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 여름이 지나고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들판의 황금 들녘을 바라보며 시골의 정취를 느끼기 딱 좋은 계절, 거기에 기나긴 추석명절을 기회로 삼아 도민 여러분 모두 즐거운 명절동안 평안히 보내셨는지요. 오늘은 다름이 아니고 저의 할아버지를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추석이란 명절을 기회삼아 1년에 두어번 뵐까 말까한 할아버지를 뵙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어느덧 14년째가 됨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 방을 차지하고 있는 할머니의 초상화와 소싯적 찍으셨던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방안에 걸어 놓으신 할아버지,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뵙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니 할아버지의 슬픔과 기쁨, 외로움을 알 수 있었습니다.

평생을 함께해온 반려자를 떠나보내시고 10여년을 지내오시면서 가슴한켠이 얼마나 외로우시면 저렇게 방을 사진으로 도배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몇 년을 홀로 보내신 분처럼 저를 보며 반가워하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 이야기가 2~3시간동안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슬픔과 죄송스러움이 앞섰습니다.

어렸을적 제 할아버지께선 놀이터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약간은 무뚝뚝하며 표현은 잘 안하셨지만 무엇을 하건 다 받아주시고 함께 시골마을 근처로 나가 산에서는 감과 밤을 따시는걸 보여주시며 가르쳐 주셨고 물가에서는 투망을 던지거나 낚시대로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시골 농촌의 즐거움을 알려주셨죠. 아직도 할아버지께서 투망을 가지시고 피라미를 잡으시는 모습, 낚시대로 인근 저수지로 가서 잉어와 붕어를 잡으시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장대 사용법이 서툴러 할아버지 머리 위로 장대를 놓쳐서 할아버지께서 혹이 나셨었는데 그런데도 너털웃음으로 무마하시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 할아버지를 뵈오니 옛 추억의 아련함이 크게 밀려 오더라구요.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기억속의 추억이 되겠지만 할아버지께서 오래오래 만수무강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 졌습니다.

올 추석연휴에는 태풍의 영향인가 그런지 비가 왔었습니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창밖을 바라보시는 할아버지께서 드시고 싶으신 음식이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점심시간도 다가오고 해서 무엇을 드시고 싶으신지 여쭤 보았더니 칼국수가 드시고 싶으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홀로 남으셔서 칼국수 한 그릇 드시기 힘이 든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함께할 사람도 없을뿐더러 홀로 드시러 갈 생각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셔서 할아버지와 함께 읍내로 나왔습니다. 옛날 같지 않은 발걸음. 한걸음 한걸음 걸어 가시는 모습이 힘들어 보이셨지만 절대 부축은 바라지 않으신 할아버지. 뒤에서 살짝 한걸음 물러서 할아버지 보폭에 맞게 걸음을 같이 하였습니다. 조용히 우산을 들고 뒤에서 한발짝 물러난 상태에서 할아버지 발걸음에 맞추어 걸어가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요.

할아버지는 정말 축지법을 구사할 정도의 빠른 보폭속도를 가지고 계셨으니까요. 항상 먼저 앞서가시다가 멀리서 바라보고 손을 잡아주던 할아버지셨지만 이젠 너무나도 힘겨워 하시는 걸음걸이에 몇 번을 불안한 듯 바라보며 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칼국수 집에서 할아버지와 저는 맛있게 칼국수를 먹고 나왔습니다.

오랜 숙원이라도 해소하시듯 기쁘게 웃으시며 나오시는 할아버지를 뵈오니 제 마음도 기쁘기 한량없더군요. 그렇게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길, 너무도 고맙다며 자주 좀 들리라는 할아버지 말씀이 귓가에 맴돕니다.

나이가 들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뵈지 못한 것이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올해 아흔을 넘기신 할아버지를 뵈오니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번이라도 더 뵙고 더 이야기를 나누며 할아버지의 외로움을 함께 공유하고, 한번이라도 더 웃는 모습, 건장한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그것이야 말로 최고의 보답이 아닐까 합니다. 증손자를 보고 싶으시다는 할아버지께 항상 죄송스러운 마음이지만 그래도 시골집을 자주 찾아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할아버지께서 항상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기원하며 도민 여러분도 추석이 지난 지금 시골에 계시는 할아버님 할머님께 안부인사를 드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원래 왁자지껄했던 명절이 지나면 가장 외로워 지시는 할아버님 할머님 이실테니까요.

박현순 / 충북 SNS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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