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 날 아침부터 낮과 밤을 거쳐 다음날 동틀 무렵까지 이어지는 곤충이야기를 담고 있는 ‘마이크로코스모스’ 란 영화가 있습니다. 출연한 배우들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너무 작거나 흔해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곤충들입니다. 이들의 삶을 담은 앵글을 따라가보면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 싸움과 도전 등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짝짓기 장면은 거의 모든 영화의 양념이고, 이 시대 최고 유행 의상은 알몸입니다. ‘마이크로코스모스’도 예외가 아니어서 주인공들의 짝짓기 장면이 몇 차례 나옵니다. 그 중 가장 감동적인 것은 달팽이 한 쌍이 벌이는 짝짓기 장면입니다.

암수 한 몸인 달팽이들은 스스로 자가수정을 피하기 위해 몸 속에 시계를 지녔다는데, 그 시간을 교묘하게 이용해 스스로 만들어 낸 정자와 난자가 만나지 못하게 한다는데, 즉, 몸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정자와 난자가 같이 있는 시기를 줄인다는 것입니다.

두 몸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달팽이 짝짓기 현장에서 눈여겨 볼 것은 달팽이의
아랫도리가 아니라 앞 더듬이 밑에서 가끔씩 생겼다 없어지는 생식문 입니다. 즉, 달팽이의 성기는 입 옆에 있습니다. 암수 한몸인 두 달팽이는 각자 성기를 발기하여 상대의 생식문에 삽입합니다.

달팽이 그늘 밑을 걷고 있습니다. 개망초氏네 앞을 지나 해바라기氏네 앞도 물결치듯 걷고 있습니다. 일보 일보 느린 도보법이 끈끈한 공력에 다다랐나 봅니다. 수풀의 그늘 광배가 늘 붙어 다닙니다. ‘어디 가세요?'하고 불러 세우려다가 문득, 걸어간 길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끈끈했던 시간이 말라 저렇게 빛이 나는구나, 미약한 갑각이 멸종되지 않는 비밀 교지이겠다 싶어 수억 년 더 미끄덩미끄덩 부드러운 길 가겠다 싶어 그냥 바라보고 있습니다. 1분이 한 시간처럼 한 시간이 하루처럼 한 계절이 평생처럼. 갑각류 단단해 지는 계절, 시간이란 저렇게 단단해지는 것입니까?

개망초 원추천인국 몇 송이 지나 축축해진 그늘 잎을 일보 일보 달팽이 걸어갑니다. 비는 오고 망초대 졸며 꾸벅입니다. 달팽이, 물속에 살았던 조상들의 연대기는 어디쯤 따라오고 있습니까? 물어보려다 7월의 꽃이란 꽃들이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쏟아지는데 느릿느릿 몸속의 타성은 영영 못 만날 것 같습니다

신준수 / 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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