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가 그었다. 빗물에 씻긴 달 항아리가 한껏 육덕지다. 들여다본즉 물이 차 있다. 조심조심 기울이니 좌르르 좌르르 한만없이 나온다. 연 이틀 비를 퍼붓던 하늘이 왈칵 쏟아진다. 북쪽 하늘 질러가던 먹구름이 보이고 며칠 밤 서성이던 쪽반달도 저만치 떠내려갔다. 새라도 지저귀면 동영상을 보는 듯 아기자기했었지. 고추장을 담그려고 씻어 둔 달 항아리에 빗물이 고이면서 드러난 비경이었다.

장독에는 그 외에도 늘씬하게 빠진 오짓독이며 자배기 소래기와 아담하게 고운 단지 방구리가 많았지만 달 항아리에 더 애착이 간다. 어디 한 곳 예쁘장한 데는 없어도 무척이나 단아한 느낌이고 게다가 우리 가족이 즐겨 먹는 고추장이 들었다. 장독문화가 식상해지면서 오지그릇은 쓸모가 없어지고 구석에 쌓아두는 게 일이었으나 고추장이 든 달 항아리는 장독에서도 양지바른 곳에 앉아 볕을 쬐며 해바라기를 하는 셈이다.

명절에 가면 어머니는 달 항아리에 고추장을 담아 주셨다. 언젠가, 그 때도 좋아라 하고 가져왔는데 공교롭게도 장마에 물이 들었다. 뚜껑을 열어둔 채 외출했다가 난데없는 비를 만났다. 부랴부랴 달려 왔어도 빗물이 그 새 한 동이는 들어가 버렸다. 하필 기와가 깨지고 바가지로 쏟아 붓듯 하는 바람에 씌워 둔 망까지 주저앉으면서 사단이 났다.

그 비를 다 맞고 물을 뺀 덕에 고추장은 무사했다. 속속 고인 빗물도 사나흘 볕이 쨍쨍 나면서 어지간히 말랐다. 다행히 맛은 괜찮았으나 십년은 감수했다. 몸이 펑퍼짐했던 달 항아리라서 빗물도 많이 들어간 것이다. 품이 좁은 항아리였다면 그렇게 고스란히 담기지는 못했을 테니 고추장도 푸지게 들어갔다. 떠먹을 때도 날씬한 항아리와는 달리 푹푹 없어지지 않고 마디게 내려간다. 느긋한 마음으로 세상을 품어 안는 포용력을 보는 것 같다.

장독 초입의 선반에도 비슷하게 생긴 백자 달 항아리가 있다. 보통 참깨와 고춧가루 등 양념을 담아두는데 눈부시게 보얀 빛깔 때문에 특별히 백자라고 했겠다. 태생부터가 귀족적인 백자 달 항아리는 뽀얗게 곱고 갓 낳은 산새알처럼 부드러웠으나 완만하게 둥글어지는 느낌은 장독대 달 항아리의 순박한 이미지와 어지간히 닮았다. 이따금 온달에서 하루 이울어진 열엿새 달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걸 보면 눈처럼 흰 바탕색이 보름달 그대로였던 것이다. 백자 달 항아리라고 부른 배경이 그려진다고나 할까.

덩지가 큰 달 항아리는 물레를 여러 번 돌리고 잇대서 만들게 된다. 그럴 때 이음매가 매끄럽지 못하면 보름달 모양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제대로 만들어진 게 천연 보름달이라면 약간 허룩해 보이는 달 항아리는 정품이 아니라서 열엿새 달 모양으로 된 것일까. 그나마 보름달로 속을 만치 연 이틀 둥글었던 걸 보면 정작 보름이 아니어도 온달로 착각할 수 있겠다. 더불어 그게 또 색다른 친근감을 준 것 또한 달의 특징인 차고 이우는 탄력성 때문이다. 약간 허룩한 것 같아도 너무 꽉 차 있을 경우 더 채울 여지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풍성한 기분이다.

무엇보다 끌리는 것은 순박한 모양새다. 두 개의 항아리가 빛깔만 다를 뿐 생김과 분위기는 모두 보름달에서 비롯된 것처럼 정갈한 이미지다. 그렇게 소박한 달 항아리였으되 어설픈 물레질로 투박하게 이울어진 것도 남다르다. 도자기라면 훨씬 정교하지만 나로서는 밋밋한 백자 달 항아리가 더 친근하고 임의롭다. 아름다움과 품격은 화려한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 것처럼. 그럴듯한 외양은 꾸민 것이되, 소박한 아름다움은 잡초 속에서도 예쁜 꽃처럼 자연스럽고 백자 달 항아리와 어지간한 느낌이었다.

도자기 치고는 단순한 백자 항아리와 질그릇 치고는 고급스러운 달 항아리의 느낌이 보름달에서 비롯된 것은 소박한 날들에서도 한껏 높일 수 있는 운치를 뜻한다. 그들 머무르는 장독은 또 간장과 고추장 된장 등 기본적인 양념뿐이지만 항아리의 크기와 숫자로 집안의 규모를 가늠한 것을 보면 예로부터 안주인의 자존심이었다. 양지바르고 물 빠짐이 좋은 곳에 만드는 건 물론 장독 주변에 철철이 꽃을 심어 가꾸는 것도 남다른 정성과 품격을 드러낸다.

보름달과 백자 항아리 그리고 달 항아리의 공통점은 뭘까. 요모조모 빼어나지 않고 밋밋해 보이지만 순박한 모양새야말로 퍼내고 퍼내도 솟아나는 인정의 보고다. 이따금 찾아오는 일가붙이에게 고추장 한 탕기 된장 한 덩어리 싸 주는 것도 장독대 인심이다. 된장에 박아둔 오이지와 무장아찌 너덧 개씩 꺼내 주는 것 또한 일일이 사먹는다면 그렇게 푼푼 덜어줄 수는 없다. 흙으로 빚은 옹기가 귀족적인 백자 달 항아리와 같은 등급이 된 배경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지.

백자 달 항아리보다는 투박해도 여타 항아리와 도담도담 어울리는 게 자못 예쁘다. 나쁜 냄새는 키질해 보내고, 바람과 볕과 세월 한 무더기를 재워 특유의 맛을 담아낸다. 나 역시 장독 모퉁이에서 맛을 창출하며 더 많이 채우고 나눠 주고 싶은 걸까. 보름달과 백자 달 항아리와 비스름한 까닭에 이름까지 전수받은 거라면 그 이미지는 원만한 기울기에서 나왔을 거라는 생각. 보통 8부 능선까지는 경사가 지고 가운데는 펑퍼짐하다가 3부 능선에서 이울어지되 달 항아리는 끝까지 완만하고 그래서 더 푸짐하게 담겼다. 무엇이든 천천히 원만하게 진행될 때라야 무리가 없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차고 이우는 달은 또 얼마나 규칙적인가. 일이 잘 풀려도 방만하지 않고 마음에 차지 않을 때도 서두르지 않는다. 우리 삶처럼 이울어질 때가 있고 이울면 차오르는 순리 그대로다. 질박한 마음으로 인생을 저울질하다 보면 밤하늘 보름달과 장독대의 달 항아리처럼 지고한 품위를 갖출 수 있겠지. 보름달과 흡사한 느낌 때문에 더욱 정갈한 이름을 지어 받았을 테니 나도 그만치 예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냄새와 맛의 아지트인 장독 모퉁이에서……

수필가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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