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훈의 명화산책

네 명의 인물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천천히 그림을 살펴보면 ‘이곳이 동굴 안이구나!’ 싶다.
동굴 안은 암석들과 알 수 없는 식물들로 가득 차 있고, 멀리 너머에 햇살이 비치는 풍경이 보인다.

화면 전체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있고, 이들은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듯하다. 또한 눈을 내리깔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살아있는 듯 성스럽고 아름답지 않은가! 아, 참!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자연 그대로의 생동감 있는 본질이 느껴진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가 밀라노의 산프란체스코 교회의 주문으로 1483년부터 1485년 사이에 그렸다. 이 시기의 작품들이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듯이 이 작품도 동방 박사의 예언을 들은 헤롯왕이 갓 태어난 남자 아기를 모두 죽이자 성모 마리아가 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던 중에 세례요한을 만난다는 내용으로 4명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가운데 마리아를 기준으로 오른쪽에 경배하는 아기 요한, 왼쪽에 천사와 요한을 축복하는 아기 예수가 서로의 몸짓과 시선으로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다.

이 작품은 밝고 어두운 부분의 대비를 강하게 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명암법)를 잘 구사하여 그림 속 인물들의 입체감을 표현했고, 처음으로 윤곽선을 적당히 흐리게 하는 스푸마토(sfumato)기법을 사용하여 햇살 속의 인물들과 동굴안의 분위기를 더욱 신비롭고 살아있는 듯 생동감과 자연스러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스푸마토(sfumato)기법을 고안해 낸 것일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화가였을 뿐 아니라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섭렵한 학자이자 각종 발견과 발명에 몰두한 천재이다. 그는 이탈리아 남부 지역을 여행하면서 깊이 감동받은 기암괴석의 풍경을 이 그림의 배경으로 삼았는데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각종 식물은 식물학자로서 그가 자주 스케치하던 것들이라고 한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형상들을 보고 싶은 열망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오감에 의해 관찰된 것들이 기존의 고정관념의 깨고, 대상의 본질을 고스란히 화면에 옮긴 것이다.

다빈치는 죽기 전 ‘내 작품의 질이 본질에 다다르지 못했기에 신과 인류에 모욕을 줬다.’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끊임없이 연구하며 세상과 사물, 현상 대한 본질을 알고자 했던 그의 열정을 짐작케 하는 이야기이다. 스푸마토기법은 우연히 얻어낸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틀을 벗어던지고 보다 근접한 본질을 알고자 탐구했던 이의 깊은 발견의 결과인 것이다.

오늘도 그림 그리는 내 화실의 작은 인연들의 뒷수발을 들고 있다. 화실바닥에 흘려놓은 물감을 닦기도 하고, 화판위에 바닥칠이 왜 중요한지 조근 조근 설명하기도 한다. 바닥칠을 하며 조화로운 짜임을 스스로 터득해 볼 수 있도록 자유로운 붓질을 유도하며 즐거운 기분을 느껴보게도 한다.

두툼하게 된 바닥칠 위의 그림은 겹겹이 더 차분한 명암들을 만들어낸다. 선과 다양한 크기의 면들이 붓끝을 통해 연결되어 완성되어갈 무렵 우리들은 다시 윤곽선을 뭉개는 작업을 한다. 윤곽선을 뭉개어 자신의 그림이 망쳐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 초심에게 이것이 사실은 본질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회화의 얼마나 위대한 발견인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눈다.

이세훈 / (전)한국미술협회 충북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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