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새로움을 시작하는 희망의 계절이다. 우연일까? 봄이면 제일 먼저 지천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는 개나리 꽃말이 “희망”이라는 것이... 개나리 꽃을 필두로 움추렸던 땅이 기지개를 펴듯 여기 저기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수줍은 듯 고개를 든다. 녹음이 들기에는 아직은 멀지만 햇살에 비친 백곡저수지는 유리알같이 반짝인다.

백곡저수지를 돌아 돌아 가다보면 . 산자락 깊숙한 골짜기에서 낡고 빛바랜 회색 슬레이트 지붕 아래 황토 빛 숯가마들이 줄지어 서 있다. 충북 진천의 숯굽는 마을이다. 숯 마을에 이르기 바로 전 먼저 매캐한 연기냄새가 숯 마을의 존재를 알린다.

곧이어 뽀얀 아침햇살에 골짜기 아래로 안개처럼 하얗게 연기가 가라앉아 있는 모습 속으로 새까만 숯가마들이 눈에 들어온다. 숯 굽는 마을답게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역시 나무들이다. 숯으로 변하기 직전의 참나무들. 그 너머로 막 꺼내어 지기를 기다리는 불타는 가마들이 보인다.

무려 10개의 숯가마가 있다. 모든 숯가마가 한번에 불을 떼는 것이 아니라 번갈아가며 불을 떼기 때문에 언제 가더라도 숯굽는 과정을 전부 볼 수 있다. 한쪽에서는 빈 가마에 어른 키 만한 나무들을 차곡차곡 세워 넣고 있고, 그 옆에는 불을 붙인 가마를 속이 보이지 않게 봉해 놓아 그 열기만 느낄 수 있는 가마도 있다.

섭씨 1200도의 불꽃 속에서 타오르는 정념을 사위고 나면 참나무는 탱탱 쇳소리가 나는 참숯으로 다시 태어난다. 정성으로 빚은 진흙 가마 안에서 불붙은 참나무는 1000℃이상의 온도에서 열두 밤낮 농익은 정념을 홀로 붙 태운다. 푸른빛 연기가 오르면 비로소 공기를 불어넣어 은빛으로 타오르며 마지막까지 남김없이 태우고. 가장 극단에서 태어난 숯은 우리의 생활에 스며 해로움을 흡수한다.

시뻘건 불길을 토해내는 가마에서 불덩이 같은 숯을 식힌다. 느긋하게 때를 기다릴수록 최고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 산골의 봄은 좀 늦게 와 썰렁한 기운이 맴돌지만 추위도 잊은 채 이마에 송글 송글 맺힌 땀을 훔쳐내는 겉으로는 초라해 보여도 안으로는 뜨거운 사람들이 있다.

숯 제조과정으로 나무를 쌓는 법은 참나무는 10~20내외가 가장 적당한데 참나무를 세울 때 두꺼운 부분이 위로 얇은 부분은 아래로 가게 세운다. 이렇게 새우는 이유는 참숯은 위에서부터 타 내려가기 때문이며, 두꺼운 부분이 아래로 가게 되면 숯이 윗부분은 다 타버리고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무를 가마에 꽉 채운 뒤 불을 붙이게 되는데, 불을 붙이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마의 입구를 윗부분만 빼고 막은 뒤 불을 직접 붙이는 방법과 가마의 입구를 모두 막고 옆에서 아궁이처럼 생긴 곳에서 불을 때 그 열로 자연발화 시키는 간접 발화 방식이 있다.

이렇게 불을 붙인 가마는 가마입구의 하단에 작은 불 조절 구멍을 두고 1주일정도 타들어가게 되는데. 불 조절 구멍은 연기의 양이나 색을 보고 막았다 열었다 하는데 그것은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구별하기 힘들다고 한다. 불을 붙이고 이주일 동안은 굽는다.

막지막으로 연통의 연기가 푸른빛을 띄게 되면 가마입구의 하단부를 3/1정도 열고 가마의 온도를 올리게 된다. 온도를 올리는 이유는 숯의 마지막 남은 다 타지 않은 껍질과 숯 내부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또한 숯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수 있는 기공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이다.

식은 가마에서 숯을 꺼내 작업하는 숯 공장 사람들.. 험한 직업이라고 젊은이들이 없다. 나이 드신 인부들이 연신 다듬고 포장을 한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사연은 가슴 한켠에 묻고 얼굴에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 나 사진 찍지마. 신문에 나면 옛 애인이 보고 가슴아파할지도 몰라.” 말하면서 수줍은 얼굴을 감싸는 노인네의 마음이 가슴을 저민다.

쿨럭 쿨럭 연기따라 뭉게 뭉게 사라지는 온갖 사연 저리도 서러운데 그 맘이야 까맞게 타버린 우리속이나 진배없다.

홍대기 / 프리랜서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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