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최근 충남대 중앙도서관에 대학생들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심리상담 자판기가 설치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자판기에는 심리상담이 필요한 20가지 유형의 상자가 들어 있다고 한다. 유형을 선택하고 자판기에 500원을 넣으면 현재 심리상태에 도움이 되는 글귀와 비타민, 카페 이용권 등이 나온다고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지만 그만큼 요즘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고민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마음에 위로를 주는 심리상담 자판기처럼, 겨울의 언 마음을 녹여줄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바로 그것이다.
삼인조 도둑이 경찰에 쫓겨 30여 년 전에 폐업한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든다. 그런데 이 날 새벽 빈 가게 우편함으로 상담 편지 한 통이 날아든다. 나미야 잡화점 주인 앞으로 온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이들은 주인 대신 답장을 보낸다. 이렇게 여러 통의 상담 편지들이 오가면서 ‘나미야 잡화점’에 얽힌 비밀들이 하나둘 밝혀진다.
사실 ‘나미야 잡화점’은 가게 주인인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것이다. ‘나미야’ 가 고민을 뜻하는 일본말 ‘나야미’와 발음이 비슷해서, 아이들이 장난삼아 쪽지를 보낸 것이 상담의 시작이다. 혼자서는 해결 못할 고민거리를 편지로 써서 가게 앞 셔터의 우편함에 넣으면 할아버지는 다음날 가게 뒤편 우유 상자에 답장을 넣어둔다.
여기까지만 보면 감동어린 훈훈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묘미는 지금부터다. 추리소설과 판타지 소설을 써온 작가의 작품답게, 소설 곳곳에 판타지와 추리적인 요소가 살짝 가미되어 읽는 재미를 준다.
판타지 요소는 최근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시그널’처럼,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묘한 이야기 전개에 있다. 나미야 잡화점은 시간이 멈춰지면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특별한 공간이 된다. 도둑 중 한 명인 쇼타는 이 공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게 앞 셔터의 우편함과 가게 뒷문의 우유 상자는 과거와 이어져 있어. 과거의 누군가가 그 시대의 나미야 잡화점에 편지를 넣으면, 현재의 지금 이곳으로 편지가 들어와. 거꾸로 이쪽에서 우유 상자에 편지를 넣어주면 과거의 우유 상자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앞뒤가 딱 맞아.”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작가가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한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데에 있다. 소설에는 고민상담을 의뢰한 여러 명의 상담자들이 등장한다. 처음에 이들은 서로 간에 전혀 상관없는 사이인 듯 보인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가면 고민 상담자들이 아동복지시설 환광원을 중심으로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있다. 등장인물들이 환광원 출신이거나 그곳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둑들이 우연히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든 날이 나미야 할아버지의 기일날이었다는 점이다. 돌아가시기 전 미래에서 온 감사편지를 읽게 된 할아버지는 자신의 서른세 번째 기일인 9월 13일 오전0시부터 새벽까지 나미야 잡화점의 고민 상담실을 부활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러니까 나미야 잡화점이 딱 하룻밤 부활되는 날에 도둑들이 이곳에 숨어든 것이다.
무심코 툭툭 던져진 듯 보이는 상담 사례들이나 도둑들이 나미야 잡화점에 우연히 숨어든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결국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이야기들이 치밀하게 짜 맞춰져 있어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큰 그림의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가는 묘한 매력에 빠지게 된다.
결국 소설은 독자들에게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임을 깨우쳐준다. 선택의 기로에서 누군가의 조언을 간절히 듣고 싶은 고민 상담자들, 그리고 솔직한 답장으로 상담자의 인생에 도움을 준 나미야 잡화점의 할아버지와 삼인조 도둑들. 할아버지는 고민 상담에 답장을 쓰면서 삶의 활력과 보람을 느꼈고, 살면서 남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세 도둑들은 상담자의 감사 편지를 받으면서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된다. 결국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희망의 기적을 만들어준 셈이다.
올해의 마지막 달 12월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나라 안이 온통 혼란스럽다. 하지만 추운 겨울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민심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평화시위라는 기적을 일궈내기도 했다.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미야 잡화점’의 따뜻한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해본다.


/연인형 (국어·논술·NIE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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