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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단상
겨울의 단상
  • 함께하는 충북
  • 승인 2018.01.3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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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를 타기 위해 오송역을 향했다. 역에 도착했을 때 어둠이 그물처럼 내려와 역사(驛舍)를 가득 뒤덮고 있었다. 어둠의 입자를 밟으며 계단을 올라 열차가 멈추는 플랫폼에 섰다. 하늘을 보았다. 까만 도화지를 뚫고 나온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옆에 묵념하듯 떠있는 동전 같은 달이 은은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옆 라인으로 승객을 실은 밤 열차가 괴물 같은 속력으로 휙 스치고 지나갔다. 속도가 몰고 오는 공포감을 느끼며 어둔 시간 속에서 홀로 열차를 기다렸다.

밤을 싣고 달리는 열차 안에 올랐다. 시간이 늦은 탓인지 사람들은 고요의 이불을 덮고 눈을 감고 있었다. 좌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유리창 속에 반사된 또 다른 내가 나를 보고 있다. 그녀의 까만 눈을 보며 눈으로 물었다. 뒤뚱거리는 시간 속에서 잘 살고 있는 것 맞냐고.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것이 내 생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 맞냐고. 그녀는 눈만 깜박일 뿐 말이 없다.

한 시간 이십 분 만에 신경주에 도착했다. 12시가 다 되어 도착한 나를 A4가 밤 마중 나와 있었다. 4명 모두 혈액형이 A형이라 우리 모임 이름은 A4다. 청주에서 함께 자가용으로 출발하기로 했었으나, 저녁 일정이 있던 나는 A4에게 먼저 출발하라 했다. A4중 3명은 오전에 출발을 했고 나는 밤 열차를 타게 된 것이다. 저만치 앞에 나를 향해 손짓하는 A4가 보였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A4에게, 나는 토끼처럼 팔딱팔딱 뛰며 팔을 뻗어 머리 위에서 하트를 그려 주었다.

차에 타고 숙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와 땅콩 오징어 등 오랜만에 여행길에서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매개물도 잊지 않고 샀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정신 줄을 이완시키기 위해 맥주를 한상 풀었다. 그동안 너무 나사를 바짝 조이며 살았으니 잠시라도 정신의 나사를 풀어보자며 상 둘레로 모여 들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넷이 맥주 두 캔을 채 못 비웠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술도 못 배우고 뭐했는지 모른다며 웃었다. 맥주는 접고 자리를 깔고 누워 수다를 풀기로 했다.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목까지 꾹꾹 누르고 있던 말들, 몸 안에서만 간지럽게 찰랑이던 말들을 쏟아냈다. 바람에 풀린 터번처럼 우리의 수다는 술술 풀렸다. 밤의 고요한 몸통 속으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스며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까무룩 잠이 들었다.

햇빛이 창으로 긴 팔을 뻗어 눈을 흔들었다. 빈 내장에 불을 밝힌 것처럼 눈꺼풀이 환해졌다. 바람은 창문을 건너지 못하고 서슬 퍼런 소리만 웅웅거리며 창문을 타 넘어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나 씻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국립경주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을 거의 돌았을 무렵 나는 문득 뒷면이 궁금했다. 학창시절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즐거움에 들떠 수학여행을 따라 왔었다. 그 때는 멋진 앞면과 그 속에 간직된 빼곡한 유물만을 보았었다.

이젠 뒤도 살피며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어딜 가든 뒷면을 살피곤 한다. 뒷면을 보고 싶지 않냐고 일행을 꼬드겼다. 뒤에 뭐가 있겠냐며 시큰둥해 하는 A4에게 말했다. 쇼윈도에 마네킹이 멋져 보이는 건 뒷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무수히 많은 시침들이 꼽혀 있는 뒷면이 없다면 앞면도 존재할 수 없는 거라고. 뜨거운 조명을 받으며 아픔을 숨기고 있는 뒷면이 있기에 앞면이 빛나는 거라고.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을 가르며 박물관 뒤로 갔다. 건물을 돌자 부처가 즐비하게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부처들은 하나같이 목이 잘려져 있었다. 줄지어 서 있는 목 잘린 부처들을 보며 생각에 젖었다. 그동안 내게서 잘린 것들이 우수수 머릿속으로 떨어졌다.

수도 없이 잘려져 나간 것들이 떠올랐다. 살면서 참 많이도 잘리면서 살아왔다. 가만히 잘려 나간 것들을 되뇌어 본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보다 어린 상사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수많은 자존심들이 잘려나갔다. 나만 생각하던 까칠함도 여러 사람들과 부딪히며 도마뱀 꼬리처럼 잘렸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던 신념도 싹뚝 잘렸다.

그러나 문득 드는 맘. 잘리는 것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스스로 잘라 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두드린다. 모났던 성격도 잘라내고 콧대 높이던 자존심도 잘라 땅에 내려놓고, 나만 맞다고 우기던 고집도 잘라내서 너도 맞을 거라는 유연함으로 대치해야 하리라. 그러면서 점점 둥글어지는 것이리라. 점점 더 부처가 되어가는 것이리라.

잘린 부처의 목에 머리를 올리고 사진을 찍었다. 나도 살아서 단 한 번이라도 부처가 되어 보자고. 아니 부처의 마음이 되어보자고. 나만 생각하며 달려온 인생 이제 부처처럼 남도 생각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의 꼬리가 스쳐갔다.

잘린 목이 있어야 온전한 목도 가치 있고, 뒷면이 있어야 앞면이 빛나는 평범한 이치를 이 겨울 경주에 멈추어 생각해 본다. 날선 겨울바람이 박물관 뒤뜰 가득 펄럭이며 찬 계절을 잘라내고 있다. 봄이 저만치서 걸어오고 있다.

김 희 숙 / 수필가, 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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