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동무가 찾아오던 날은 올 들어 가장 추웠습니다. 해거름이면 땅거미가 야금야금 기어 나오는 하늘색 나무대문 집에서, 얼굴만 마주쳐도 깻송이처럼 다정한 동무. 타닥 타다닥 난롯불 튀는 소리까지 회포를 부추기듯 속삭이는데 지게문을 열어 보니 한겨울 때고도 남을 장작이 쌓였습니다. 장작 중에도 통나무 장작이라는 게 더 따스한 느낌이었고 문득 저만치서 몰려드는 잿빛 어둠 한 자락.

낮도 밤도 아닌 시간이라 어스름인지, 건너편 호숫가 비껴가는 해거름 침묵이 사뭇 고즈넉한데 그 순간 언덕의 가로등이 반짝 켜지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 웃었습니다. 잠시 전 동무가 산 그림자 드리워진 밖을 내다보면서 이맘때가 되면 별나게 쓸쓸해진다고 혼잣말처럼 뇌었거든요. 말을 받아서 나는 또 해가 저기 서산에 걸려 있는 지금은 곧 지구가 어둠 속으로 끌려가는 때라서 더 그런 거라고 해 줬습니다. 아울러 그 순간 다가 온 일몰의 풍경이 더욱 인상적인 것도 밝음을 살라먹는 해거름의 이미지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

잠결에 눈을 뜰 때마다 어렴풋한 기억이 그랬거든요. 오늘도 첫 새벽 넘겨도 넘겨도 끝이 없던 암흑의 먹지가 얼마나 두터운지 그때껏 칠흑 같은 어둠 속. 갑자기 내가 깜깜한 어디쯤에서 막 끌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두레박에 담겨 있다가 ‘쿵’하고 떨어지는 듯도 했습니다. 아득히 허공에서 누군가 줄을 내려 새벽을 끌어올리는 것 같은 느낌. 창문이 부움해지고 어스레 동이 튼 뒤에도 한참을 멀뚱하니 누워 있었지요. 밝음과 어둠의 끝자락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이 해거름 지금 기분과 흡사하다고 말하는 찰나 가로등이 켜지면서 실소했던 거지요.

썰렁한 겨울 밤 외롭게 뜬 가로등을 보니 불현듯 ‘쌩. 떽쥐베리’ 동화에서 본 ‘어린 왕자’의 가로등 지기가 생각납니다. 그 여행담을 보면, 첫 번째 별에는 누구든 마주치기만 하면 부하로 삼으려는 왕이 살았고 두 번째 별에는 허영으로 가득찬 독선자, 다음에는 부끄러운 것을 잊으려 술을 마시고 그게 부끄러워 또 마신다는 술꾼이 살았습니다, 네 번째 별에서는 하늘의 별까지 등기를 내서 서랍에 넣으려는 욕심꾸러기, 여섯 번째 별의 주인은 지식만 추구하는 학자였고 다섯 번째 별 지구에서 가로등 지기를 만났다는데……

간단없이 돌아가는 지구 꼭대기에서 연방 끄고 켜느라 별나게 긴장된 모습과 무표정해 보이던 얼굴이 스쳐갑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당연히 켜야 되겠지만 지금 우리가 본 것처럼 땅거미가 내리는 풍경을 완상해도 괜찮을 텐데요. 약간은 쓸쓸해도 어스름을 즐길 동안 소란했던 마음이 차분해지련만 어둡다고 금방 켜는 건 부질없는 일이죠. 게다가 반대쪽에서는 이제 막 해가 뜨고 맞춰서 다시 꺼야 한다면 1분에 한 번씩 하루 1440번을 반복하게 됩니다. 제풀에 돌아가는 자전 운동으로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가 연신 해거름이 되고 새벽이 되는 것인데 그럴 때마다 계속 끄고 켠다면 무모한 일이었지요.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그러다 보면 순수한 감동이나 뭉클한 느낌도 없이 따분해질 거라는 게 어린 왕자의 탄식이었습니다. 가로등지기뿐 아니라 우리 모두 그렇게 살 것을 염려했을 거예요. 눈앞의 어둠을 밝히는 동안 멀리 빛나는 별을 잊곤 했으니 아름답고 찬란한 빛을 외면하고 희끄무레한 불빛에 의지하는 정서가 유감입니다. 비가 오거나 흐리지만 않으면 밤마다 뜨고 새벽으로 사라지기 때문에 일부러 끄거나 할 필요 없는 전천후인데 가로등에만 의지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요.

가로등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그로 인해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의 얘기가 흩어질까 봐 걱정스럽다는 뜻이지요. 어떤 별들은 초저녁에, 더러는 또 깊은 밤 홀로 반짝이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파트 별로 빛나는 습관이었습니다. 밤 깊어 자야 될 시간에도 초저녁 별이 계속 반짝일 경우 잠을 설칠 테니 웬만한 별은 절로 꺼지게 되고 우리 잠들기 좋은 분위기로 바뀝니다. 어쩌다 늦은 밤까지 남아 있는 별은, 잠들기 전에 살짝 켜 놓는 5촉짜리 꼬마전구처럼 은은하게 빛나곤 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일지 상상이 된다고나 할까요.

눈을 드니 어렴풋 다가오는 미지의 적막감. 자연은 곧 우리를 위해 수많은 별을 새겨 어둠을 비추도록 한 걸까요. 밖에는 삭풍이 몰아치는데 불붙는 난롯가는 무척이나 따스했던, 그 때 우리는 시간 시간 가로등을 끄고 켜는 식의 삶은 안 될 거라고 꽤나 진지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바쁜 중에도 훨씬 무료하게 사는 가로등지기의 비극은“나는 여기서 아주 끔찍한 일을 하고 있단다‘라고 하는 우리 모두의 푸념이었던 것처럼. 나름대로 보람은 있을지언정 열심히 산다는 구실로 시계바늘처럼 돌아가는 습관적 삶이어서는 무의미해지고 말 테니까요.

가끔은 하늘도 보고 뽀얗게 흐르는 미리내도 감상하고 잠 못 드는 누군가를 위해 늦게까지 빛나는 별들의 얘기 듣는다면 충분히 아름다운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저기 하늘 또 어딘가에는 어린왕자가 다녀 간 별도 있을 거라는 한밤의 서정. 동무와 함께 난롯가에서 때 아닌 어스름을 볼 동안도 무척이나 오롯한 기분이었죠. 모처럼 만났다 해야 비싼 저녁을 먹는 것도 아니고 흔한 오징어 덮밥이었지만 천금보다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땅거미 내려앉는 산 속 레스토랑이었으니 고즈넉한 추억은 강물을 끓이며 넘어가는 낙조처럼 내 삶의 여울을 찬란히 비춰줄 것입니다.

집에 와 보니 어스름은 간 데 없이 한밤중이군요. 저녁을 먹으면서 바라 본 호숫가의 정경과 가로등의 의미가 잡힐 듯 선합니다. 나 역시 해거름이면 늘 착잡했으나 암흑으로 치달을 동안 별이 뜨고 얼마 후에는 먼 동이 트면서 하루가 시작됩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는 낭떠러지 끝에 있는 듯 아뜩한 기분이었어도 해거름 후에 돋아날 별을 생각하면 소망이 보이곤 했지요. 오늘과 내일 양쪽 모서리에 거꾸로 치받치듯 매달려 있어 아름다웠던 해거름 연서. 힘들어도 그게 곧 행복의 날실이 되고 씨줄로 엮어집니다. 오늘은 또 초겨울 접어드는 십일월의 마지막 날이었지요. 밝음과 어둠의 끄트머리에 잔뜩 매달려 있던, 바야흐로 첫 새벽 이미지처럼.

이 정 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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