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차로 대청댐 주변을 휘~ 돌아보았다. 여기 저기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나라는 하 수상한데 산천은 여전히 가을이다. 굽잇길을 돌 때마다 다른 색깔의 단풍이 자동차 본닛 가득 내려앉는다. 온화함이 느껴진다. 샛노란 은행잎은 가을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

썰렁한 바람이 가슴을 휘감을 때, 허공을 떠돌다 눈물처럼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에 더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이 멈춰진다. 은행나무는 지구상 살아있는 식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식물로 고생대부터 생육하고, 쥐라기에서 전성기를 이루었던 나무이다. 빙하시대를 맞이하면서 대부분의 식물들이 사라졌지만 지금껏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가 살아온 역사를 알 수 있다면 인류도 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해답을 얻을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도 부르는 은행나무를두고 요즘은 활엽수니, 침엽수이니하는 논쟁이 일기도 하지만 어린시절 은행나무가 활엽수인가, 침엽수인가하는 것은 관심도 없었다.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홀로 있어서 그런지 열매는 구경을 할 수 없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나무를 바보나무라 불렀다. 바보나무는 늘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곤 했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가방을 나무밑에 던져놓고 숨바꼭질도 하고 소꿉장난을 하다 어둑해질무렵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밤새 초록 꿈을 꾸곤 했다. 집을 떠나 멀리 갔다 돌아오는 길에도 은행나무가 보이면 집에 다 왔다는 생각에 몸이 평안해졌다.

엄마는 내가 하루종일 보이지 않아도 찾지도 않았다. 은행나무를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은행나무 밑은 어른들의 쉼터이기도 했다. 마을에 큰일이 있거나 잔치가 열리면 동네 사람들 모두 모여 막걸리추렴을 벌이기도 했다. 은행나무가 지구상에 나타날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잎 모양이 아니고 손바닥을 펼쳐 놓은것처럼 갈라져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잎도 차츰 진화해서 오늘날 부채꼴과 같은 모양이 되었다고한다.

바늘잎 나무로 구분되고 있는 은행나무는 살아온 역사만큼 얽힌 이야기도 많은 나무다. 한자로 銀香이라고 쓰는 은행나무는 살구나무 열매를 닮았지만 흰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에서는 잎이 오리발을 닮았다고 하여 압각수(鴨脚樹)라 하고, 열매는 손자대에 가서야 얻는다고 하여 공손수라고도 하는데 요즘은 개량종이 많아 식재 후 1.2 년만 되어도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대부분에 식물들이 한 그루에 암. 수가 같이 있는데 비해 은행나무는 암 수가 따로 있어 서로 바라보아야 열매를 맺는다.

마주보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만 하는 애틋한 사랑이 천년후에 다시 만난다는 은행나무침대라는 영화가 있다.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주인공 남 녀가 몇 백년 후 황혼의 들녘에서 은은한 햇살을 주고 받으며 사랑을 속삭이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로 환생한다. 하지만 행복의 순간도 잠시, 사나운 한 마리 매가 이들 주위를 맴돌고 천둥이 치면서 한 그루의 나무가 쓰러지고, 남은 한 그루도 죽고 마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수많은 눈물과 사랑이 역사를 만들고,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은행나무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 부부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복잡해 질수록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고, 재주 많은 사람에게는 고통과 시련이 따르는 것처럼 은행나무도 시련이 많다. 미약한 인간의 과학이 질병으로 인한 인류 멸종이 저만치 먼 곳에서 멈칫거리고 있기에 사람들은 생명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은행잎에서 또 다른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은행나무의 노란 잎들이 어두운 세상에 등불처럼 걸려있는데.

신준수 / 숲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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