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충절을 굽히지 않았던 정몽주에게 태조 이방원이 던진 시 ‘하여가’다. 만수산 칡넝쿨이 이리저리 뒤엉켜 있듯이 풍진(風塵) 한 세상 별스럽게 굴지 말고 칡처럼 얽혀져 오래오래 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는 오늘날도 적당히 부정을 저질러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다 같이 잘 살아보자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이것은 칡의 생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칡은 만수산 드렁칡처럼 사이좋게 살지 않기 때문이다. 콩과 식물에 속하는 칡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고, 생명력이 왕성하다. 숲속에 웬만한 틈만 있으면 뿌리를 뻗는다.

요즘은 칡이 감고 올라가는 나무는 오래 살지 못한다하여 칡덩굴이 줄기를 뻗지 못하도록 제거하고 있어 칡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칡(葛)은 풀 초(艸)를 머리에 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풀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칡은 목질부를 가지고 있으므로 분명 나무다. 큼직큼직하고 무성한 잎, 척척 휘감는 줄기는 방자함과 자유분방함의 으뜸이다.


숲의 덮개가 짙고 묵질 해 질 무렵, 토실토실한 햇살을 암팡지게 거머쥔 '칡' 꽃은 가을을 상징한다. 한뼘쯤 꽃차례를 이룬 보랏빛 꽃은 서글서글하니 소담스럽다. 오만하리만큼 풍성한 와인 향과 요염한 자태는 서둘러 벌, 나비를 부른다. 꽃의 결실이 열매이고 보면 느지막이 피는 꽃은 분주하기 마련이다.

칡은 잠을 많이 자는 게으름뱅이 식물로 알려져 있다. 밤에는 잎을 밑으로 접고, 낮에는 잎을 위로 세우고 잠을 잔다. 광합성의 능력은 빛이 강할수록 높아지기 때문에 뙈약볕에서 광합성을 할 수 없는 칡은 잎을 접어 보호하는 것이다. 한편, 밤 역시 광합성을 할 수 없다. 때문에 잎에서 수분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잎을 아래로 접고 자는 방법을 택한 칡은 게으름뱅이로 소문이 날 수 밖에 없다.

밤낮없이 잠만 자는 칡은 잎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잎바늘'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깨어 있는 시간에는 '잎바늘'을 이용해 최대한 햇빛을 빨아들인다. 짧은 시간에 집중력있게 일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칡은 진즉에 알고 있다.

순식간에 주변을 덮어 버릴 만큼 빨리 자라는 칡, 어느 곳이든 잘 자라는 습성과 탄수화물, 칼슘, 철, 비타민 등 다양한 물질이 함유되어 있어 구황식물, 또는 사료나 퇴비, 짐승들의 훌륭한 양식이 되었으며, 생활도구로 이용되었다. 줄기를 키우고, 잎을 키울 겨를이 없을 정도로 잘려나갔다.

또한 나무들의 목을 조이는 주범으로 알려지면서 나무들도 칡 줄기를 경원시하게 되었다. 때문에 칡은 줄기나 잎 보다는 뿌리를 키우는 방법을 택했다. 즉 굵고, 큰 땅 속 뿌리에 많은 에너지를 축적하고 무서운 속도로 세력을 넓혀간다.

칡꽃이 피는 철, 출렁출렁 계절을 횡단하던 칡넝쿨이 아스팔트까지 뻗어 나왔다. 어디론가 급히 떠나려는 것 같은데 반쯤 녹은 여름이 발목을 감고 있다. 스스로 감아 놓은 넝쿨이다.

신 준 수 / 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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