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다시 쌀쌀해졌다. 봄인가 하면 또 오늘처럼 바람이 분다. 겨우내 기다린 것 치고는 참으로 감질 나는 봄이다. 간다 간다 하면서 아이 셋은 낳고 간다더니 봄은 온다 온다 하면서 애들을 서넛 달고 온다. 꽃샘잎샘 쌍둥이와 춘설과 보리누름추위로 모두가 전처소생들이다.

엊그제, 냉이를 캐던 날은 완연한 봄 날씨였다. 햇살은 따스해도 2월에 장독 터지고 3월에도 눈이 온다. 어쩐지 불안하다. 언젠가 이맘때 항아리를 깨뜨린 적이 있었다. 따스한 초봄 김칫독을 헹궈 물을 부어 놓았더니 보기 좋게 동강 나 버렸다. 3월의 꽃샘추위를 만만히 보았다.
봄이 파발을 띄우는 것은 입춘을 전후할 때다. 개울을 지나면 부얼부얼한 버들개지가 눈길을 끌었다. 갓 태어난 새끼강아지처럼 눈도 못 뜨고 낑낑대며 봄 한 자락에 매달렸다. 겨울의 징검다리를 건너오던 꽃샘바람이 보고는 봄 주머니를 열었다. 썰렁했던 날씨가 금방 녹작지근해졌다.
강물도 풀리고 나무에 물이 올랐건만 툭하면 춥다. 안에서 보면 봄인데 나가보면 썰렁하다. 봄비까지 푸지게 내리고는 영하로 떨어지기도 한다. 갓 봄이 태어날 때는 살랑살랑 불더니만 통통해진 꽃눈과 새싹을 보고 발목을 걸었겠다. 꽃샘추위가 지나면 쌍둥이 잎샘추위가 등장하건만 공교롭게도 날씨에 속는다.‘아무렴, 지어먹은 마음 사흘 갈 리 있나? 어쩐지 이상하더라니’라고 뇌까렸을 테지.
하지만 겨우내 추워 떨었어도 꽃부터 피면 더 힘들다. 봄으로 가는 간이역인데 일찍 따스해져도 타격만 입을 테니 전실 자식들의 심술도 가납할 일이다. 춥고 따스한 탄력성으로 진짜배기 봄이 된다. 성급하게 씻어 둔 항아리가 깨지고 일찌감치 볕을 쬐게 한 화초가 얼어 죽는다.
오늘 따스한 날씨에 팔려 냉이를 캤다마는 기실은 추운 날 캐야 더 맛있다. 꽃샘바람 불 때는 꽃샘에 잎샘까지 거드는 격이지만 대부분 일이 잘 풀릴 때가 문제다. 허구한 날 속 썩이는 애물단지로 편할 날이 없었으나 일찍 봄이 될 때는 늦추위가 잦다. 그래서 봄에도 눈이 내렸던 걸까. 3월에도 세상이 하얀 이불자락에 덮일 때가 있다. 봄눈 녹듯 한다는 말대로 금방 녹지만 가끔 비상사태를 방불케 하듯 굉장치 않을 때도 있다.
얌전히 내릴 때는 봐줄 만해도 폭설에 덮일 때는 눈엣가시 같은 전처소생 짓거리와 흡사했다. 봄이 낳은 산새와 들나물까지 합세해서 피운 보람도 없이 한나절도 못 가서 녹곤 했으니 찬밥 신세 그대로다.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게 사는 모습이 그렇게 얄미웠을까.
그나마 힘이 없으니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고 솜방망이 든 채 날뛰는 격이다. 이후 꽃들은 더 예쁘게 피고 그래서 앙앙불락했지만 차분한 춘설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왈패 같은 꽃샘잎샘보다는 온순해서 신경을 쓸 게 없다고 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남의 자리 차고 앉은 것도 아니고 겨울이 퇴각한 후 왔건만 다 된 밥에 재를 끼얹었으니 기도 차지 않았을 것이다.
꼴통인 전실 소생들로서도 빼앗긴 자리가 여름이나 가을만 같아도 모르련만 새싹 돋고 꽃까지 피는 봄이다. 봄 속에 겨울이 들어앉은 폼은 가당치 않으나, 근신해 왔던 꽃샘잎샘은 심술을 터트릴 수 있어 좋았다. 봄 역시 아닌 밤중 홍두깨로 걷어 채였지만 신방을 차린 듯한 정경은 춘설만의 걸작이라고 좋아했겠지. 한번 당해주는 체하면서 떡판에 엎드리듯 제가 출산한 꽃이며 새가 떨든 말든 솜이불 끌어 덮으며 천금 같은 봄밤을 즐겼다.

산철쭉이 필 때는 보리누름 추위가 온다. 보리가 팰 즈음에는 미나리가 삼단같이 올라오지만 가지와 고추 모 등이 얼어 죽기도 한다. 늦추위 극성은 허울뿐일 수 있으나 모종까지 얼어 죽는 보리누름 추위에는 두 손 바짝 들었다. 꽃샘과 춘설은 다 큰 녀석이라 일찌감치 포기했고 보리누름은 그 중 어렸다. 기른 정 따로 낳은 정 따로였는지 잘해 주면 속셈이 있나 경계를 하고 오해를 받을까 봐 건성 대하면 전실 자식 구박한다는 구설도 잦았으나 막내는 정도 들었던 만치 오뉴월 서리 같은 추위는 뜻밖이었을 것이다.
두문불출하느라고 대문도 열지 못했다. 빗장뼈가 약하기도 했지만 대뜸 열었다가 어떤 변을 당할지 몰랐다. 같은 환절기라도 겨울이 될 때는 병폐가 없지만 무서리는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라 방심을 할 테니 장독을 깨뜨리고 무서리로 반늙은이를 떨게 만든다. 늦가을 된내기처럼 결딴은 내지 않아도 못자리 등에 피해를 주는 걸 보면 조심해야 될 때다.
봄이 쉽사리 오지 않는 건 꽃샘잎샘과 춘설과 보리누름 추위로도 알 수 있다. 꽃샘에 놀란 가슴이라 춘설과 보리누름 추위를 경계하듯 시련도 엉뚱한 데서 오지만 힘들여 완성할 때가 진짜다. 봄의 절반은 춘설에 바람이었으되 그래서 계절의 서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교대로 심술을 부릴 때는 넌더리를 냈겠지만 그런 수모 때문에 봄 로열 석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이정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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