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탄자 대신 멍석을 깔았습니다. 까슬까슬 얼금얼금해서 불편할 것 같더니, 짚을 꼬아 만든 질감이 밟을 때마다 오히려 상쾌합니다. 반들반들 매끄러운 것에 싫증이 나도록 물려 있다가 뜻밖에 친근해진 것 같았습니다.
질뚝배기 화분에도 꽃이 다보록합니다. 아기자기 예쁜 꽃과 투박한 그릇이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짚으로 엮은 벽걸이에도 장식용 지게를 달았습니다. 문짝에 걸어 둔 보리이삭은 거스러미가 일 것처럼 투박한데 차라리 자연스럽군요. 굽도리 엎어놓은 떡시루와 돌절구 역시 불거진 부분이 많고 험하게 생겼건만 느낌이 편합니다.

엉성하게 바른 흙벽 또한 까닭 모르게 정이 갔습니다. 그 옛날 짚을 섞어 바른 진흙은 비가 오면 물기를 잔뜩 머금은 뒤 건조해질 때마다 뿜어내는 가습기 역할을 했다지요. 지금 보는 게 명색은 흙벽이라도 그 때와는 달리 에멜무지로 발랐을 텐데 그나마 통풍은 잘 될 것 같습니다. 요즈음 잘 지었다는 주택이 단열재로 겹겹 막아 효율적이기는 한데 기능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군요. 최근 아토피성 피부염이 흔한 것도 공기가 통하지 않는 벽 때문이라고 본 것입니다. 다 그렇지는 않고 체질인 경우도 있으나 숨 쉬는 기능은 떨어질 테니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주인 집 여자 또한 친정 언니 같고 젊은 이모 같기도 해서 낯설지가 않습니다. 소박한 인상도 집안 분위기와 적절히 어울립니다. 닳고 닳은 도회지 사람들 중 더러는 깔끔한 생김보다 각박해 보이던 게 생각납니다. 세련된 외양이 호감은 가는데 어쩐지 불편한 사람이 혹간 있다면 단정한 중에도 수더분해 보이는 주인 여자는 드물게 이색적입니다. 정갈하게도 생겼지만 순수하고 차분한 성품이라면 훨씬 진국일 테니까요.

양념을 듬뿍 넣어서인지 음식도 맛깔스럽고 푸짐한데 특별히 질그릇에 담았습니다. 갓 지은 따끈한 밥이 무척 정갈하고 묵밥 또한 어릴 적에는 꺼끌꺼끌해서 거북하더니 뒤늦게 입맛에 당겼습니다. 보리밥이나 쑥 개떡 등 거칠거칠한 게 소화가 잘 된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섬유질 많은 푸성귀와 채소가 소화를 돕고 장을 튼튼하게 만든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겠지요. 나도 어느 새 투박한 것에 끌리는 나이가 되었거든요.

거칠고 투박한 것도 가끔은 좋을 수 있다는 게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지금은 납득이 갑니다. 요즈음 건강법으로 나온 울퉁불퉁한 신발과 매트만 봐도 증명됩니다. 비포장도로일 때는 다니기도 불편했으나 건강에는 오히려 괜찮습니다. 최근 선진국이 되면서 고속도로가 많이 생기고 길은 좋아졌는데 장운동에는 역효과일 수 있다니 돌밭과 자갈길이 되레 좋을 수도 있는 걸까요. 다 그렇지는 않다고 하되, 포장이 잘 된 길만 다니다 보면 대부분 장이 약해지고 그래 특별한 신발로 건강을 도모하게 된 것 같습니다.

잠시 전 다녀 온 찜질방도 옥돌과 자수정과 맥반석이 수북한 곳을 찾아 다니며 발바닥을 자극하는 식이었지요. 흙벽돌은 거칠고 닿기만 해도 얼얼한데 잠시 후에는 열이 나고 후끈거렸습니다. 가지가지 울퉁불퉁한 방에서 찜질을 끝내고 점심을 먹으러 가서는 또 멍석을 깔아 놓은 황토방 특유의 분위기에 매료되었으니 기분이 묘합니다. 어린 시절 바깥 마당에서 밤하늘을 보며 옥수수와 감자를 먹던 그 때처럼 오늘 멍석에 앉아서 먹은 음식 또한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현대식 주택이 건강 차원에서는 약간 뒤떨어지지 않을까 싶은 건 반듯하게 지은 그 때문입니다. 가령 오르내리는 문지방도 없이 평평한 바닥이 문제라고 본 것입니다. 주방이든 화장실이든 턱 진 데라곤 없이 매끄럽기만 합니다. 그리고는 옥돌이니 자석 침대를 별도로 사들입니다. 일차적인 주거 공간은 자극을 주지 않는 공법으로 조성한 뒤 투박한 생활용품을 덧붙이는 격입니다. 막연한 생각이라 설득력은 있을 것 같지 않으나 최근 유달리 흔한 질병에서 나름 추론해 본 것입니다.

주거공간과 생필품 등이 그렇다 보니 일상적인 대화 역시 달콤한 것에 치중합니다. ‘구밀복검’이라고, 부드러우면서 뱃속에 칼을 둔 말과 악의 없이 순박한 말의 구별이 어려워졌습니다. 예쁘고 반들반들한 주거공간과 생활용품 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는 이 기분. 속내가 진솔하면 구태여 꾸밀 일은 없게 되지만 속이 부실하면 위장하기 위해서라도 그럴싸하게 들립니다. 내 취향도 은연 중 수더분해진 걸까요. 식성도 바뀌었는지 도토리묵과 된장국 등 향토적인 게 끌립니다. 건강도 좋아지는 걸 보니 흔한 말로, 진품일수록 투박한 게 많고 그게 오리지널 진짜배기입니다. 겉모습과는 상관없이 속을 채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을 알기에 그렇게 원초적이었습니다.

인생 또한 복잡다단할 때라야 건실한 삶이 되겠지요. 어려움이 없으면 편히는 살 것 같지만 포장이 잘 된 길처럼 오히려 무료해질 수 있습니다. 가시에 찔리지 않고서는 장미꽃을 모을 수가 없는 거지요. 성공의 주춧돌은 울퉁불퉁 곡절이 많은 삶에서 겪는 고난과 눈물입니다. 비단금침 속에서 잔다고 좋은 꿈을 꾸지는 않습니다. 너무 화려해도 오히려 어수선해질 수 있다면 거친 잠자리에서도 예쁜 꿈을 꾸게 되지 않을까요. 들쭉날쭉 불규칙적인 삶에서도 나름 경지를 이룰 수 있고 겉보다 중요한 것은 진솔한 이미지입니다. 꺼병이처럼 투박한 중에 깃든 속내를 파악해야 되겟지요. 어쩌면 내실이 더 중요할 수 있는데 세상에는 외양에 비해 속은 보잘것없는 굴퉁이도 많았거든요.

누군가를 대할 때도 그럴듯한 모습에 치중하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겉보기에는 다소 허름해도 그런 사람일수록 내실을 채우게 마련입니다. 가치관을 그렇게 설정하고 보니 소박한 날일 수밖에 없지만 거기 깃든 이념일수록 훨씬 깊고 심오하다는 것도 소망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고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섭리입니다. 반들반들 세련된 방식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면 나름 최상의 삶이 될 것 같습니다. 울퉁불퉁 투박해도 그런 여건이 건강에는 가끔 최적이었던 것처럼.

수필가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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