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저를 두 번 죽이는 거예요”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한 연예인이 다소 어눌한 복장과 말투로 바보 연기를 하던 것인데 자신의 추억을 얘기할 때 이 유행어를 붙였던 기억이 난다.

대체로 단어 중에 ‘보’가 붙는 말들에는 부정적인 말들이 많다. 걸핏하면 우는 아이를 ‘울보’, 얼굴이 얽은 사람을 ‘곰보’, 정식 단어는 아니지만 일을 편하게 하는 사람, 보직이 편한 사람을 군대에서 ‘땡보’라고 부르는 식이다. 바보도 이와 닮은 단어다. ‘바보’의 사전적 의미는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로 어원으로는 ‘밥보’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한 마디로 ‘밥만 축내는 사람’인 것이다.

사실 이전부터 내려오는 한국의 대표적인 ‘바보 이미지’, ‘바보 이야기’의 원조는 ‘온달’이 있다. 실존하는 역사적인 인물이자 문학적인 인물로 전해지는 온달은 바보로 시작해서 한 나라의 공주와 혼인하고 장군까지 올라가는 등 극적인 생애를 살았던 인물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는 온달의 외모는 험악하고 우스꽝스러웠지만 매사에 밝았고, 가난하지만 극진하게 어머니를 봉양했던 인물로 전해진다. 그렇게 낡은 차림새로 돌아다니며 밥을 구걸하던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사람들은 불렀다.

한 편 고구려의 25대 평강왕에게는 딸이 하나있었는데 그 유명한 ‘평강공주’다. 어린 딸이 걸핏하면 울기에 왕은 어렸을 때부터 농담 삼아 “자꾸 울면 커서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버리겠다”며 놀렸다. 울보였던 공주가 어느새 아리따운 16세가 됐다. 왕이 명문귀족과 혼인을 시키려하자 전에 아버지가 전에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말한 예를 든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함부로 말을 바꿔서는 안 된다”며 공주는 궁을 떠나 온달을 찾아간다. 당연히 온달과 온달의 어머니는 자신들의 가난함을 이유로 반대하지만 끝내 평강공주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고 둘은 결국 혼인을 한다. 바보로 태어나 가진 것 하나없는 그였지만 이제 한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는 변화를 겪는다. 가장 극적인 사랑이라는 서양의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극적인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떳떳하게 드러내고 또한 평범한 온달을 건장한 장수로 성장하게 하는 평강공주도 비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공주는 혼인을 하고 온달에게 학문과 무예를 가르쳐 건장한 장수로 성장하게 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 이후 온달은 우연하게 사냥대회에 나갔다가 왕에게 발탁된다.

역사적인 기록을 살펴보면 온달은 요동과의 전투에서 선봉장으로 나서 맹활약을 한다고 전해진다. 수십 명의 목을 베며 공적을 세우게 되니 왕은 공식적으로 온달을 사위로 여기며 벼슬을 내린다. 공식적인 바보에서 한 나라의 지극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 부마(공주의 사위)로 인정 받은 것이다. 이후 평강왕이 죽고 영양왕이 즉위하는데 이때 신라가 한강 북쪽을 차지하며 삼국의 정세는 불안정해진다. 온달은 스스로 왕에게 청하여 지금의 충북 충주시 상모면 석문리와 경북 문경시 관음리를 잇는 해발 500m의 고갯길인 계립현과 죽령 서쪽을 귀속시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며 전쟁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운명은 달콤함보다는 가혹함이 어울리는 단어인지 모른다. 전쟁에 나간 온달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의 극적인 부분은 죽음 이후일지 모른다. 온달의 시신을 넣은 관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공주가 달려와 관을 어루 만지며 “삶과 죽음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 가소서”라고 말하니 그 때서야 관이 움직였다고 한다.

충청북도 단양에는 이처럼 애틋한 사랑, 시대를 뛰어넘는 로맨스의 상징인 온달과 관련된 유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온달테마공원, 온달동굴, 온달산성, 온달 드라마세트장이 3만여 평의 부지에 모인 ‘온달 관광지’다. 최근 이 곳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2018 전통문화체험 관광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고구려 온달과 평강이야기’가 차별성 있는 관광 상품으로 주목 받는 것이다.

옛 고구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 ‘바보 온달’과 ‘울보 평강공주’의 애틋한 전설이 전해지는 온달관광지에서 순수함과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이 기 수 / 충청북도SNS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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