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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오피니언칼럼
쑥 뜯던 날의 풍경화
함께하는 충북  |  chungbuk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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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0  14: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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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으로 쑥내가 가득 풍긴다. 찜솥에 불을 올린 뒤 김이 오르면 잠깐 식혔다가 참기름을 묻혀 담는다. 요즈음 같은 폭양에 떡을 쪘으니 얼마나 더울까마는 고소한 참기름과 특유의 쑥내음이 상쾌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동기간들과 개떡을 쪄먹는다. 초봄에 뜯어 데쳐서 얼려놓고 쓰는데 반죽을 하고 보니 약간 부족했다. 아무리 봐도 마땅한 데가 없다. 야들야들 올라 온 과수원의 쑥은 제초제를 뿌려도 몇 차례는 뿌렸을 테고 밭둑에는 보나마나 너무 쇠었다. 하릴없이 그냥 돌아오는데 야적장 근처에 움쑥이 있다. 부랴부랴 뜯어 반죽에 보탠 것이 남다른 향으로 맛을 돋웠다.

공사장 너머에 밭 한 두럭이 있고 빈 터의 끝이 밭둑이다. 밭주인은 말 그대로 쑥대같이 올라오는 쑥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을 테고 낫으로 쳐내면서 초봄에나 있을 법한 통통한 쑥이 지천으로 자랐다. 움쑥이라 반죽도 차지고 쪄 냈을 때 파랗게 물든 빛깔도 산뜻하다. 여름인데 어쩌면 이런 쑥이 있나 싶다. 언제 먹어도 각별한 맛이었지만 여름이라서 없겠지 하고 단념했다면 독특한 향기를 맛볼 수 있었을까. 약간 모자라기는 했어도 그냥 저냥 괜찮았는데 공사장 근처의 움쑥이었다는 게 특별하다. 제 철은 아니어도 버금가는 뭔가는 있고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처럼.

몇 해 전에도 제 철이 아닌 때에 쑥을 뜯은 적이 있었다. 이십 칠 년 전 큰애의 백일잔치 때였다. 8월 7일생이었으니 백일은 정확하게 11월 14일이었다. 그 즈음 어머니가 하루는 과수원에 가서 쑥을 뜯어오라고 하셨다. 백일을 사나흘 앞두고 음식 준비에 한창 바쁠 때였다. 수수팥떡에 쑥 절편을 곁들인다는 말씀이었으나 내키지는 않았다. 된서리가 내린 끝이기도 했고 지금과는 달리 80년대 초의 11월은 무지하게 추운 엄동설한이었다.

쑥이라니 그것도 새파란 쑥을 뜯으라니 의아할 밖에. 눈치를 알았는지 어머니는 나무 밑에 가면 많을 거라고 덧붙이셨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바람에 더는 핑계를 댈 수가 없었다. 옷을 든든히 입고 바구니와 창칼을 들고 나섰다. 봄에도 나물을 캔 적이 없는 나로서는 참으로 얄궂은 기분이었다. 바구니를 낀 채 5리가 넘는 길을 가면서 사뭇 떨었다. 공교롭다고 생각했으나 어른 말씀이고 더구나 내 아들 백일잔치에 쓸 거라는데 싶어 꾹 참았다.
과수원에 도착한 나는 일단 밭두둑을 살폈다. 쑥은커녕 과수나무까지도 된바람에 떨고 있는 듯 을씨년스럽다.
 
얼마나 추운지 호미 날이 탁탁 튀어나간다. 잠깐 쉬려고 하면 몸이 또 얼어붙는다. 괜한 일을 한다 싶어 짜증이 났으나, 명색이 어른인데 아무려면 허튼 분부를 할까 싶은 생각이 앞섰다. 그래 콩을 턴 자리며 깻단이 쌓인 곳을 헤쳐 보았다. 놀랍게도 거기 이름 모를 풀이 잔뜩 올라 와 있다. 그 때의 놀라움이라니. 약속이나 한 듯 고물고물 머리를 쳐들고 있던 수많은 풀이 지금도 선하다. 바람은 귀 끝이 아리게 찬데 꽁꽁 얼어붙은 밭두둑에서 초록으로 뒤덮인 곳을 보게 될 줄이야.

얼마 후 문득 정신이 들었다. 한겨울에 어쩜 그런 풀이 있나 싶은 마음도 잠시 어딘가 나물도 있을 것 같아 사과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예측한 대로 거름으로 깔아 둔 지푸라기 위에 쑥이 소복하게 올라 왔다. 창칼을 댈 것도 없이 손으로 잡아 뜯었다. 나물 뜯는 재미를, 그것도 한겨울에 처음 알았다. 별안간 땀이 나고 바구니는 또 그 새 가득 찼다. 이만하면 충분하겠지 싶어 잠깐 손을 놓았다. 얼마쯤 그렇게 쉰 후 돌아가려고 일어나는데 저만치 나무 밑에 푸릇푸릇 돋아 있는 풀.

잰걸음에 가 보니 질경이와 냉이가 소복하다. 냉이는 흙을 털고 질경이는 수내기를 잘라 따로 모았다. 나물이라 해도 봄에는 앙상했는데 그 때는 의외로 살쪄 있었다. 어지간히 캤다 싶어 밭고랑을 돌아 나오는데 저만치 또 보였다. 한 번만 캐야지 하고 담다 보면 또 눈에 띈다. 자꾸만 눌러앉아 캤다. 이 겨울에 무슨 쑥이냐고 했던 불만도 사라졌다. 쑥 외에도 질경이와 냉이로 바구니가 꽉 차 버렸다. 집에 와 펼쳐 보니 쪽마루에 가득하다. 떡잎까지 새파란 게 다듬을 것도 없다. 덤으로 캐 온 냉이를 삶아 무치면서 봄 시절 못지않게 새파란 나물을 새삼 보았다고나 할지.

이듬으로 나오는 게 가끔은 더 특별한 의미로 바뀌는 것 같던 그 기분. 수수로운 마음에 뒤란을 돌아가니 빈 터에 민들레가 흐드러졌다. 민들레는 당연히 4월의 꽃인데, 진즉에 피었어야 할 게 이제야 만발한 듯 내심 짠하다. 건축 사무실 마당에 쌓인 나무토막을 보니 이른 봄 갓 깨어난 민들레가 자재에 깔리면서 홍역을 치른 성 싶다. 얼마 후 자재가 옮겨지면서 한여름에 일제히 피어났을 테지. 4월 초 밭둑이나 길가에 핀 민들레는 무척 고왔으나 뒤늦게 핀 것도 나름 예쁘다. 공사 현장이라 온통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탓에 훨씬 고와 보인다. 제 철은 아니었으나 나중에라도 필 수 있다는 소망을 보는 듯하다. 엄동에 난데없는 쑥을 캐 왔을 때의 경이로웠던 그 기분처럼.

봄에 푸른 쑥은 당연하되 초겨울 회색 들판의 이년생 풀은 훨씬 어기차다는 걸까. 여름보다 푸른 진초록 영상이 겨울에도 나물 운운할 수 있는 배경에 엇갈린다. 신혼 시절 백일잔치를 앞두고 뜯은 나물의 기억으로 나 또한 제법 산다라 의지를 키우던 기억이. 눈보라 속에서 겨울을 난 것은 또 찬바람을 파고 든 초록이 더 강했었다는 이미지가. 언 땅을 비집는 뿌리심이야말로 새 봄에 푸르러질 원천임을 보면서, 겨울에도 푸른 나무새같이 힘들수록 꿋꿋해지는 삶도 아울러 헤아리면서 그렇게.

살다 보면 시기를 놓칠 때가 있다. 한여름 쑥처럼 잘려나가고 봄 민들레가 건축 자재에 깔리듯 하는 상황이 속출한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나고 다 잃은 것 같아도 싹만 잘려나간 것으로 생각하면 희망은 보인다. 건축자재에 파묻혀 있다가 치워지면서 피어난 민들레 역시 살고자만 하면 죽지 않는다는 집념을 나타낸다. 당장은 어찌되었든 뿌리는 남아 있었기 때문에. 또한 무더기로 피었다고는 했지만 여남은 포기밖에 되지 않았는데 쓰레기뿐이라 더 푸짐하게 보인 것도 별나다.

지금은 또 한여름 폭양에 때 아닌 움쑥을 뜯어 개떡을 쪄 먹었다. 봄에 나올 때의 향 같지 않아도 사뭇 연하고 통통했다. 오래 전 초겨울에 쑥을 뜯던 기억은 또 초록이 되살아나는 듯 했지. 시기를 놓치고 한물 갔을지언정 방법을 찾다 보면 이듬으로 거둘 수 있다. 싹만 잘리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나올 줄 모르고 포기하는 것, 새삼 두려운 일이다. 한겨울 움쑥도 대견하지만 지금 이 축축이 낫질을 해대는 속에서 연하고 향긋한 쑥으로 자란 새 순은 대견하기까지 했다.

민들레와 쑥의 힘들었던 시절은 곧 전성기였다. 생애 최고의 영광이 아닌 어려운 중에도 꿋꿋이 헤쳐 나가는 과정이다. 얼마나 좋은 여건인가보다는 나쁜 여건이지만 어떻게 반전시키느냐의 문제다. 좋고 나쁜 걸 따지기 전에 적응도를 높이는 게 관건이다. 힘들 때마다 초록에도 이삭이 있구나 싶고, 푸르게 돋아날 뭔가를 꿈꾸며 살았었는데. 내일을 보고 살면 구름 속 태양까지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지 않을까. 햇살은 눈부시지만 구름을 뚫고 나오는 태양은 더더욱 강렬하다는 것, 악조건은 때로 활력소가 된다는 생각에 오늘 하루가 무척 희망적이었다.

이 정 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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