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양반이!, 아니 저 양반이!”

가끔 TV드라마에 등장하는 억척스러운 인물이 이런 대사를 하곤 한다. 우리가 공부한 역사나 사극을 보면 ‘양반’이란 계급은 계급 중에서도 상류층을 가리키는 말인데 대사와 상황만 놓고 보면 전혀 좋지 않은 말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고려 조선시대의 지배신분 계층을 가리키는 ‘양반’은 본래 국왕이 조회할 때 문반이 동쪽에 있는 것을 동반으로, 서쪽에 무반이 선 것을 서반으로 가리키는 말에서 이 두 반열을 통칭하여 ‘양반’이라고 했다고 한다. 즉 양반이란 왕을 알현하고 나랏일을 도맡아 할 수 있는 특권층 계급이었던 것이다.

양반이 누렸던 혜택은 너무나 많다. 교육과 과거응시, 군역, 토지와 노비 소유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너도나도 양반의 자손이라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 조선 초기에 3~4%만 존재했던 양반은 조선후기 몰락한 양반들이 자신들의 족보를 팔고, 나라에서는 부족한 재정을 채우기 위해 돈을 받고 신분해방을 단행하고 사회적으로는 위조까지 성행하며 양반이란 계급이 크게 증가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구한말 전통적인 신분체제의 붕괴와 함께 족보로만 남게 되었다.

양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있지만 그럼에도 긍정적 의미도 있다. 우선 사회적으로 양반을 가리키는 성격은 ‘점잖음’이다. 유유자적하고 학구적인 태도(물론 이것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를 갖춘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일에도 호들갑을 떨지 않고 배움에 충실하며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선비의 마음을 갖춘 사람이 양반인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양반이 아닌 사람이 없다.

전주, 안동은 대표적인 양반의 고장인데 이에 못지않게 충청도도 양반의 고장이다. 오죽하면 옛날부터 ‘충청도 양반’이라는 말을 쓰지 않던가.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는 지리적인 위치상 서울·경기와 가까웠다는 이유가 크기 때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산천이 평평하고 아름다운 이 곳에 여러 대에 걸쳐 서울 경기권의 사대부들이 충청도로 옮기고 모여 살면서 자연스레 양반의 고장이 되었고 풍속에도 큰 차이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수도권에서 먼 제주나 경상, 호남지방의 사투리에 비해 비교적 알아들을 수 있는 사투리(?)를 쓰게 된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충북에는 특별한 ‘양반길’이 있다. 산막이옛길로 유명한 괴산에는 산막이 옛길이 끝나는 지점부터 추청도양반길이 이어진다. 걷기 좋게 보드라운 흙길로 조성했기 때문에 발바닥의 피로도 덜 느낄 수 있다.

양반길은 충북 괴산만의 천혜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높은 산과 맑은 물이 있어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특히 아름드리 자연송림이 울창하고 야생화초가 어우려져 사계절 수 많은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 4월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4월에 걷기 좋은 여행길로 ‘충청도 양반길’이 선정됐다. 진달래 꽃이 만개하는 4월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걷다가 쉬다가 보면 바쁜 삶을 벗어나 유유자적한 양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기수 / 충청북도 SNS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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