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품 최쌍중의 제주풍경

최쌍중(1944~2005) 제주풍경 / 72.7 * 53 캠퍼스위에 유채

“아버지 제사 날 그림을 그리러 가야 한다면 지체하지않고 그림 그리러 가라” 나를 처음 놀라게 한 최쌍중님의 일성이다 “네게 수입이 생긴다면 제일먼저 그림재료를사라 ”
이말은 최쌍중님이 떠나시고 12년이 된 오늘도 화방에 가서 뭔가 구입을 할 때면 꼭 생각나곤 한다.
내가 만난 많은 작가들 중에 최쌍중 만큼 그림에 바친 그의 열정을 견줄만한 이를 아직 찾지못했다 .

강의를 좀해주시지요 --그림그려야지요
술한잔 하실래요? --그림그려야지요
병원에 가보셔야지요 --그림그릴시간도 없는데 무슨병원
교회나 성당에 가시나요?--그림 그려야지요
술담배롤 전혀 한적없고 큰소리로 웃는 모습도 본 기억이 없다 .
본인이 어딘가의 글 속에서 ‘ 나의 혼은 그림이며 나의 종교이다 그림 이외엔 별 관심을 갖어 본적이 없다 ’라고 말했다 .

76년-78년 3년간 힘들게 유럽에서 그림공부를 하고 귀국전을 개최했을 때 한국의 미술계는 발칵 뒤집혔다. 그후 오늘날 표현 주의적이고 감성적 인상파류의 독특한 표현력의 그림이 지금까지도 만연하게 된 계기가 된다.

최쌍중의 중학교시절 조선대부중에서 그림을 시작하고 조선대부고 미술반에서 형 쌍건과 함께 그림공부를 할 무렵 그의 후배들은 건이형 중이형시대라는 신조어를 만들면서 그분의 화려한 고교시절을 회상하곤한다. 그무렵 임직순교수의 조선대에 부임과 쌍중님의 그림 성격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두분의 작품이 매우 강렬한 색채로 자유롭고 활달한 붓의 터치도 예사롭지 않다 .

그는 자연 앞에서 현장감을 중시하며 눈이오는 날도 창밖에 눈보라를 피해 실내에서 그리자고 했다가 몹시 혼이 났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반드시 현장의 바람과 추위 마저도 그림이 된다며 궂이 야외를 고집하던 그모습이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된다.

질감과 색채의 환상적 표현을 지향하면서 윤곽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표현법은 그의 작품앞에서 늘 관현악을 듣는 것 같은 감흥을 이르킨다. 자연을 앞에두고 독특한 색채로 폭탄처럼 힘찬 붓질로 새로움을 빚어내어 감상자의 시선을 잡아 놓더니 말년에 거의 추상으로 변해가는 작품 세계는 우리들에게 좀더 자유로운 피안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병마와 싸우는 말년에도 가족에게 단한번도 짜증내는 적이 없었다고 하는 가족의 전언을 듣고 다시한번 숙연해 졌다.

이세훈 / 전)한국 미술협회충북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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