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을 꿰매는 재봉질 소리에 눈을 떴다. 자작자작 허공을 박음질하는 빗소리가 귓바퀴에 쌓이며 두서없는 편안함이 이불 홑청처럼 나를 휘감는다. 내 팔을 베고 누운 영이는 혀를 내민 채 잠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쌔근거린다. 발아래서 자고 있던 철이는 내가 잠 깬 것을 눈치 챈 걸까. 겨드랑이 사이로 올라와 머리를 비빈다.

털을 짧게 깎아서인지 쫑긋한 귀와 반짝이는 눈이 영락없는 노루처럼 보인다. 오랜만에 한가로이 맞는 휴일 아침이다. 매해 맞는 신학기지만 신학기는 해마다 분주하다. 오지랖이 넓은 탓에 주말에도 쉴 틈이 없다. 주중엔 수업을 하고 밀려드는 공문을 처리 하느라 하루가 정신없이 흐른다. 주말엔 아이들 인솔해서 각종 행사에 참석하느라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의 연속이다. 봄이 부스럭 거리며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여름이 슬쩍 몸을 밀고 들어올 즈음 나는 조금 여유를 갖는다. 간만에 찾아온 편안함을 놓고 싶지 않았다. 눈만 뜨고 온몸을 침대에 널어놓은 채 요크셔테리아 두 마리를 끼고 창밖을 응시한다.

오늘 창밖엔 엄마의 재봉질 소리가 내린다. 빗소리를 타고 엄마의 얼굴이 하드커버의 표지처럼 떠오른다. 고단한 삶을 살았던 엄마. 응달에 놓인 물처럼 꽁꽁 언 삶을 살았던 엄마. 나는 엄마를 너무 오랫동안 응달에 홀로 두고 모른 척했다. 엄마는 재봉질을 좋아했다. 아니 옛날엔 난 엄마가 재봉질을 좋아하는 줄만 알았다.

북 실을 감고 바늘에 실을 꿰고 널빤지처럼 넓적한 재봉틀 발판을 구르던 엄마의 모습이 선하다. 엄마는 한복을 만들어 주고, 원피스를 만들어 주고, 심지어는 친구의 체육복을 보고 체육복도 그대로 만들어 주었다. 난 그 체육복이 싫었다. 엄마가 만들었기에 공장에서 만들어진 친구들 체육복과는 조금 달랐다. 그 다름이 싫었다.
 
체육 수업이 있는 날엔 체육복이 든 보조가방을 교실 구석에 처박아 놓고, 옆 반 아이의 체육복을 빌려 입곤 했었다. 엄마가 재봉질을 해서 옷을 만들어 주던 것이, 좋아서 한 것만은 아님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 당시 조금만 따듯한 눈길로 엄마를 데워 주었다면 엄마의 마음속 얼음이 조금은 녹았을 것을.

재봉질을 하다 간간이 긴 한숨을 쉬던 엄마의 얼굴이 오늘 빗소리를 타고 명치에 콕콕 쌓인다. 엄마는 한숨을 쉬며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린 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얼굴이 하드커버 안 쪽 목차처럼 펼쳐진다. 아버지는 장사를 하셔서 전국을 떠돌아 다니셨다. 아버지의 존재가 희미해져 갈 무렵 아버지는 바람처럼 휙 불어왔다 방향도 종잡을 수 없이 불어 갔다. 가끔 한 번씩 들렀다 가는 손님 같은 존재였다고나 할까. 한숨 같은 날들이 머릿속에 스치고 습습한 공기가 가슴을 누른다.

오빠가 시집 사이 간지처럼 휙 넘어 간다. 오빠는 음악과 시를 사랑했다. 오빠의 책을 몰래 보곤 했던 나는 그 시절 오빠의 책장에 빼곡하게 꽂혀 있던 에드가 엘런포우의 책을 읽고 충격과 감동에 소름을 밀어내곤 했다.
 
오빠의 방에 늘 틀어 놓았던 에너벨리라는 낭송 시와, 시 사이에 배경음악으로 삽입되었던 철썩이는 바닷가 파도소리는 아직도 귓전에서 맴도는 듯하다. 고개를 돌려 벽을 향한다. 빗속에서 같이 놀던 동생의 얼굴이 벽지 위에 하얗게 확대된다. 오빠가 군대에 가고 나는 동생과 둘이 엄마의 바느질 소리를 밤늦도록 들으며 여러 해를 보냈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기던 이야기, 한 번도 힘들다고 하지 못했던 이야기, 정작 예전에는 맘 놓고 할 수 없었던 옛이야기 구절을 오늘에야 곰곰 가슴으로 읽어 본다.

이런저런 상념의 끝자락에서 난 시를 생각한다. 구겨진 원고지 같은 뇌를 뒤치며 그 속에 숨어 있는 시 한편을 티슈 뽑듯 뽑아 든다. 정지용의 ‘옛이야기 구절’이 쑥~ 딸려 올라온다. 누운 채 정지용의 ‘옛이야기 구절’을 주절주절 읊조려본다. 오래 전 우리네 가족들이 서럽게 살다간 이야기다.

빗방울도 잠시 바느질을 멈추고 창에 붙어 내 읊조림을 듣는다. 기웃거리던 벚나무도 연초록 잎새를 귀처럼 쫑긋 세우고 창가를 떠나지 못한다. 군더더기 없이 감정을 절재하며 풀어 놓은 시인의 시에 감동을 받은 듯 빗물이 창에서 손을 놓고 눈물처럼 주르르 미끄러진다. 손을 놓고 허공으로 투신하는 빗물을 보며 헌신하며 응달에서 살아온 엄마의 얼굴을 본다.

아직도 응달에 서서 자식들 걱정하는 엄마에게 전화라도 넣어봐야겠다. 이젠 아랫목으로 들어오라고. 더 이상 얼음처럼 춥게 살지 말라고. 비가 자작자작 재봉질을 멈추지 않고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 날을 당겨온다.

김희숙 / 수필가, 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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