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운 선율이다. 들을수록 차분한 멜로디가, 산새들 날개 혹은 골짜기의 물소리처럼 해맑다. 눈 감으면 아덴라이 들판의 초원이 아름답고 바람 또한 싱그럽다. 듣다 보면 구슬픈 중에도 훨씬 밝은 이미지다. 간절한 슬픔을 뛰어넘어 나름 극복한 배경이 있는 것처럼.

아덴라이 언덕(the Fields of Athenry)은 1970년 代 유행했던 아일랜드의 대중가요다. 일명 감자고개라고도 부르는 민족사상 최악의 대기근 때 얘기로 가사를 썼다고 한다. 마이클이라는 젊은이가 굶주림에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려고 트리벨리언의 옥수수를 훔친 게 그 발단이다. 1절은 절도죄로 형을 받은 마이클이 아내 메리에게 아들을 부탁하는 간절한 심경과, 2절은 또 그에 대한 메리의 다짐을 나타냈으며 끝으로 3절은 그 상황을 객관적 입장에서 서술해 나갔다. 영국의 식민제도에서 빚어진 아일랜드인의 비극과 저항을 담은 특별한 음악이었다는 뜻.

그래서 향수적인 멜로디로 남은 것일까. 노래를 부른 가수들 또한 어릴 때부터 귀에 익은 내용이었을 테고 나 역시 들을 때마다 특별히 감동적이었던 그 느낌 오래 간직하고 싶다. 한 줌 옥수수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산 마이클과 아내 메리는 당시 모든 아일랜드인의 비극이었거늘. 숱한 사람들이 기근으로 죽어갈 때도 대영제국 정부는 철저하게 무심했다. 그 무렵 외신에 따르면 보다 못한 이웃 나라에서 구호미를 보내왔으나 그마저 빼돌리기 위한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맞서 저항했다가 마이클처럼 유배형을 받은 역사적 사건.

아일랜드는 대서양 동북부에 있는 영국 제도 가운데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오래 전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아 오던 중 1846년에 감자 마름병이 퍼지면서 최악의 기근이 찾아왔던 것. 때맞춰 영국에서 옥수수를 들여오기는 했으나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결국 옥수수를 훔치다가 멀고 먼 오스트레일리아의 보타니 만灣으로 귀양을 갈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종일 들어도 물리지 않는 노래의 가사로 남았지만 기아에 허덕이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사치스러운 감정이다. 영국 식민지사史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곡에 나오는 젊은 부부의 아픔 때문이다.

불현듯 떠오르는 아덴라이 들판의 오래 전 풍경. 아득히 푸른 초원은 오랜 흉작으로 먼지만 풀풀 날리는 황무지가 되었다. 갓 결혼할 때는 푸른 하늘의 새들처럼 자유로웠건만 이제는 형을 받아 유배를 가게 되는 마이클과 영원히 떠나보내야 했던 메리의 독백처럼. 필경에는 유배지로 보내야 되는 마지막 밤 동녘이 훤해지는 걸 보고 무척이나 슬퍼했을 젊은 애기 엄마의 사연이 묻어날 듯 선하다.

수 만 리 떨어진 낯선 타국이고 백 년도 더 먼저 태어난 사람들의 노래였건만 지금은 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응원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스포츠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준 애국가였다니 민족적 설움이 깃든 노래라서 더욱 간절했을까.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더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나 이따금 경기장에서 함성처럼 울려 퍼질 때 구슬픈 뉘앙스는 간 데 없이 명랑한 것도 특이하다. 이기는 게 목적은 아니어도 경기를 전후해서 부를 때마다 최악의 어려움을 견딘 의지를 새길 테니 훈련이 수반되어야 하는 운동정신과도 웬만치 맞물리는 성 싶다.

아일랜드 사람은 밝고 쾌활한 게 특징이었거늘 별나게 구슬픈 이미지를 보면 명랑한 민족성 또한 세기적 기근 앞에서는 꺾일 수밖에 없었나 보다. 대서양 한복판에서, 멀어지는 고향 산천을 바라보며 끝없이 슬퍼했을 젊은 가장 마이클. 끝내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죽었을 인생 또한 가엾다. 메리의 불행도 마찬가지였으나 오래 전 남편을 태운 배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던 기억을 새기며 살았겠지. 그들 부부 말고도 계속되는 기근 때문에 이민을 떠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슬픔보다는 견딜만했을 테고 그 때문에 특별한 응원가로 되었을 테지.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지리적 조건만 봐도 대륙의 한 모퉁이에 붙어 있는 우리 한반도와 어지간하다. 일본은 또 영국의 식민지 정책을 본떠서 토지 수탈과 언어 말살 등을 일삼았다. 우리 또한 보릿고개 역사가 있는 것처럼 내 좋아했던 노래의 배경 또한 감자 대기근이었다니. 이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이따금 구호미를 실은 배가 달려오곤 했으나 한편에서는 본국의 쌀을 실은 배가 벨파스타 항구를 출항하고 있었다는 후일담 역시 좋은 쌀은 빼앗긴 채 초근목피로 연명했다는 일제의 강점기 흡사하다.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한 소절 음악으로 알게 된 젊은 부부의 사연이 가끔 이웃 사람들 얘기만치나 짠하다. 아일랜드인이 자기네를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비극적인 민족이라고 하듯 우리도 외세의 침략이 잦았던 과거사를 들먹이곤 했으니까. 한 나라든 개인이든 어려움은 있고 그 어려움이 곧 행복의 디딤돌인 것도 아름답게 승화된 노래 이덴라이 언덕의 이미지 그대로다. 백 년이 훨씬 넘은 지금 아덴라이 들판은 암울했던 역사는 아랑곳없이 또 한껏 푸르러질 것 같건만.

아무튼 좋아하는 노래가 또 하나 생겼다. 대중가요 치고는 드물게 예쁘고 차분한 선율. 바다 건너 먼 나라의 노래였는데 오래 전부터 들어 온 것처럼 친근하다. 슬프면서도 청승맞지 않고 고급스러운 멜로디 때문에 모두가 좋아하는 국민가요가 되었을 테지. 요즈음 같으면 바다 건너 먼 나라도 금방 다녀올 수 있는데 영영 헤어져 살았겠지 싶어 짠하다. 아무리 그래도 어제부터 틈 날 때마다 들은 게 수백 번 남짓이니, 스스로도 참 어지간히 음악 애호가라는 생각.

하기야 아일랜드의 국장國葬도 하아프였단다. 한 나라의 권위를 드러내는 휘장이 악기 문양이라니 좋아하는 정도가 그려진다. 더욱 그런 나라의 노래였으니 헤드폰을 꽂은 채 수도 없이 듣는 극성 또한 자연스럽다. 머나 먼 남태평양 보타니 만灣에 있는 남편의 안녕을 기원하며 살았을 아일랜드 여자 메리에 대한 연민이었던 것을. 남편 없는 불행도 오랜 날 그리워하면서 충분히 아름다운 삶이었을 것 같다. 이별의 슬픔을 안고 있는 한 그에 대한 사랑도 여전했을 테고 훨씬 후에 태어난 나까지도 가끔 아련해지면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으니까.

이 정 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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