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부부 사이를 가리킬 때 ‘안 사람’을 ‘여성’으로, ‘바깥 사람’을 ‘남성’으로 지칭한다. 근데 이 말은 향후 10년 안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바깥과 안, 즉 경제적 활동과 가사의 영역을 ‘남녀’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과거에 비해 활발해졌다. 여성들도 정부나 기관, 기업 등 요직을 겸하며 활발하게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고, 남성들도 가사, 육아의 영역에서 분담을 하고 있다. 작년에 유행했던 말 중에 하나는 ‘요섹남’이었는데 이는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마도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낯선 개념이며 단어일 것이다. 불과 수 십년 전만 해도 주변 어르신들은 “남자가 부엌에 가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말을 했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투표권도 과거 여성에게는 없었다. 영국에서는 1913년부터 여성의 참정권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1918년에 이르러 30세 이상의 여성들만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막는 제약도 많았다. 제도 자체가 여성의 진출을 막은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다양한 층위와 영역에서 여성의 역할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그동안 사회적 약자로서 존재했던 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여성을 동등하게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사람들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시대의 발전과 함께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점차 넓어지고 있지만 뿌리 깊게 박힌 남성우월적인 사고는 사회 곳곳에 암적으로 존재한다. 차이가 아닌 차별로서 말이다. 내 자녀에게는, 다음 세대에게는 보다 넓은 기회의 평등과 사회적 가치를 유산으로 남겨주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인상 깊게 봤던 <다음 침공은 어디에>라는 다큐멘터리에서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한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한 나라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해서 말이다. 오로라로 유명한 북대서양에 위치한 아이슬란드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3대 국영은행이 파산을 맞는다. 최악의 경제상황을 겪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파산하지 않은 은행들의 대부분이 ‘여성 은행장’이었다는 사실이다. 투자심리에서 여성들은 직접 눈으로 보고 믿을 수 있는 것만 투자한 반면, 남성들은 즉흥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한 것이다.

다큐멘터리 속 여성들은 한 목소리로 여성과 남성의 시각이 다르다고 말한다. 여성은 내가 아닌 우리를 바라보는 존재지만 남성은 우리보다는 나를 바라보는 존재라고 한다. 이는 여성의 출산, 즉 어머니로서의 유전적 특징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남성과 여성에게 대입하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일 수 있지만 말이다.

만약 모든 나라의 지도자가 여자라면 전쟁이나 기아에 시달릴까? 어머니의 마음이라면 분쟁보다는 평화를, 가난과 굶주림보다는 보살핌을 생각하지 않을까 상상한다.

4월에는 충북여성재단이 출범을 맞는다. 여성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전환이 선행되어야겠지만 충북여성재단이 충북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여성 권익 증진, 양성평등 문화 확산으로 여성이 행복한 나라, 여성이 행복한 충북을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이기수 / 충청북도 SNS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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