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樂聖)이란 성인(聖人)이라고 이를 정도로 뛰어난 음악가를 가리키는 말로 대표적인 악성은 고전 음악의 최고 작곡가로 불리는 ‘베토벤’이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알려진 모짜르트와 달리 베토벤은 지독한 노력으로 성공한 음악가의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음악가에게 청력은 생명과도 같은 것, 26살에 시작된 증상으로 30살이 되기도 전에 완전히 청력을 상실하는 불운을 겪으며 생을 스스로 마감할 생각까지 했던 베토벤이었지만 결국 음악에 대한 열정을 통해 장애를 통해 극복한다. 그리하여 <합창>, <운명>, <영웅> 등 위대한 음악을 후대에 남긴다.

서양에 악성 베토벤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 난계 박연 선생을 3대 악성이라 한다. 그 중에서도 난계 박연 선생은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출생으로 조선 전기의 국악의 기반을 닦은 음악이론가다. 흥미롭게도 박연은 베토벤과는 다른 운명을 가졌던 인물이다.

우선 집안이 좋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고려시대 중앙의 주요 관직을 역임하는 등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고향인 영동의 향교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고 어린 나이에 모친의 산소를 3년 동안 지켰다고 전해지는 등 음악 분야의 전문성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까지 지닌 인물이다. 3대 악성답게 어려서부터 음악에 심취했고, 비파, 거문고 등을 수준급으로 연주하며 특히 피리를 잘 불었다고 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음악의 성취를 위해서는 당시 비천한 신분이라고 여겼던 광대에게도 스스럼없이 배움을 청했다고 한다.

박연은 조선시대의 관료였는데 특이하게도 음악적 재능으로 관료에 오른 것이 아니라 학문을 통해 과거에 급제하며 관료생활을 시작한다. 그의 나이 28살 때 일이다. 천재였지만 한 가지 분야만 잘하는 것이 아닌 다방면의 천재인 셈이다. 관료로서 승승장구하며 요직을 두루 섭렵하던 박연은 세자였던 ‘세종’을 만나게 된다.

이후 세종이 즉위한 후 악학별좌라는 보직에 임명되어 당시 불완전한 악기 조율의 정리와 악보편찬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12율관에 의거한 정확한 음률체계를 정비한다. 또한 조정의 조회 때 사용하던 기존의 향악 대신 아악으로 대체하게 하여 궁중음악 분야를 개혁하는데 앞장선다.

승승장구 했던 그였지만 말년은 비참했다. 세종이 죽고 난 뒤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난에 막내 아들 박계우가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기 때문이다. 연좌제가 적용되지만 다행스럽게도 3대에 걸친 원로라는 점을 인정받아 파직으로 그치게 된다. 관직을 박탈당한 박연은 고향인 영동으로 낙향하였고 낙향한지 4년 만에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박연은 조선시대 내내 대표적인 음악가였으며 국악 분야의 업적을 남긴 인물이기에 지금도 영동에서는 그의 호를 딴 음악제를 열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영동군 난계국악단 상설공연’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18년도 상설문화관광프로그램에 5년 연속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박연은 세상에 없지만 그의 음악과 국악에 대한 열정과 유산은 여전히 충북에 남아있다. 영동군은 국악체험촌, 국악박물관, 국악기제작촌, 난계사 등과 연계한 관광코스로 영동군은 국악의 본향이라는 이미지를 알리고 있다.

이 기 수 / 충청북도SNS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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