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마을 스케치

날씨가 썰렁하다. 비바람에 창문은 덜컹대고 종일 을씨년스러운데 무척이나 따스했던 도서관. 공휴일이라서 그런지 한 두 사람만 열람실을 오갈 뿐 사뭇 조용하다. 무료해서 창가에 앉으면 또 여직원이 틀어놓은 듯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 내 집 서재에서 따끈한 차를 마시며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 같다. 여기서 더 무엇을 바라랴 싶게 깨알같이 아기자기했던 도서관의 하루가 천금보다 귀하다. 남들은 그깟 정도에 뭐 그러랴 하겠지만 나로서는 그보다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 또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래 전 나의 소원은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었으면 하는 거였다. 도서관은커녕 서점이 없어 책을 사기도 힘들었는데 20년 후에 마침내 도서관이 생겼다. 꿈인가 싶을 정도로 좋았다. 이따금 가서 책을 읽다 보면 해 지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외진 데라 버스도 없고 택시를 타자니 왕복 만원이 넘었다. 어린애처럼 들떠 지내던 설렘은 간 데 없이 갈수록 식상해졌다. 주변의 아파트 사람들이 최고 부러울 때였다. 비가 오고 추운 날은 더 간절했으니까.

도서관 원정을 다니던 것과 비교하면 가당치 않은데, 그로부터 15년 후 집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생겼다. 걸어서 3분 정도라서 조용히 앉아 책 읽는 것만 빼고는 이웃에 마실 가는 기분이었다. 결혼한 뒤로부터 장장 35년 만이다. 살면서 짜증이 날 때마다 도서관 옆에 사는 게 평생 원이었던 시절을 돌아보곤 한다. ‘이젠 맘대로 도서관에 갈 수 있잖아’ 라고 하면서. 책도 많고 필요하면 컴퓨터에 여름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고 겨울에는 안방처럼 따스했다. 소원을 이루고도 다른 욕심을 부린다면 불평은 끝이 없다. 어떤 경우든 감사하는 게 최선이다.

사람들은 보통 만족스러운 일이 생길 때라야 감사하기 때문에. 기쁜 일이 생겨도 찌푸리는 사람을 보면 그나마도 괜찮은 케이스였으나, 특별히 감사할 일이 없어 보이는데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라도 존경할 만하다. 불평이 없기에 원망도 전혀 없을 것 같은 사람. 어떤 경우든 감사가 습관화된 인격적 향기에서 그 삶의 완성도를 보았다고나 할지. 불행한 사람은 작은 감사도 없지만 아주 작은 감사라도 있는 사람은 행복할 테니까.

어쩌다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을 감사의 마을을 상상해 본다. 하늘은 푸르고 예쁜 새들까지 날아 와 우짖는, 거기 언덕에는 또 크고 작은 나무가 자라고 나비와 꿀벌이 찾아든다. 꽃이 떨어지면 열매가 달리는데 감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덕목이라고나 하듯 열매 또한 다양하다. 색색가지로 달린 기쁨과 화평과 사랑 등의 열매를 보면 감사하는 사람들이 가꾸는 세상 그대로다. 감사의 마을에서 읽는 메시지가 그런 것일까. 쉬운 건 아니지만 털어서 먼지를 내듯 찾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행복한 사람 치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저만치 가다 보면 숲 속 골짜기에 오밀조밀 늘어선 집이 예쁘장했는데. 날개 푸른 새가 둥지를 튼 것도 같고 조개껍질을 엎어놓은 것처럼 혹은 여남은 개 돌섬을 다문다문 옮겨 놓은 듯한 지붕 밑에서 오순도순 정겨운 사람들. 이 세상 최고 아름다운 거라면 감사의 마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따스했던 그 환상. 행복이 감사의 깊이에 달렸다면 슬픔과 불행은 싹트지 못할 것 같다. 감사는 고결한 영혼의 얼굴이라고나 하는 것처럼. 실제 감사할 게 없다고 생각하면 한 개도 보이지 않으나 눈 씻고 찾으면 또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를테면 우리 생각대로 나타나는 신기루였던 것.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기도를 올릴 것 같은 사람들. 우리들 추구하는 행복 또한 멀쩡히 보이다가도 돌연 천 리 만 리 달아나곤 한다지만 무엇이든 기쁘게 받아들이고 감사할 때는 곁에 잡아둘 수도 있겠지. 나 또한 넉넉하지는 않아도 은행에 약간의 돈이 있고 이따금 찾아서 지갑을 채울 수 있으니 행복이 따로 없다.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은 많겠지만 더 어렵고 가난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기분이 언짢을 때는 나도 모르게 비관을 일삼다가도 어떤 사람 눈에는 또 행복하게 보이기도 할 테니 그만해도 괜찮다.

딱히 주소도 없고 어수선할 때만 찾는 곳이었으되, 나 자신 어느 날 감사할 일이 많은데도 투정을 일삼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참 힘들게는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아는 누군가를 생각하면 불현듯 경건해지던 기억. 요즈음 내 마음의 밭에 감사의 나무를 가꾸는 것도 새로운 일과다. 어느 날 나무가 수많은 잎을 달 때 보면 햇살도 한결 따사로운 게 마치 감사의 마을에 들어선 것 같다. 지도에도 없을 나만의 공간이었으나 각박한 날들에서도 그것을 보면 마음이 활짝 열리는 것 같다.

별이 금강석처럼 빛나고 바람이 명주올처럼 휘감기는, 그 마을을 생각하면 세상 모든 미덕의 근원인 감사와 그런 생활이 아니고서는 얻을 게 없다는 것도 수긍이 간다. 푸른 하늘의 새를 봐도 충분히 만족하고 기쁜 날들에서 소망의 탑 쌓는 행복 같은 것일까. 감사의 기도제목은 비록 크지 않아도 그 행복은 무한한 것처럼, 무엇이든 기쁘게 받아들이며 사는 것은 이듬으로 받을 길을 다져놓았다는 뜻. 감사에 인색하면 받는 것도 빠듯해지고 푼푼한 사람은 받는 것도 풍성한 것까지 헤아리면서 그렇게.

그런 데라면 찾아가기도 수월할 것이다. 이정표도 필요치 않겠지만 다만 한 가지 관문 통과 절차는 따르지 않을까. 가령 처음에는 누구나 올라탈 수 있지만 욕심이 초과될 때가 문제다. 어찌어찌 타기는 했는데 도대체 요지부동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문은 저절로 여닫히는 자동문이었으되 수속은 간단치 않았던 것. 욕심이라 해도 아주 없을 수는 없고 어지간하면 열리련만, 그나마도 정원이 초과될 때 몇 몇은 내려야 작동되는 엘리베이터같이 내려놓으면 되는데 나부터도 쉽질 않으니 공교롭다. 엉뚱한 비약이기는 해도, 무엇이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출입이 자유롭고 이웃집 다녀오듯 할 수 있으니 온전한 자기 몫이었다는 느낌.

한낮이 겨웠다. 감사의 마을이라니 그런 게 있을까마는, 감사하지 않고서는 행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나름 추론하면서 펼쳐 본 상상이었다. 감사가 넘치는 마을에서 길가의 꽃 한송이를 보는 행복을 그려본 셈이다. 작은 것에 만족하지 않으면 큰 것을 받아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곧 양질의 항암제요 해독제에 최고의 기쁨과 은총을 허락하는 덕목이었다. 이 세상 최고의 축복은 감사의 마음이고 그 마음은 또 벽에 던지는 공처럼 자신에게 돌아올 테니 스스로의 평화를 위한 것이며 그런 과정에서 누가 봐도 조용하고 겸손한 인격으로 승화될 테니까.

이 정 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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