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윤기중입니다. 저 기억나시는지요?”
키도 크고 입은 무겁고 공부도 잘 하여 전교어린이 회장이었던 소년.. 그의 목소리는 그 옛날처럼 아련히 그러나 아주 정겹게 들려왔다. 소년의 동기 그러니까 제천 동명초 71회 졸업생들이 2013부터 동기생 모임을 해 왔는데 올해는 스승들을 모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2017.12.2.(토)제천 의림지 주변 ‘산에 들에’서 모인다는 35년만의 꿈같은 전화였다.

설렘을 안고 그립던 의림지를 지나 조금 깊은 산속에 위치한 그곳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려 조그만 다리 건너 밝은 불이 보이며, 제자들이 여럿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이 바로 기억나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 등 그 옛날 어린이였던 그들이 이제 사람이 되어 소나무처럼 서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사람마다 와락 끌어안았다. 그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35년이 지났으니 강산도 세 번이나 변한 시간이었다. 나도 27세 미혼시절 그들을 가르쳤고 이제 회갑을 넘겼으니 스쳐간 시간의 바람사이로 아이들 그림자가 따듯이 다시 다가왔다.

내일이면 50이 되는 제자들이 50여명 줄지어 앉아있고 그 시절 함께 6학년을 담임했던 두 분 선생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과연 오셨는지 고개를 빼어 제일 먼저 찾아보았다. 당시 6학년은 특수반까지 모두 6학급인데 세 분이 벌써 돌아가시어 남은 세 사람만 오늘 만나게 되니 격세지감과 아쉬움이 깊었다.

두 선배 선생님과 먼저 반가운 만남을 하고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동기회장 인사에 이어 가슴에 꽃을 달아주고 세 담임에게 인사할 기회를 주었다. 1,3반 담임이 돌아가셨으니 2반을 담임한 나를 제일 먼저 호명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려 머리를 곱게 단장하고 하얀 진주알 두 개를 왼쪽 머리결에 꽂고 갔다. 나의 첫마디는 이상하게도 담임이 안 계신 3반 친구들에게 ‘새 담임을 해 주겠노라 슬퍼마라’는 것이었다. 제자들이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내왔다.

이렇게 살아 있으니 다시 만났다. 하늘로 가신 세 분의 명복을 빌며 아직 이 땅에 남아 삶을 사는 제자들을 위해서 축복주시라는 짧은 기도를 잊지 않았다. 청주에서 준비해간 축하 케잌을 세 담임과 당시 어린이회장, 현 동기회장과 손을 잡고 힘껏 길을 내었다. 밤이 깃든 의림지 물결이 곱게 출렁거렸고 ‘동명초 71회 졸업생 영원하라’는 제자들의 함성이 멀리서 지켜보는 소나무 잎마저 흔들었는지 싸한 바람이 창밖을 기웃거렸다.

27세 젊은 나이의 초년 교사인 나는 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했는가?
숙제 안 해와서 주먹을 쥐고 두 시간이나 엎드려 벌을 세우고 거짓말을 했다하여 교실 구석에 놓인 빗자루가 부러질 때까지 매를 놓지 않았다고, 친구들은 혼나고 나서 끼리끼리 모여서 우리 선생님은 여군을 갔어야 했는데...내겐 아련한 기억이지만 그들에겐 잊혀지지 않는 그림 같은 것, 옆 반 제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내가 까칠한 분이었다고 말하니 나의 철없는 젊음으로 그렇게 그들과 함께 한 것이 이제부터 영원히 소중할 뿐.

그래도 스승을 모시자는 의견은 우리 반 제자들이 먼저 제안했다하니 내 사랑이 깊은 건지, 호랑이 선생님이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한 건지 감사할 뿐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어린이 회장을 지낸 기중이가 결혼 초에 이혼하여 지금껏 홀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동석한 제자에게서 듣고 놀랍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조용히 불러 ‘빨리 짝을 구하여 사랑을 베풀면서 남은 인생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고 일러주었다.

“한 번 뿐인 인생 사랑을 받기보다 많이 주면서 살면 원만한 가정을 이룰 수 있고 베푸는 게 인생이고 그것만이 남는 것이다.” 내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었는지 짝찾는 노력을 하겠다고 따듯한 다짐을 보여주어 마음이 놓이면서도 여자 제자 중에도 혼자인 경우가 있다하니 가슴이 자꾸 쓸쓸하였다.

반별로 기념사진도 찍고 긴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 가던 날을 떠올리며 만남의 밤이 깊어갔다. 어느 덧 열시가 다 되어 나오려하니 제자들이 서둘러 일어서 ‘스승의 은혜’를 합창하였다. 그간 교단에서 들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48세 어른들이 입을 모아 부르니 우렁차고 가슴 속까지 울려왔다. 35년 만에 그들이 불러준 스승의 은혜는 우리 세 담임의 뇌리속에 영원하였다.

다음날 부산으로 내려간 제자 ‘주원’에게서 손 편지가 왔다.
선생님, 너무 고맙습니다
건강하셔서 고맙고
변함 없으셔서 고맙고
저희들 잊지 않으셔서 고맙습니다
다시 만나뵐 땐
더 멋져져서 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제자들이여 사랑한다. 너희는 이 세상 모든 것이다. 산바람, 눈보라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늘 푸른 소나무가 되기를......늘 지지않는 별이 되기를
우리 각자 인생의 스승은 누구인가? 그대는 늘 보고 싶은 한 사람을 가졌는가?

박 종 순 / 복대초 교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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