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 맞은 나무와 석상오동, 쌍골죽

벼락을 맞았나 보다. 선 채로 까맣게 타버렸다. 가뜩이나 썰렁한 초겨울에 보니 무척이나 살풍경한데 만약에 오동나무였다면 장인들이 환상으로 친다는 가야금의 소재가 되겠지 싶어 일견 아쉽다. 하지만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라, 장인들은 돌 틈에서 말라 죽은 석상오동(石上梧桐)을 으뜸으로 친다고 했다.

돌막에 뿌리박은 것도 모자라 뒤틀린 채 자랐을 오동나무 한그루. 본 적도 없지만 좋은 소리는 모름지기 그렇게 나오는 걸까. 돌 틈에 얽혀 자랐으니 하룬들 편했을까마는 그 때문에 자기만의 음정을 창출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명품 악기의 소재가 되는 나무일수록 별나게 춥고 건조한 지역에서 비바람을 견디며 자란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볼 때 돌 틈에서도 능히 자라는 석상오동 또한 신비적 존재다. 게다가 벼락까지 맞은 나무라면 더더욱 금상첨화라고 한다니,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타 죽은 나무를 생각하면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벼락 맞은 나무로 최고 좋은 가야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들을수록 신선한 충격이다. 가야금 산조를 들을 때의 그, 줄이라도 끊어질 듯 격한 휘몰이와 자진모리가 춤추듯 고빗사위를 넘기는 것 또한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는 장마철 이미지를 닮았다. 줄과 줄 사이를 넘나드는 빠른 가락이야말로 엄청난 힘으로 내리치는 벼락의 서슬 그대로였다.

벼락은 구설수가 많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하는 말도 있다. 또는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등 갑작스러운 재앙을 뜻하지만 벼락을 맞고도 살아나면 몸속의 병이 사라진다는 구사일생의 묘리도 거기서 나왔다. 돌 위에서 얽혀 자란 뒤 희대의 가야금으로 태어나는 석상오동과 어지간한 맥락이다. 당장은 버거웠던 어려움이 훗날 윤택한 삶의 바탕이 되는 것은 삶에도 적용된다. 나를 쓰러뜨리지 못한 운명이야말로 아무 때고 딛고 올라갈 디딤돌로 바뀔 테니까.

대금의 최고 소재로 알려진 쌍골죽도 비슷한 이미지였다. 대나무는 보통 속이 하나로 뚫려 있지만 쌍골죽은 나무가 병이 들면서 양쪽으로 패이고 속만 차게 되는 희귀한 경우다. 대금을 만들 때는 필요한 만큼만 파내고 불 속에서 달군 뒤 똑바로 펴는 작업에 들어간다.

결국 남다른 과정을 통해서 그처럼 좋은 소리가 난다는 뜻이었거늘 하지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어쩌다 대금 소리를 들을 때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 같은 절묘한 선율도 그렇게 나오는가 싶어 짠하다. 양쪽으로 패여서 자란 것도 여간 힘들지 않았을 텐데 다시 또 펴서 명품 악기를 만드는 것이었으니 이중 삼중 겹친 불행 또한 우리 삶의 돌파구가 된다.

‘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고 했다. 조셉 마샬이 지은 책 제목이다. 활을 만들 때 벼락 맞은 양물푸레나무를 찾는다는 라코타 전사들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벼락을 맞은 채 그대로 죽어버렸다가 라코타 부족의 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나무로 만든 활이 유독 강하고 튼튼한 것을 라코타인은 어찌 알았을까. 활을 당길 때마다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의 팽팽한 힘이 남다른 탄력성으로 작용했을 테니, 번개가 치면서 순간적으로 건조된 나무야말로 최고 좋은 활의 재료다.

바람을 지나가게 하는 라코타 부족의 일면 그대로다. 대 평원에 사는 인디언에게 활은 필수품이었지만 왜 하필 벼락을 맞은 거라야 되는 것인지. 이를테면 그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온 인디언의의 생활 지침 아니었을까. 라코타인에게도 폭풍의 역사가 있었고 그래서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유럽에서 건너 온 백인은‘인디언 보호구역’을 만들어서 원주민을 길들이려 했으나 그들은 굽히지 않았다. 활을 만들 때도 특별히 벼락 맞은 나무를 찾아 만들 줄 아는 부족을 과연 누가 쓰러뜨릴 수 있겠는가.

라코타 전사들이 활을 만들 때 벼락 맞은 물푸레나무를 택하는 것은 고초가 가장 강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를 수반한다. 그들은 자기를 죽이지 못한 그것이 자기를 가장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에 익숙한 부족이다. 그로써 새까맣게 타 죽은 나무를 찾아내 희귀한 활을 만드는 안목을 키웠다. 바람을 지나가게만 하면 시련도 축복이다. 나를 쓰러뜨리지 못한 운명이야말로 최고 행복의 근간이 된다. 몰아치는 바람은 힘들어도 지나가게 하는 건 수월하다는 뜻. 지나가게 하라는 것은 즉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자세다. 나 스스로 어찌하지 못할 바에는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그보다 확실한 인생 지침은 또 없을 것이다.

석상오동과 쌍골죽의 공통점을 생각해 본다. 돌 틈에 끼여 자란 석상오동과 병든 채 쌍골죽이 된 대나무는 기형이었으나 그래서 더 강해졌다면 내 삶의 방정식도 그렇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하필 돌 틈에 얽히고 두 개의 골이 파인 채 자라야 했던 삶은 어지간히도 기구했지만 혹독한 여건 속에서 자신을 격려하고 도담도담 살면서 소망을 키운 결과 세상에 드문 아름다운 소리의 배경이 되었다. 고난이 크면 영광도 그만치 크다.

눈감으면 석상오동과 쌍골죽의 특이한 모습이 스쳐간다. 그들이 보내는 ‘당신의 인생 노트에는 무엇이 적혀 있습니까’ 라는 메시지. 돌 틈에 끼여 자라는 석상오동이든 병든 채 양쪽으로 패여 속을 꽉 메우는 쌍골죽이든 자라는 과정이 그야말로 고통이었을 것인데 그로써 희귀한 악기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일루의 희망으로 자리 잡는다. 상처는 당연히 스트레스가 되지만 바람을 지나가게 하면서 강해지는 나무도 있다. 비바람도 꺾어버리지 못한 나무가 상처를 아물리면서 촘촘하고 단단한 옹이를 만들 테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거론의 여지가 없다.

불을 붙여도 화력이 좋고 오래 타는 생채기의 흔적이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고난이라 해도 결과는 그렇게 달라진다. 빛도 늘 막다른 상황에서 들어오는 것처럼 고난은 또 다른 돌파구다. 우리 가는 길 역시 수많은 돌이 널려 있고 당연히 걸림돌이 될 것이나 누군가는 밟고 일어나는 디딤돌로 바꿀 줄 안다. 나무도 바람을 지나가게 하면서 강해지듯 우리 또한 어려움 속에서 성장한다는, 그 배경을 인생 노트에 다시금 정리해 보았다. 높바람 몰아치는 겨울 산 어름에서……

이 정 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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