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녀와 함께 하는 생각하는 독서

<오-매 단풍 들것네>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감잎 날러오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리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가을이 빚어내는 고운 빛깔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또 어디 있을까. 가을, 단풍의 계절이다. 단풍하면 떠오르는 시가 김영랑 시인의 <오-매 단풍 들것네>이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오-매 단풍 들것네>라는 투박한 사투리가 맛깔스럽다.

전라남도 강진에 있는 김영랑의 생가에 가면 안채 옆으로 장광(장독대)이 있고, 장광 뒤에는 대나무와 함께 감나무가 몇 그루 비스듬히 서 있는데, 이 곳이 바로 이 시의 모티프가 된 곳이라고 한다. 신경림 시인은 저서 ‘시인을 찾아서’에서 김영랑 생가의 장광을 둘러보며 이 시가 지어질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추측해 보았다.

“이슬이 손발에 찬 초가을 아침, 누이는 장을 뜨러 나왔겠지. 장을 뜨려 장독을 여는 그녀의 손에 문득 골붉은 감잎이 하나 날아 떨어진다. 누이는 놀란 눈으로 장광 뒤의 감나무를 쳐다본다. 감이 붉게 익어갈 터이지만 누이는 울긋불긋 단풍 들어 가는 잎에 더 마음이 쏠렸으리라. 가을이 깊어지면 시집 갈 날도 머지않은 터. “오-매 단풍 들것네” 놀라는 누이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것이 첫 연이다. 둘째 연은 누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심정. 그는 지금 건너편 사랑방 툇마루에서 감나무를 쳐다보는 누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또 다른 책 ‘국어 교과서 작품읽기 중3 시’(창비)에서는 “오-매 단풍 들것네”라는 반복된 표현이 주는 의미와 느낌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에 주목하였다. 1연 첫 행의 “오-매 단풍 들것네”는 누이가 장독대에서 바람결에 날아온 골불은(짙게 붉은) 감잎을 보고는 벌써 가을이 왔음에 깜짝 놀라 감탄하는 말이다.

“1연의 끝 행 “오-매 단풍 들것네”는 2연의 첫 부분과 연결되어 계절이 바뀌면서 생기는 걱정을 드러냅니다. 가을을 발견한 놀라움과 기쁨은 잠깐입니다. 곧 추석이 다가와 그 준비로 바쁘고 바람이 모질게 불어오기 전에 겨울을 날 준비도 마쳐야 하니까요. 맨 마지막 행 “오-매 단풍 들것네”에는 누이의 이런 걱정을 위로하는 화자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화자는 누이의 말투만으로도 누이가 추석과 월동 준비로 걱정이 많겠다는 걸 느낍니다.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는 그 심정을 알아주는 다정한 오빠가 하는 말입니다.” -본문 중에서-

이렇게 시가 쓰여질 당시의 공간적, 시간적 배경과 작가가 처한 상황이나 삶을 연결짓다보면 시가 더욱 쉽고 정감 있게 다가온다.
이런 점에서 ‘교과서를 만드는 시인들’ (송국현 지음) 역시 주목해볼만한 책이다. 김소월, 한용운, 정지용, 윤동주, 김수영, 신경림 등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인 20명의 삶과 그들의 시세계를 담아냈다. 시인들의 인생 이야기며 시가 지어질 당시 상황 등을 쉬운 말로 풀어내 교과서에 등장하는 어려운 시들을 학생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특히 올해 발간된 윤동주 유고 시집 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과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필사책도 눈길을 끌만하다. <서시> <별 헤는 밤> 등 31편의 시가 수록된 초판본에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원고를 첨부하여 윤동주 서거 10주기를 기념하여 1955년 발행된 증보판이다. 당시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그대로 살렸고, 윤동주 시인의 자필 원고도 들어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28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 민족시인 윤동주.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 후 3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이번에 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필사책에는 독자들이 시를 적는 공간이 있어 윤동주 시인의 시를 필사하면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없이 살려고 노력한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가을빛이 익어가고 있다. 어느 햇살 따스한 오후 김소월 시집을 중학생에게 건네니 해맑은 미소로 묻는다. “김소월이 누구예요?”라고……. 아이돌 가수 이름은 척척 알아도 시인 이름은 모르고, 소설책은 읽어도 시집은 읽지 않는 요즘 학생들에게 가을이 가기 전에 재미있게 읽을 만한 시집 한 권 건네주어야겠다. 공감 가는 시 한 편 읊으며 시의 맛과 멋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꼭 그런다>
박성우

두 시간 공부하고
잠깐 허리 좀 펴려고 침대에 누우면
엄마가 방문 열고 들어온다
―또 자냐?

영어 단어 외우고
수학 문제 낑낑 풀고 나서
잠깐 머리 식히려고 컴퓨터 켜면
엄마가 방문 열고 들어온다
―또 게임하냐?

일요일에 도서관 갔다 와서는
씻고 밥 챙겨 먹고 나서
잠깐 쉬려고 텔레비전을 켜면
밖에 나갔던 엄마가 들어온다
―또 티브이 보냐?

연인형 / 국어·논술·NIE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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