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여섯시 복대초 교정에서 바라본 하늘은 여름과 사뭇 다르다. 어느 새 반달이 떠서 서쪽나라로 가고 있으며 먼 산위에서 시작된 구름이 말갈기 모양으로 달리면서 교장실 창가까지 닿으려 한다. 한글날 기념 도내 어린이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한 용성초 어린이는 ‘가을’이라는 시제를 이렇게 읊고 있다.

가을이 찾아왔다.
여름동안 초록빛으로 살던
나뭇잎들을 알록달록 변하게 하려고 왔다.

가을이 찾아왔다
힘들게 기른 농산물을 수확하는
농부들의 기쁨을 선물하려고 왔다,

가을이 찾아왔다
여름의 더위를 식히고 신선한 바람 맞으며
책 많이 읽으라고 왔다.

내 마음에도 가을이 찾아왔나보다
뻥 뚫린 맑은 가을 하늘처럼
내 마음도 아무 막힘없이 뻥 뚫리고

넓게 펼쳐진 가을 들판처럼
내 마음도 넓어졌다.

가을이 찾아왔다.
바깥 세상에도
내 마음 속에도

시를 음미해 볼수록 마음이 착한 작품이다. 과연 꼬마 시인은 욕심과 불만과 여유 한 조각 없는 우리 어른들의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사실 가을이 찾아왔다는 것은 가을보다는 마음의 문제이다. 자신의 마음을 비운 겸허하고 사색적인 상태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가을이 찾아왔음을 아는 것이다. 1970년에 창립된 충북글짓기지도회는 해마다 한글날에 즈음하여 도내어린이 백일장을 개최한다. 그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46회나 백일장이 계속되었음은 아름다운 기적이며 이 백일장을 통해 생각이 자라난 도민들이 꽤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부족한 내가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뒤를 이어 회장이 되었는데 처음 치른 도내어린이 백일장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가을 시 한편이 나온 것에 그간 피로가 사라지고 나름 보람의 미소가 회원들의 입가에도 배어났다.

더욱이 이번 대회에 도내 10개 시군교육지원청에서 고루 70여 학교가 참여하였으니 147명 회원 모두는 놀라고 나는 그 기쁨을 가눌 길 없었다.

나도 모르게 가을 하늘을 우러르며 중얼거렸다. ‘귀한 회비와 시간을 내어준 회원들의 마음에 가을이 찾아왔음을 나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한분 한분에게 깊고 푸른 사랑을 전합니다.’

백일장과 신문 문집 전시회도 열기 때문에 한 달 전부터 참가 신청을 받고 상장과 상품을 마련하고 당일 시상식까지 정녕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임원을 중심으로 내일처럼 움직인 회원들이 있어 2016 제 47회 역사적인 시상식까지 마무리한 것이다. 이것이 꿈이 아닐까? 가을 하늘이 한껏 청명하다.

회원들과 고마운 인사를 뒤로하고 서둘러 청주 아트홀로 향했다. 제 3회 충북대합창제가 늦은 오후에 충북예술제 개막 공연으로 열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여동생이 합창단원으로 출연하기에 귀한 시간을 낸 것이다.

동생은 청주에서 살다가 직장따라 제천으로 이사간 지 반년이 조금 지났는데 동료의 권유로 합창단에 들어간 모양이다. 헐레벌떡 대기하고 있던 남편과 함께 달려가니 마침 동생이 속한 제천합창단이 무대옆에서 대기하며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과연 동생이 왔나 찾으니 뒤쪽에서 반가우면서도 놀라는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다. 동생이 난 생 처음 단원이 되어 들려주는 합창곡은 우리들에겐 가을의 첫노래이다. 단원이 많지 않아 소리가 작을까 걱정했는데 소리도 풍성하고 그 중 한곡은 ‘차타누가 추추’라는 곡으로 시간 맞추어 기차여행을 떠나자는 재미있는 가사에 청중들의 반응도 좋았다. 나도 절로 흥이나 박수치고 공연이 끝나자 크게 브라보를 외쳐 주었다. 무대를 내려오는 단원들 표정도 만족스레 보였고 단원 한 사람 한 사람 어여쁜 드레스 사이로 가을이 살며시 스며들었다.

어린이의 시처럼 온 누리에 가을이 찾아왔다.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드높은 하늘 파랗게 올려다보고 붉은 산 노란 손짓 가을의 손을 잡아보아야한다.

지금 그대 곁에 온 가을 시 가을 노래는 어쩌면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은 숭고하고 아름답다.

박 종 순 / 청주 복대초등학교 교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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