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날 토요일 오후이었어요. 시내에서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죠. 청주 꽃다리에서 청주교대 쪽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집을 향해 가려면 중간 쯤에서 우회전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2차로로 달리다가 우측 깜빡이를 넣고 3차로로 차로를 바꾸려고 했어요. 그런데 3차로에서 달리던 차들이 서로 바짝 붙으면서 도무지 끼워주질 않는 거에요.

그리고 갓길 차선에는 휴일이라 주차단속 하지 않는 틈을 타 불법주차 해놓은 차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죠. 결국 끼어들 자리를 내주지 않는 바람에 우회전을 못하고 별수없이 곧장 직진할 수밖에 없었고 청주교대, 분평동 쪽으로 쭈욱 돌아서 집에 다다랐어요.

속이 상하고 화가 나더라고요. 그렇다고 우회전해야 했던 곳이 차가 밀리거나 하는 그런 곳은 아니었죠. 한마디로 내 차가 별 볼품 없으니까 자존심 상해서 다른 차가 끼어들기를 내주기 싫었던 게 아닌가 생각됐어요.

내 차는 빨간색 프라이드이에요. 만일 중형차나 고급 외제차를 끌고 나왔다면 아마도 더 쉽게 양보 받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행여 고급차와 실랑이가 붙었다가 접촉사고라도 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니까요.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긴 하지만 차를 몰다보면 대체로 사람들은 평소와 달리 성품이 들뜨고 과격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가끔 난폭운전자를 만나기도 하고, 심지어 보복운전을 하는 사람도 목격하기도 하죠. 그런데 차 밖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개 평범하고 성격도 온순해요. 하지만 차만 타면 평소와 다른 성품을 보이는 경향이 많죠.

왜 그럴까요? 차를 운전하면 일단 차에 갖혀있는 꼴이어서 다른 운전자를 잘 보지 못해요. 얼굴을 서로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니죠. 게다가 차창 밖에 펼쳐지는 풍경들은 실제 피부로 느끼기보다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더 들게 하고, 또 차 속력이 빠를수록 그 정도가 심하게 돼요.

그렇다 보니 운전자는 상대방의 차종과 차번호판을 가지고 내 차와 비교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상대방 운전자를 판단하게 돼죠. 운전자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돈이 많든 적든지에는 무관심해지고 오직 차 그 자체만 보게 되지요. 그래서 차가 좋고 나쁨이 곧 상대방 운전자 판단기준이 될 때가 많아요. 아무리 부자이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도 경차를 타고 백화점 같은 곳을 찾았다면 아마 무시당하기 십상일 거에요. 차에 가려져 운전자의 진면목을 볼 수 없기 때문이죠.

난폭운전이나 보복운전을 하는 사람의 심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운전자의 나이와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 간에 상대방의 차가 내 차보다 고급지다면 주눅이 들고 반면에 자신의 차보다 덜한 차가 끼어들거나 무례하게 운전하면 자존심 상해하며 응징하려는 태도를 보이게 돼죠.

여기에 직장 상사에게 꾸중을 들어 기분이 우울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인 운전자는 더 취약하죠. 그 동안 쌓였던 화와 분노까지 보태서 상대방 운전자에게 쏟아내기가 쉬워요. 평소 새색시 같던 사람이 운전대만 잡으면 헐크로 변하는 사람들이 대략 이와 같은 심리가 있지 않나 싶어요.

만일 우리가 운전대를 놓고 걸어다닌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져요. 마주 오는 어르신이나 유모차를 밀고 가는 아주머니를 보면 옆으로 피해 길을 터주는 배려를 할 줄 알고, 때때로 몸 불편한 어르신을 만나면 부축까지 해드릴 아량도 생기죠. 사람을 직접 보고 대면하기에 버릇 없고 무례한 행동은 스스로 삼가게 되기 때문이에요.

겉모양에 현혹되지 않고 그 속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운전자에게는 특히...

강 창 식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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