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rk Rothko 4

“화가 고유의 너무나 충격적이고 놀라운 창의적 발상의 전개가 그저 보통의 일상의 관념과 상식에 고착되어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고개를 젓고 아리송해 하며 미술에는 등을 돌리기도 한다.”

고전 미술을 늘 익숙하게 보아 오던 19세기 사람들에게 인상파가 그러했고 인상파에 박수를 보내고 있던 이들에게 세잔느와 고흐, 고갱이 그러했다.

오늘 소개할 마크 로스코가 그렇다.
물론 현대미술의 변화는 피카소, 마티스, 클레, 몬드리안 등이 무수히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는 할 말을 잊는다.

“뭐야 이게 ?”
“난 발로 그려도 저만큼은 그리겠다”
그림이란 원래 뭔가 형과 색이 있고 구체적 내용이 아름답게 존재할 것이라는 관념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시각 경험이다.

마크 로스코는 1903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태인 출신으로, 10살 때 미국으로 이주하여 가난한 이민자 생활을 보냈고, 자존심 강하고 반항적이며 호전적인 인물이었다. 물론 장사속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극히 경멸하고 예술에 순수한 가치에 초지일관했다.

1950년 전후 사람들은 정서적 불감증이라고 해도 될 만큼 잔잔한 자연에서 감동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 때 로스코는 뭔가 강한 새로운 시각 언어의 필요성을 간파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해오던 상투적인 구상회화인 자연의 표현은 단호히 거부하고 극히 단순한 자극적인 색채의 면만으로 배열하여 감상자들 앞에 제시한다.

놀라움도 잠시 그의 작품은 뉴욕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환상적인 미적 쾌감과 종교적인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는 평을 받았다. 그의 영향으로 장식적인 기교를 최소화하고 최소한의 단순화된 면으로 이루어지는 미니멀 아트(minimal art)가 유행하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사조란 늘 또 다른 새로운 사조의 도전을 받게 되는 법. 새로운 미술운동인 앤디 워홀 등의 팝아트에 도전을 받게 되었고 그도 역사에서 뒤안길로 점점 사라졌다. 그의 분노와 화병도, 56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도 그와 무관치 않으리라.

이 세 훈 / 전 한국미술협회 충청북도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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