 모임인 ‘색동회’를 만들었다. 방정환 선생과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고,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했다. 작곡가 정순철 선생은 동요를 짓는 일로 어린이를 위했다. ‘짝짜꿍’을 듣고 부르며 컸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하는 졸업식 노래는 광복 이후 1948년 정순철 선생이 지은 곡이다. ‘아기별’, ‘시골밤’, ‘어깨동무’ 등 40여 곡을 지어 어린이에게 바쳤다.
 
 
옥천 청산면 교평리 마을 벽화. 일제 강점기 작곡가 정순철 선생이 작곡한 졸업식 노래 악보도 보인다.
옥천 청성면 고당리 보청천 물가의 상춘정. 물에 비친 풍경에 운치가 더한다.

 

보청천과 어우러진 상춘정

 보청천 하류로 가는 길에 너른 들, 너른 물이 만들어낸 평온함에 언덕 위 정자 하나가 생기를 불어넣는 풍경을 보았다. 늘 푸른 봄, ‘상춘정’이다. 보청천은 그렇게 흘러 청성면 고당리에서 금강을 만난다. 금강은 동이면 청마리와 청성면 합금리 사이로 흐르며 물의 나라 옥천의 풍경 한 조각을 완성한다.
 해가 기우는 금강은 고향 같다. 누런 소가 강가 둑에서 풀을 뜯고, 강물에 발을 담근 아저씨가 던지는 낚싯줄이 금빛 햇빛에 빛난다.
산 그림자가 강에 비치고 햇빛이 강을 물들인다. 강가의 옛 학교에 도착했다. 담도 없고 교문도 없는 학교는 이제는 더 이상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폐교다. 울타리가 있었을 법한 곳에는 커다란 활엽수가 저 혼자 커버렸다. 나무 아래 세발자전거마저 조용하다. 오래 전에 보았던 폐교가 된 초등학교 운동장 봄 풍경이다. 그곳에 마을을 지켜준다는 신앙의 대상인 청마리 제신탑이 남아 마한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합금교차로를 찾아간다.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길은 이내 비포장 흙길로 이어진다. 터덜거리며 느릿느릿 달리는 차는 강마을 풍경이 있어 오히려 이 길에서 편안하다. 강 건너 마을이 가덕리다. 가덕교 서쪽 끝 아래가 옛 나루 자리다.
 청마3길로 내려서서 조금 가다보면 물 아래 잠긴 도로의 흔적이 보인다. 강 건너편에 있었던 물레방앗간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길마저 없었을 때는 나루에서 배를 타고 물레방앗간을 오갔다고 한다.
 
 
옥천을 대표하는 별미 도리뱅뱅이(2007년 촬영)

 

취/재/후/기 - 도리뱅뱅이

기름에 튀긴 피라미에 양념 더해 지역 대표 별미

 ‘도리뱅뱅이’란 피라미를 잡아 배를 따고 내장을 꺼낸 뒤 기름에 튀겨 만드는 요리다.
기름에 튀긴 도리뱅뱅이에 양념을 입혀 상에 내는데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다. 기름에
바싹 튀겨 고소하고, 양념 맛 때문에 느끼하지 않다. 맥주 안주로 제격이다. 도리뱅뱅이
도 제철이 있다. 5월 피라미가 살이 부드럽고 맛도 제일 좋다는 것이다. 요즘은 빙어로 도리뱅뱅이를 만드는 집이 많다. ‘피라미 도리뱅뱅이’의 맛이 그립다.
 옥천 도리뱅뱅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 후반에 닿는다. 경부고속도로가
생기기 바로 전에 타지에서 옥천 금강에 놀러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잠수해서 고기를 잡는 고기잡이 전문가였다. 그 사람들이 금강에서 식당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고기로 해먹을 수 있는 요리 몇 가지를 가르쳐줬다는데 그 중 하나가 도리뱅뱅이였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옥천 금강에서 도리뱅뱅이를 파는 식당 아주머니께 들은 얘기다. 옥천의 특산물 먹을거리로 자리 잡은 도리뱅뱅이는 이렇게 시작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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