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호가 휘감고 사방을 둘러봐도 첩첩산중에 인적이 살지 않을 것 같은 제천의 두메산골
깊은 산골 마을에도 고맙게 봄이 찾아주었다.
연분홍 진달래 수줍은 듯 피어 있는 산자락 아랫마을,
살아온 세월 물씬 품고 있는 기와집 굴뚝에서 뽀얀 연기 피어오른다.

흙에서 얻은 것에 만족하며 자연 그대로 닮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
옛 것이 좋다는 정씨 할아버지네 부엌에는 특별함이 있다.

연륜보다 오래된 전통 맷돌이 우직한 소리를 내며 돌아 갈 때 고향 이야기를 듣는 듯 근심 보따리 하나 내려놓게 된다. 지금은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란 맷돌로 두부를 만들고 있는 노부부는 손발 척척 죽이 잘 맞는 품새에 드륵, 드르르륵 맷돌 장단에 흥이 난다.

중심축이 달린 밑돌과 손잡이가 달린 윗돌을 겹쳐 놓고 하루 전에 물에 담가 불린 콩을 한 숟가락 씩 퍼 넣고 맷돌을 돌리는 것이다. 맷돌 손잡이를 함께 잡고 돌리는 노부부의 살가운 미소가 돋보인다. 손잡이를 잡고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리게 되면 곱게 빻은 콩물이 여인네들의 핍진한 삶처럼 진득하게 흘러내린다.

맷돌 일이 끝나면 바깥 어르신께서는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붓고 아궁이에 불을 놓아 끓이고, 안주인께서는 물이 끓는 가마솥에 갈아놓은 콩물을 한 바가지씩 퍼 넣는다. 끓는 속도에 맞춰 조금씩 퍼 넣고 커다란 주걱으로 저어야 한다. 눌어붙지 않고 끓어 넘치지도 않게 조심조심 느리게 정성스런 힘 조절과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끓인 콩물을 목면 자루에 담아 거르면 성글고 되직한 비지와 곱고 뽀얀 콩물로 분리가 된다. 콩물을 다시 가마솥에서 은근한 불로 끓이는데 이때 간수를 넣게 된다. 간수란 염화마그네슘 성분으로 천일염에서 얻는 물로 짜고 쓴맛이 난다. 그것은 두부가 서로 엉길 수 있도록 화학 작용을 하는 것 이다.
간수 양이 많게 되면 두부가 딱딱해지고 쓴맛이 나며, 부족하게 되면 엉기지 않아 부스러지기 쉬우므로 두부 만드는 핵심 기술은 간수 양 조절이 아닌가 한다.
1 CUP(컵)이라는 계량 도구 없이 50여 년을 어머니의 감각만으로 만들어 낸 손 두부는 콩의 패러디며 맛과 영양의 결정체로 탄생되는 것이다.

잘 끓여 놓은 순두부를 사각 나무틀에 베 보자기를 깔고 퍼 담는다. 틀에 맞는 판으로 덮고 물을 담은 양동이를 올려놓으면 물기는 밑으로 빠지면서 두부 모양을 만드는 성형 과정이 된다.


이렇게 모든 과정이 끝나고 틀에서 성형을 기다리는 시간도 매우 합리적이다.
도와주신 이웃 분들과 함께 남겨 둔 순두부에 참기름 한 방울 떨어트린 양념간장과
묵은 김치 한 접시로 푸짐하고 맛있는 정을 나누는 딱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분쇄기가 대신하고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마트용 냉장식품 보관용기에 진열된 것을 사다 먹는 요즘에 전통 맷돌로 두부를 만들어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촌로의 마음은 갓 만들어진 두부처럼 말랑말랑 구수하게 느껴진다.

집안의 대소사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 두부를 만들던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들기름을 두르고 부치면 온 마을에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노릇노릇하게 부친 두부 한 조각 간장에 찍어 입에 넣어 주시던 어머니 그때 그 맛을 뇌는 기억하고 있는 것 일까? 행복한 느낌이 입 안 가득 샘솟는다.


 

프리랜서 여행작가 / 홍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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