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자꽃

감자꽃 / 권태응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짧지만 유쾌한 권태응 시인의 동시 ‘감자꽃’이다. 일설에 의하면 시인은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을 빗대어서 쓴 시라고 전해진다. 이름을 바꾼들 한국인은 한국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자주색은 자주색이고 흰색은 흰색이다.

2018년은 삼일운동의 99주년이자, 충북 출신의 근대작가 ‘권태응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다. 충북 출신의 근대 작가 중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던 ‘권태응 시인’은 충주시 칠금동에서 태어났으며 독립운동가이자 농촌의 자연과 어린이를 사랑한 충북의 대표적인 동요시인이다.

권 시인은 충주공립보통학교와 경성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유학한 엘리트로 일찍부터 독립운동가의 기질을 가졌었던 걸로 보인다. 경성고보 재학 중 친일성향의 학생들을 구타해 종로경찰서에 15일간 구금돼 조사를 받기도 했으며 유학시절 항일비밀결사인 ‘33회’를 조직해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

1939년에는 일본 경찰에 검거돼 형무소에 투옥돼 수형생활을 한다. 1940년 출소 후 귀국하는데 수형생활 중 몸이 안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권 시인은 고향인 충주로 돌아와 야학을 열며 항일 사상을 강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을 위해 애쓴다.

1948년 동요집 <감자꽃>을 펴냈는데 이때 폐결핵이 손을 쓸 수 없을만큼 진행된 상태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2번의 피난을 가는 동안 몸이 쇠약해졌고, 결국 결핵약을 구하지 못해 1951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 감자꽃 노래비

충주시 탄금대에는 권 시인의 대표시를 새긴 ‘감자꽃 노래비’가 있으며 1976년부터 매년 10월에는 권선생을 기리기 위한 백일장이 개최되고 있다. 지난 2005년 권 시인은 국가보훈저의 심의의결로 공식적인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게된다. 올해 충주시에서는 문학단체 등과 협의를 통해 권태응선생의 1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 중이며 그동안 비석하나만 있었던 생가터를 매입하여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권태응 시인을 비롯하여 아직 알려지지 않은 충북출신의 문인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삼일운동 99주년을 맞이하는 해인만큼 나라를 위해 문학으로 저항했던 영웅들이 조명되는 그런 한해가 되길 바란다.

이 기 수 / 충청북도SNS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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