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에 얽힌 관료주의 문제점

‘외투’ <니콜라이 고골 지음>


봄이 왔건만 아직 완연한 봄은 아니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로 눈이 오는 등 날이 추워졌기 때문이다. 겨울에 입었던 두툼한 외투를 다시 꺼내들면서 호기심어린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온대기후대에 사는 우리도 이러할진대, 우리보다 북쪽에 위치해 더 추운 땅, 러시아에 사는 사람들에게 외투란 어떤 의미일까?’ 물론 소설이기는 하지만,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고골(=고골리)이 1842년에 발표한 ‘외투’를 보면 그 적당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혹독한 추위가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어찌나 매섭게 몰아닥치는지, 가엾은 우리 관리 나리들은 어디다 코를 두어야 할지도 모르고 쩔쩔매는 것이다. 지위가 높은 양반들조차 추위에 머리가 띵할 지경이고 눈에 눈물이 글썽해지는 판이니 가엾은 구등관 따위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오직 한 가지 방법이란, 초라한 외투로나마 몸을 단단하게 감싸고 될 수 있는 대로 발걸음을 빨리해서 대여섯 개의 골목을 지나 관청 수위실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발을 동동 구르며 몸을 녹여, 오는 도중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사무 능력이나 재주가 제자리에 돌아오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러시아가 얼마나 추운 곳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다. 페테르부르크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보면 러시아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북쪽 지방 특유의 지독한 추위이다. 외투는 이 지독한 추위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켜내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필수품이다. 그러나 외투 값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따뜻하고 멋스러운 값비싼 외투는 곧 부의 상징이자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청의 하급 공무원 구등관인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늘 동료 관리들의 놀림감이 되어왔다. 성실하지만 요령이 없고 처세술이 부족한 성격 탓도 있지만,가난하여 닳을 대로 닳아빠져 훤히 비칠 지경인 초라한 외투를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외투가 너무 낡아 더 이상 수선을 할 수 없게 되자 아카키에비치는 돈을 아껴 새 외투를 장만하였다. 비싸지는 않지만, 따뜻하고 멋있는 외투가 생기자 관청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새 외투를 구경하면서 앞다퉈 축하와 칭찬의 말을 하였다. 심지어 부과장은 축하 파티를 자신의 집에서 열어주었다. 그런데 이 것이 화근이었다. 파티에서 돌아가는 길에 불량배들에게 외투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아카키에비치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 경찰관을 찾았으나 경찰관은 파출소장을 찾아가 사정 얘기를 해보라고 하고, 다음날 찾아간 경찰서장은 빼앗긴 외투에는 관심이 없고 아카키에비치의 부주의만 탓하였다. 다시 고위 관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고위관리는 순서와 절차를 무시했다며 오히려 아카키에비치를 호통 쳤다.

“자네는 일의 순서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나? 지금 어딜 찾아온 거야? 관청의 사무라는 게 어떤 순서를 밟아서 진행되는 것인지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이런 문제라면 우선 관련 창구를 찾아 탄원서를 제출하는 게 우선이지? 그렇게 하면 서류가 계장, 과장을 거쳐 비서한테 넘겨지겠지. 그 다음에 비로소 비서관이 내게 그 문제를 가져오게 되어 있단 말이야!”(본문 중에서)

허세에 가득 찬 고위 관리의 말에서 관료주의 사회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물론 조직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계질서는 중요하다. 그러나 조직이 방대해지다보면 이 소설 속 인물들처럼, 업무의 처리가 지연되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문제가 발생한다. 작가 고골은 소설을 통해 아마도 당시 러시아 사회에 만연하였던 관료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러한 관료주의의 폐해에 상처를 입은 아카키에비치는 결국 고열에 시달리다 죽고 만다. 죽은 후에는 유령으로 나타나, 외투를 찾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거절한 관리의 외투를 빼앗은 뒤 사라진다. 황당하면서도 우스운 결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아카키에비치에게는 외투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비극적인 결말에 눈물이 나면서도 웃음이 난다. 요즘말로 웃픈 현실이다. 사실적이면서도 유머와 풍자로 사회 문제를 비판한 고골 특유의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연인형 / 국어·논술·NIE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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