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미천 냇가에 노을이 진다. 며칠 전, 꼭두서니 빛으로 번지던 것과는 달리 산자락 끝만 물드는 게 약간 미미했다. 그나마도 한겨울 저녁노을은 드문 일이되 저만치 조각달과 견주기나 하듯 뽀얗게 반짝이는 개밥바라기별. 노을 지는 하루가 붉은 섬처럼 가라앉을 때는 개구쟁이처럼 숨곤 하더니, 해가 산 속으로 잦아들 동안이면 눈동자처럼 빛나던 참으로 예쁜 별 하나. 손이 곱아들 만치 차가운 날씨는 해가 지고도 여전한데 초롱초롱 눈매까지 고운 별빛에 약간은 누그러졌거늘. 올해는 또 무술(戊戌)년 황금개띠 해였다. 더더구나 따습던 개밥바라기별에 대한 기억들.

금성을 또 다르게 불러 왔던 개밥바라기별. 그렇더라도 왜 하필 그런 이름이었는지. 바라기가 그릇의 옛말이라면 개밥바라기는 개밥을 담은 그릇이다. 지금 같은 초저녁이면 시골에서는 벌써 저녁상을 물리는 시간이었지. 식사가 끝나면 어머니는 먹다 남은 찌꺼기를 담은 뒤 개밥그릇에 쏟아주라고 하셨다.

개를 싫어하는 내게는 참으로 고역이었다. 가까이 가면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막 덤벼든다. 밥을 보고 좋아서 그러는 것인데 성격이 까칠했던 나는 아주 질색이었다. 그냥 갈 수도 없고 단숨에 쏟아주고는 급히 돌아서곤 했건만 그럴 때 반짝 스치던 별빛 한 가닥.

싫어하는 줄 알았으면 어머니도 시키지는 않으셨을 텐데 불평하지 않은 것 또한 가까스로 주고 난 뒤 바라보던 그 별 때문이었다. 그 때는 개밥바라기별인 줄도 몰랐으나 단지 개밥을 주고 난 뒤의 꿉꿉한 마음으로 보면서 더욱 뚜렷하게 비치는 느낌이었다. 어쩌다 보는 이름도 예쁜 별에의 향수 때문에 아로새기고 싶을 정도로 소중했던 것처럼.

얼마 후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특기할만한 일이었다. 개밥을 주러 갈 때마다 눈동자처럼 혹은 팝콘이 터지듯 빛나던 그 별은 어쩌다 새벽에도 떠올랐다. 지금처럼 겨울이 아니고 3월 혹은 4월이기는 했어도 초저녁별이 그 때는 새벽에 떠오르다니 예삿일이었을까. 같은 별인데 개밥을 주러 갈 즈음 떠오른다고 개밥바라기, 다음은 또 첫새벽 뜬다고 해서 샛별이라는 것 역시 남다른 기억이었거늘.

별들도 생김을 따진다면 참으로 앙증맞게 예쁜 별이었다는 생각. 그나마 첫 새벽 뜨는 별을 어린 내가 본 것은 배앓이로 새벽에 자주 일어나는 까닭이었다. 부움해질 즈음 배가 싸르르 아파오면 신문지 한 장 뜯어 화장실로 달렸다. 말이 화장실이지 바깥 변소에 닿기도 전에 설사를 했고, 그 때 얼핏 바라본 하늘에서 반짝이던 별이 곧 샛별이었다. 허둥지둥 방에 돌아오고 나면 잠시 뒤에는 어렴풋 동살이 비치기 시작했고 나는 또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잠도 없거니와 배앓이가 잦지 않았으면 보기 힘들었던 그 이미지. 이름만 예쁜 줄 알았더니 별명과 예명까지 고루 갖추었다. 잠깐 잠깐 뜨다 보니 아쉬운 마음에 숱한 이름을 붙인 것일까. 개밥바라기별은 해거름 어쩌다 개밥을 줄 때 보기도 하지만 샛별을 보는 건 희귀한 케이스다.

개를 싫어하면서도 밥을 주고 배앓이로 첫 새벽 일어날 때는 고역이었으나 별을 무척 좋아하게 된 배경이기도 했다. 지구 바로 앞에서 뜨는 별이라 초저녁 또는 새벽에만 보이는 것도 신비스럽고, 금성이니 샛별 등 이름은 많아도 한 개의 별이라는 게 더더욱 특이했다. 어쩌면 더 많이 짓고 싶어도 워낙 예쁜 별이라 더 이상은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을 것 같지만.

개밥바라기가 하필 개 밥 그릇을 뜻한다면 개도 목마르게 기다렸을 테지. 바라기는 그릇을 나타내되 2차적으로는 또 간절히 바라는 모양새다. 농사짓기가 만만치 않은 천수답 하늘바라기 논이 그 좋은 예다. 비가 알맞추 내리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가물 때는 하늘이 내려줄 비 한 방울 바라며 목이 타들어가는 논. 아무리 기다려도 내리지는 않고 끝내는 한 바라기의 비를 갈망해 오면서 이름까지 야속한 하늘바라기가 되었을 듯싶은데.

어려웠던 시절이라 누구든 개는 고사하고 자기 식솔 챙기기도 벅찼을 것이다. 개는 그래서 더더욱 제 밥바라기를 바라기하지 않았을까. 간절히 하늘만 보고 있던 중 나처럼 이제 막 떠오른 별과 마주쳤겠지. 습관적으로 짖어대던 여느 때와는 달리 잠깐 잊은 채 멍하니 바라보던 눈동자 그리고 하늘의 별을, 개밥을 주러 오던 누군가가 때맞춰 본 것은 아닌지. 손에는 또 밥을 담은 개밥바라기가 있었을 테니 그래 순간적으로 그리 예쁜 이름을 생각했을 것도 같고.

특이한 배경으로 태어난 개밥바라기별의 추억은 그렇게 아름다웠다. 이름은 제각각이되 하나를 뜻하는 별과, 이름은 같아도 뜻이 다른 바라기의 함수! 한편에서는 그릇을, 또 다르게는 간절한 소망을 드러냈던 걸 보면 개밥을 줄 동안 떠올랐다가 금방 사라지는 이미지가 그럴싸하다. 2 시간 남짓 머무를 때도 있지만 대부분 부랴부랴 돌아가곤 했던 별이 까닭 모르게 짠해 온다. 인연이 많다. 개밥바라기가 아니면 밤하늘의 별을 보고, 특별히 노을 지는 해거름 얼핏 사라지는 별에 대한 추억도 없을 테니까.

둘 중 어떤 이름이 먼저 생겼을지 궁금해지는 연유다. 혹 개밥바라기가 먼저라면, 개도 초저녁 빛나는 별을 보며 제 밥그릇 개밥바라기를 기다렸을 거라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였는지. 혹은 밥을 가져오는 그 시간 유달리 밝은 별을 보고 뜨악하게 짖기라도 했다면 나중 생기지 않았을까. 복잡할 것도 없는 게, 단지 별이 들어가는 그 차이였을 뿐 비슷한 말이지만 어떤 경우든 상상에 빠져들 때는 설레곤 했다. 가끔은 배앓이로 첫새벽 일어나도 밖에 나갈 이유는 없는 만큼 오늘 저녁의 그 별은 뜻밖이었기에.

남들은 쿨쿨 자는데 혼자 빛나는 샛별도 귀엽고 서둘러 나왔다가 살짝 가버리는 성미 급한 초저녁별 이야기가 오늘따라 왜 그렇게 향수적인지. 우리 삶 모퉁이에도 잠깐 잠깐 빛나는 별처럼 저마다 이루지 못한 꿈과 소망이 반짝였을 법하련만. 개밥바라기별 역시 샛별이니 금성 등의 다양하고 귀여운 이름과는 달리 자주 볼 수는 없었던 것처럼. 그런 터에 어쩌다, 그것도 한겨울 아주 잠깐 본 별이 새해를 맞아 더욱 설렌다. 겨울이 가고 봄이 되면 또 첫 새벽 먼동과 함께 샛별로 떠오를 테니 덩달아 행복해질 것 같다. 이름도 가지가지 예쁜 별이 초저녁 첫새벽으로 번차례 반짝이는 한……

이 정 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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